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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이 생기면 남 돕겠다? 콩 한쪽 나눠 먹는게 진짜 나눔

중앙일보 2019.06.05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24)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상대에게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 상대를 결정적인 순간에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꼭 만난다는 뜻이다. 이 속담이 악연을 맺지 말라는 의미만을 담고 있을까? 아니다. 선의의 의미에서도 적용된다.
 
어느 날 올레길을 걷는데 곶자왈 지역에서 올레꾼을 만났다. 그는 예전에 인천에서 봉사활동 할때 만났던 사람이었다. [사진 한익종]

어느 날 올레길을 걷는데 곶자왈 지역에서 올레꾼을 만났다. 그는 예전에 인천에서 봉사활동 할때 만났던 사람이었다. [사진 한익종]

 
제주에서 해녀가 살던 폐가를 얻어 수리작업을 하던 어느 날, 잠시 여유를 가질 요량으로 집에서 가까운 올레길을 걷는데 으슥한 곶자왈 지역에서 올레꾼을 만났다. 그 역시 혼자였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디서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한익종선생님 아니세요?” “맞는데요. 제가 한익종입니다만…” “아~ 선생님 예전에 인천에서 봉사활동 하실 때 요양원에서 뵀었잖아요”
 
반가웠다고 하는 게 맞을까, 전율을 느꼈다는 게 맞을까? 문득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일 인적 드문 올레길에서 단둘이 만났는데 내가 못된 일을 저질렀던 상대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기까지 하다.
 
물도 준비하지 않고 걸은 그 날 그분에게서 물과 간식을 얻어먹으며 온갖 덕담을 들은 기억은 내게 원수뿐만 아니라 선행을 베푼 상대편도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만난다는 내 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주었다.
 
외나무다리서 만난 좋은 사람들
그런 경험은 또 있다. 눈 내린 경기도 양평 수종사를 찾으러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데 저만치 앞에서 요란한 자동차의 굉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니, 이 조용한 산사를 찾으려면 천천히 묵상하면서 걸어 오를 일이지 차는 웬일이며 더군다나 눈길에 차를 끌고 오르는 건 뭔 경우야? 짜증이 돋는 내 시야에 내리막을 향해 주차한 차가 눈길에 헛바퀴 질을 하며 갓길에서 빠져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눈길 내리막에 주차한 차가 헛바퀴 질을 하며 갓길에서 빠져나오려 해 도와주었는데 알고보니 모 봉사단체의 회원이었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눈길 내리막에 주차한 차가 헛바퀴 질을 하며 갓길에서 빠져나오려 해 도와주었는데 알고보니 모 봉사단체의 회원이었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냥 지나치려다가 하도 딱해서 숲으로 들어 잔가지며 낙엽을 가져와 바퀴 뒷바닥에 깔아 주고 천천히 가속 페달을 밟으라고 해 겨우 빠져나오게 했다. 그런데 수종사 방향에서 내려오던 중년 부인이 나를 알아보고 “어머~ 한 대표님 아니세요?” 알고 보니 그 중년 부인은 내가 문화탐방 안내를 맡아 봉사한 모 단체의 회원이었고 곤경에서 막 벗어난 차주의 부인이었다.
 
그 사연으로 인해 남편이 회장으로 있는 서울의 큰 시장 상인동호회 회원들이 내 회사를 통해 단체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두 경우 다 평소 베푼 선행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 아닌가 싶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비단 부정적 의미에서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얼마 전 언론에 취업준비생으로 한 일주일간을 굶은 청년이 마트에서 절도범으로 잡혀 경찰에 입건됐고 이를 딱하게 여긴 담당 경찰이 몇만원인가를 건넨 사연이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 청년은 그 돈으로 다시 한번 삶의 의지를 살려 직장에 취직했고 첫 월급을 타 그 경찰관을 찾아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우리는 흔히 기부나 봉사를 얘기하면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일이라며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진 것이 많아 베풀 수 있어 좋겠다. 나도 그 입장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과연 그럴까? 수십억을 기부하는 유명인사나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봉사하는 사람들만이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감동과 도움을 주는 것일까? 
 
지난 연말 사랑의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80대 할머니가 2천만원을 기탁했다. 사진은 할머니가 기부한 1천만원권 수표 2장 모습.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연말 사랑의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80대 할머니가 2천만원을 기탁했다. 사진은 할머니가 기부한 1천만원권 수표 2장 모습.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아니다. 진정 상대편에게 감동과 도움을 주는 행위는 내가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별로 큰 양의 물질적 도움이 아니더라도 더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진 사람이 행하는 기부나 봉사는 모든 이들에게 ‘그 사람은 워낙 가진 것이 많으니 당연한 거야’라는 인식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의 작은 부분이라도 나눠주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더 큰 감동과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 속담에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별로 나눠 먹을 것 없는 콩알이라도 이웃과 나눠 먹겠다는 생각을 장려한 속담이다. 결국은 행위의 크기가 아니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은유한 표현이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게 더 큰 감동
사람의 삶에는 얄궂은 징크스가 여럿 있다. 그중에 우리가 자주 겪는 징크스가 머피의 법칙이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꼭 나한테만 일어나는 것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머피의 법칙은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고마운 마음을 가진 사람, 내가 선행을 베푼 사람과의 재회라면 좋겠지만 이상하게 꼭 내가 서운하게 대했던 사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겪은 상대와 묘한 장소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일종의 머피의 법칙이다. 그런데 이 법칙이 꼭 나쁜 인연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의미로 적용한다면 고마움을 입은 사람과도 묘한 경우에 만난다. 베풀자. 봉사하고 기부하자. 그건 양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자세를 배우자. 그것이 인생후반부, 함께 더 오래 살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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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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