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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 시도 연 34만…응급실 87% 전문관리팀 없다

중앙일보 2019.06.05 00:04 종합 14면 지면보기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24>
서울 마포대교 전망대에 자살 예방을 위해 설치한 ‘한 번만 더’ 동상. 실의에 빠진 한 남자를 다른 남자가 어깨동무하며 ’한번만 더 생각해보라“고 위로하는 모습이다. [뉴스 1]

서울 마포대교 전망대에 자살 예방을 위해 설치한 ‘한 번만 더’ 동상. 실의에 빠진 한 남자를 다른 남자가 어깨동무하며 ’한번만 더 생각해보라“고 위로하는 모습이다. [뉴스 1]

“나를 왜 살렸어요. 대체 왜. 그냥 죽게 놔두지…”
 

상담치료 받으면 예방효과 큰데
402개 응급실 중 52곳만 전담팀
“정부는 인구 감소 걱정하면서
올해 예산 배정은 63억에 그쳐”

이틀만에 의식을 되찾은 김모(42)씨는 자신을 살려낸 의료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응급실로 실려온 그는 눈을 뜬 뒤에도 “죽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었던 김씨는 2년 전 직장을 그만뒀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원치 않는 퇴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직장을 잃고 소득이 끊기면서 김씨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김씨는 생계를 위해 건설 현장 인부로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못 가 허리를 다쳐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 술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건강이 나빠졌다. 우울증까지 그를 덮쳤다. 그는 “가족에게 짐만 된다”는 생각에 빠졌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가족들이 일찍 발견해 병원으로 옮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씨가 실려온 병원에는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가 설치돼 있었다. 응급실로 들어오는 자살시도자를 밀착 관리하는 전담팀이다. 치료를 마친 김씨는 정신건강의학과로 인계됐다. 정신과 진료와 함께 전담팀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바로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엔 “죽여달라”며 대화를 거부하던 김씨는 일주일 뒤 병원 문을 나설 때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전담팀은 김씨에게 치료비를 지원했고, 지자체의 일자리 상담 서비스,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상담 등을 받도록 안내했다. 전담팀은 김씨에게 이후 3개월동안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해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김씨는 택배기사로 취업해 새 삶을 살게 됐다.
 
김씨처럼 한번 자살을 시도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도 두번, 세번 계속 극단적 행위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한림대 예방의학과 김동현 교수는 “김씨처럼 한 해 자살 시도자가 33만7000명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의 자살 사망률은 일반인에 비해 25배 가량 높다. 자살 시도자 35.2%는 과거에 같은 경험이 있고, 16.4%는 첫 시도 후 6개월 이내에 다시 시도하려 마음 먹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때문에 정부는 2013년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을 시작했다. 응급실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를 두고 응급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정신전문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뤄 자살 시도자를 관리한다. 전담팀이 입원 중에 바로 상담을 시작하고 퇴원 후에 전화·방문 상담을 한다. 복지 서비스나 복지기관에 연계해 재시도를 예방한다.
 
서울아산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의 송신희 사회복지사는 “자살 시도자의 가장 큰 애로가 진료비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도움으로 진료비를 지원하고 마음 편히 치료받도록 한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은 주민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구청에 생계비, 주거 지원을 연결한다”라고 설명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자살 고위험군을 직접접촉하고 지원하기 때문에 자살 예방 효과가 굉장히 좋다”라고 평가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담팀의 상담을 받지 않은 시도자의 경우 14.6%가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해서 숨졌다. 상담을 받으면 사망률이 5.9%로 떨어졌다. 상담 횟수가 늘수록 자살 시도자의 자살 위험도가 줄었다. 첫 상담때 자살 위험성이 높은 시도자가 15.6%였지만 4회째 상담을 받는 경우 6.3%로 줄었다.
 
자살·자해 시도자는 2012년 2만2057명에서 2017년엔 2만8278명으로 뛰었다. 하지만 전담팀의 밀착 관리를 받은 사람은 4024명(2017년)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402개 응급의료기관 중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전담팀이 설치된 곳은 13%(52개)뿐이다. 자살 시도자가 전담팀이 없는 응급실로 이송되면 상담 등 사후관리 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한다. 한 병원에 연간 1000명이 넘는 자살 시도자가 몰리기도 한다. 장영진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올해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 지난해 예산(47억원)보다 많은 63억원을 배정하고 참여 응급실을 63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래봤자 전체 응급실의 15.7%에 불과하다. 나머지 병원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1년 단위로 정부 예산이 배정되다보니 자살 시도자 전담팀의 근무 여건도 열악하다. 전담 간호사·사회복지사는 전원 계약직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전담팀 간호사는 “병원 입장에서 내년 예산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데,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2년 일하고 6개월 쉬었다 다시 일하는 식으로 한다. 호봉도 올라가지 않고 환자 관리도 맥이 끊어진다”라고 하소연했다.
 
백종우 센터장은 “일본은 자살 시도자 관리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자살 시도자 뿐 아니라 정신응급 환자까지 관리한다”라고 말했다. 양두석 가천대 교수(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는 “초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든다고 호들갑 떨면서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에는 쥐꼬리 예산을 배정한다. 정책 효과가 분명하게 입증됐는데도 찔끔찔끔 올린다. 그러니 15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 1위라는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중앙일보·안실련·자살예방협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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