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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나는 ‘그들의 감정’이 싫다

중앙일보 2019.06.04 00:17 종합 34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정치는 허업(虛業)인가. ‘혀업(業)’인가. 요즘 정치인들이 감정적으로 내뱉는 ‘불상의 발사체’들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혀로 쌓은 업보를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가.
 

‘골든타임 3분’ 정치는 ‘혀업’인가
자기감정에 오염된 공적 영역들
감정표현도 알리바이가 필요하다

‘차가운 강물 속에 빠졌을 때 이른바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페이스북 글이다. 헝가리 유람선 사고 실종자와 그 가족을 어떻게 여기면 이런 말이 나올까. 감정의 온도가 다뉴브 강물보다 차갑다.  
 
“아주 걸레질을 하는구먼. 걸레질을 해.”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한선교 한국당 사무총장 발언이 나왔다.
 
지난달 2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첫 공판을 법정에서 지켜보며 느꼈던 건 또 다른 질감의 감정이었다.  
 
“이 민주정을 채택하고 시행하는 나라에서 법원에 대해 이토록 잔인한 수사를 한 사례가 대한민국밖에는 어디 더 있는지….” 전직 대법원장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밝혔다. 분노, 울분, 냉소, 우려, 참담함…. 그의 말을 들으며 밀려온 감정들의 리스트다. 그런데 한 가지 빠진 감정이 있었다. 부끄러움이다. 그가 42년간 법관으로 살아왔다면 이 한마디는 했어야 한다.  
 
“제가 검찰 수사의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재판하고, 유죄 판결해왔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그때 그 피고인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부끄러움은 조금 특별한 감정이다. 사회적이고 공적인 감정이다. 객관적인 상황 인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대법원장님 심기(心氣)’를 살피는게 왜 그토록 판사들에게 중요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감정과 공적 활동의 경계는 모호하다. 자기 마음속의 감정을 입 밖에 내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부장판사 출신 도진기 변호사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판사들이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재판할 때 자신의 질문에 변호사나 피고인이 ‘그게 아니다’고 말하면 판사 기분이 상해버립니다. 그렇게 생긴 감정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요.”  
 
판사뿐일까. 어떤 검사는 참고인으로 부른 사람이 소환에 응하지 않자 얼마 전 그를 해당 재판의 증인 명단에 집어넣었다. 그의 증언이 꼭 필요했을까. 당사자는 “검사분께서 기분이 안 좋았던 모양”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기자들도 다르지 않다. 취재하다가 짜증이 나거나 비위에 거슬리면 비판의 볼륨을 높인다. 전문용어로 ‘조진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는 겁니까.”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공정해야 할 직업들이 자기감정에 따라 칼춤을 춘다. 창피하게도, 나 역시 내 감정을 엄격하게 대하지 못했다.  
 
인간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편향과 감정적 특성이 있다. 그런 것들이 공적 영역을 오염시키지 않으려면 차단벽이 있어야 한다. ‘나는 공적인 일을 하니까, 내가 느끼는 건 모두 공적인 것’이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업무를 하면서 그날 기분이나 자기감정에 거리를 두지 않을 때 ‘갑질’이 튀어나온다.
 
‘통이 작은 사람들이란 끊임없이 지저분한 짓으로 좋건 나쁘건 자기감정에 만족하는 법이다.’(발자크, ‘고리오 영감’) 당신은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지저분한 짓’인가. ‘자기감정을 만족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공적인 감정 표현에는 ‘개인감정이 아니다’는 알리바이가 필요하다.  
 
쥐꼬리만 한 권력을 쥐거나 마이크만 잡으면 개인감정이나 취향, 기호를 드러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있다. 꼭 민경욱씨나 한선교씨 경우를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청와대든, 국회든, 정당이든 공론의 장에 자기감정의 부유물들이 떠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더 이상 피곤해지기 싫다. 이해하기도 힘들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그들의 감정에 내 마음이 부대끼는 게 넌더리 나게 싫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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