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스포’ 주의보

중앙일보 2019.06.04 00:16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 허탈함과 상실감을.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경계령이 내려진 ‘스포일러(spoiler)’의 피해 얘기다. 영어를 풀면 ‘일을 망치게 하는 사람이나 행동’ 정도가 되겠다. ‘스포’라는 줄임말까지 생긴 이 범죄에 가까운 행위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아직 안 본 사람에게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나 반전을 공개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천만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칸 황금종려 수상작 ‘기생충’에 반드시 ‘스포 주의보’가 따라붙는다. 오죽하면 “어벤져스 최고의 적은 스포일러”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반전을 담았다는 20년 전 영화 ‘식스 센스’(M. 나이트 샤말란 감독)는 역대급 스포일러가 지금도 회자한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온 한 고교생이 다음 영화에 입장하는 이들에게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고 외쳤다나. 그 학생은 개과천선했을까.
 
미처 상상도 못 한 상상력이 빚어낸 명작의 감동은 한 번 놓치면 다시 경험하기 어렵다. 문화적 전율이 지속가능하려면 샤말란이나 봉준호의 천재성을 스포일러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흥행도 필요하다.
 
정부의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천재성은 그들에 못 미치니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정책 수용자의 호감을 얻어내 공감으로 연결해야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이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식량 5만t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공개해 통일부가 기겁한 일이 있었다. 당·정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여당의 의욕은 좋으나 자칫 흥행을 망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이달 18명의 장관과 삼삼오오 릴레이 오찬을 한다. 성급한 스포보다는 참신한 티저 광고처럼 호감을 만들어 가는 지혜를 보여주길 바란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