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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법원의 유령과 삼권분립

중앙일보 2019.06.03 00:04 종합 29면 지면보기
문병주 사회팀 차장

문병주 사회팀 차장

하나의 유령이 법원을 배회하고 있다. 이 유령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반증이 최근 있었다. 전·현직 법무비서관의 행보다. 현 정권 출범 직후 부장판사직을 그만두고 이틀 만에 청와대행을 택했던 김형연 전 법무비서관의 바통을 김영식 변호사가 이어받았다. 휴지기는 이틀에서 수개월로 늘었지만 사표를 낸 당시부터 청와대행이 예정돼 있었던 점은 똑같다. 청와대를 떠난 법무비서관은 법제처장에 취임까지 했다.
 
둘의 공통점은 또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배출한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였다. 물론 그 연구회 소속의 모든 판사가 같은 이념을 공유하고 있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들은 그렇게 평가돼 있다. 이렇다보니 청와대와 대법원장의 긴밀한 관계가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문제는 역학 관계다. 삼권분립 정신에 기반한 건전한 견제 혹은 긴장감이 없어져 버렸다. 사실상 현직 판사를, 서로 논의된 듯한 인사를 청와대에서 법무비서관으로 임명하다보니 법원은 청와대와 대등한 기관이 아닌 행정부와 같은 모양새가 돼 버렸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탄생도 청와대에 먼저 입성한 전 법무비서관의 작품이라는 말이 아직까지 떠돈다.
 
노트북을 열며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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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판에 대처하는 대법원의 태도는 당혹스럽다. “법관으로서 퇴직 후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비서실 소속 직위에 임용될 수 없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현재 여러 건 발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회 논의 및 입법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면 곧바로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전·현직 두 법무비서관과 같은 이동이 몇 번 일어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되물음은 이미 올 초 김영식 신임 법무비서관의 비서관 내정설이 돌았을 때 김정아 부장판사가 내놓았다. “파견 근무에 관한 법원조직법의 입법 취지는 대법원장과 법관이 ‘자제’ 하리라 신뢰해 구체적인 금지 규정까지 둘 필요는 없다고 본 것….” 같은 법복을 입었던 전·현직 법무비서관을 보며 많은 판사는 허탈해하고 있다. 행정부에 예속된 듯한 모습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고 말하는 판사들이 상당수다.
 
사법행정권 남용과 그 권한의 독점을 막겠다는 뜻을 행정부와 공유하는 것을 탓할 순 없다. 하지만 그런 목적을 위해 법원 내부를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며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할지 모를 ‘유령’을 계속 공개 소환하는 게 우려스럽다. 그 유령은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정신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병주 사회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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