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박제된 ‘천안문 사태’ 30년

중앙일보 2019.06.03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하현옥 금융팀 차장

하현옥 금융팀 차장

먹이를 낚아채는 건 순간이다. 사냥꾼은 그 찰나를 기다린다. 엄동의 산속에서 야생동물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총탄이 날아다니는 내전의 현장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계엄령이 선포된 엄혹한 시위 현장에도 언제나 있다. 사진기자, 그들은 사냥꾼을 닮았다.
 
세계적인 카메라 업체 라이카의 홍보 영상 ‘사냥(The Hunt)’의 내용이다.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들의 눈을 빌려준 모든 이에게 바친다’며 사진기자를 향한 헌사를 담았다. 지난 4월 중순 선보인 이 영상은 현재 공식 미디어 채널이 아닌 유튜브 등에서만 볼 수 있다. 게다가 라이카는 “회사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않은 영상”이라고 선을 그었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다.
 
중국을 자극한 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 ‘천안문(天安門) 사태’다. 1989년 6월 4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을 중국공산당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희생자 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서구는 수백~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영상 속 주인공은 실존 인물과 오버랩된다. AP통신 사진기자 제프 와이드너다. 89년 6월 5일 천안문 광장으로 이동하는 탱크의 행렬을 한 청년이 가로막는 장면을 찍었다. ‘탱크 맨(Tank Man)’이다. 다음 날 아침 전 세계 신문 1면을 장식한 이 사진은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 공산당이 ‘폭란(暴亂)’으로 규정했던 ‘천안문 사태’가 4일 30주년을 맞는다. ‘정치 풍파’로 수위를 낮췄지만 공산당의 역린(逆鱗)이다. ‘6·4’와 ‘천안문’은 여전히 금기어다. 중국 인터넷과 SNS에서는 검색도 안 된다. 혹여 민심이 동요할까 외신기자들의 취재는 봉쇄되다시피 했다. 30년이 흘렀지만 천안문의 시간은 그대로인 듯하다.
 
하현옥 금융팀 차장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