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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동창 여행간 아내 살아있다면···" 헝가리 사고 가족 눈물

중앙일보 2019.06.01 05:00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탑승 유람선과 크루즈선이 충돌하는 장면. [헝가리 경찰 유튜브 캡처]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탑승 유람선과 크루즈선이 충돌하는 장면. [헝가리 경찰 유튜브 캡처]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의 구조자 명단에 들지 못한 정모(64ㆍ여)씨는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란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정씨가 서재로 쓰던 방의 창문 한켠에 놓여 있었다. 경기 광명시 자택에서 31일 만난 정씨의 남편 김모(76)씨는 “사고 소식을 들은 시점부터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집안 곳곳에는 여전히 정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주풀이를 공부했던 정씨는 작명이나 사주를 봐주는 일을 했다. 서재에 놓인 책장에는 철학, 운명, 작명 등과 관련된 서적이 빼곡했다. 정씨가 사용한 수첩과 노트북도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남편 김씨는 “이 방은 아내의 사무실이자 삶의 모든 것이었던 곳”이라며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게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는 이번에 무학여고 동창생 두명과 함께 헝가리로 여행을 갔다. 바쁜 삶 속에서 생각도 못하다가 큰 마음을 먹고 떠난 생애 첫 동창들과의 해외여행이었다. 동창생 중 이모(66)씨는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정씨와 안모(65)씨는 구조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김씨와 정씨는 3개월 전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내는 열정적으로 새집을 꾸몄다. '예순 넘어 이사를 했으니 평생 살 집이다. 최선을 다해서 예쁘게 꾸미고 싶다'고 했다. 인테리어를 작은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자신의 서재도 직접 꾸몄다. 김씨는 “인테리어를 끝낸 뒤 ‘이제 방에 못질할 일도 더이상 없다.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다’고 기뻐하던 아내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며 “아내이기 이전에 삶의 동반자였고 친구였다. 아내가 행복해하던 모습이 계속 생각나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처를 잃고 정씨와 재혼했다. 올해가 결혼한 지 30주년 되는 해였다. 재혼한 뒤에는 아이를 갖지 못했지만 김씨에 따르면 정씨는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두명을 친자식처럼 아꼈다고 한다. 김씨가 이번에 이사를 온 아파트를 아내 명의로 등록하자 정씨는 ‘나중에 우리 아들들에게 아파트를 물려주고 싶다’며 전처의 자녀로 등록된 아들 두명을 자신의 아이로 입양 했다. 김씨는 “서류 절차를 마친 뒤 아내가 전처의 산소에 들르자고 해서 함께 갔다”며 “아내가 전처의 무덤을 쓰다듬으면서 ‘아이들을 앞으로도 내 자식들처럼 잘 보살필테니 하늘에서도 아무런 걱정하지 말아달라’고 눈물을 보였다. 마음씨가 누구보다 고왔던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여행을 떠난 날 아내와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새벽길을 걸었다. 김씨는 떠나는 아내에게 여행지에서 쓰라며 100만원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그게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차가운 강물에서 얼마나 놀랐을 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턱턱 막힙니다.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 생사만이라도 꼭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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