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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에 무고한 주변국들 피 흘리고 있다”

중앙선데이 2019.06.01 00:29 638호 6면 지면보기
제14회 제주포럼
31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4회 제주포럼에서 한국·미국·중국·일본의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과 대응책’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31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4회 제주포럼에서 한국·미국·중국·일본의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과 대응책’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미·중 간 무역분쟁이 악화일로인 가운데 “한국은 법치주의 등 국제 무역질서의 원칙을 고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언이 31일 나왔다. 이날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4회 제주포럼에서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한국은 미국과 중국 경제에 양다리를 걸친 채 성장해 왔는데, 미·중 무역분쟁은 이런 한국의 성공 방정식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무역을 통해 생존해 온 한국이 이 전쟁의 패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날 ‘미·중 무역전쟁: 그 향방과 대응책’ 세션에서 이같이 밝힌 뒤 “한국의 정치인과 기업들은 미·중 한쪽 편만 든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되며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원칙에 따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충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션에서는 미·중 정부를 향한 날선 비판이 오갔다. 천원링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 수석연구원은 “미·중 무역분쟁은 지난해부터 미국이 네 차례에 걸쳐 관세 인상을 하면서 시작됐다”며 “미국은 중국을 비(非)시장경제라고 규정하며 평등한 국제 교역을 방해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화웨이 등)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들을 공격하며 점점 파괴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1일자로 각각을 겨냥한 보복관세를 발효했다. 미국은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 품목에 대해 25%의 관세를, 중국은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수입품에 5~25% 차등 관세를 신규 도입한다.
 
천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결국 그 제품을 사들이는 미국 소비자와 기업들에게 부담이 돌아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제프리 쇼트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양국 무역전쟁으로 무고한 무역 상대국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며 “장기화되면 미·중 모두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는 내수 경제 호황으로 버티고 있지만 하이테크 관련 증시가 폭락하는 등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입장에서도 원하는 만큼의 경제 성장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교수는 “중국은 시 주석 취임 이후 평화적인 부상보다 점차 힘의 경쟁을 추구하고 있다”며 “오바마 행정부 때 시 주석은 ‘태평양은 충분히 넓다’는 발언으로 미·중 모두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시사하면서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선 한국에 경제적 보복을 했다”고 지적했다.
 
화웨이 사태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안보 문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됐다. 최 교수는 “5G 기술은 자율주행 차량과 사물인터넷 등 삶의 방식을 바꾸는 기술”이라며 “안보 우려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쇼트 연구원도 “하이테크 분야의 기술 패권 문제는 공급망 전체를 완전히 뒤흔드는 문제인 만큼 이 분야에서 미·중 분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천 연구원은 “중국은 반도체 등 첨단분야 혁신에 GDP 대비 2.8%가량 투자하고 있다”며 “미국이 중국에 기술 수출을 금지하더라도 곧 중국 내 자체 공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패널들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무역 질서가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데 공감한 뒤 이젠 연착륙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미국이 과거 다자주의와 법치주의에 기반한 질서를 주도하길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도 자신들의 경제력과 리더십을 어떻게 활용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쇼트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는 ‘기존의 무역 체제에서 미국이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는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머지않아 국내적으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와타나베 요리즈미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WTO 체제 등 국제 규범은 여전히 유효하며, 미·중도 이에 기반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도 경제 규모가 커지는 만큼 국제 규범에 맞는 개혁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천 연구원은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 상대 또는 적으로 볼 게 아니라 건설적 협력 관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미·중 정상이 신뢰 구축을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최 교수는 “화웨이 등은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어서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제가 봉합될 것 같지는 않다”는 입장을 냈다. 사회를 맡은 안 교수는 “많은 숙제가 남겨져 있지만 결국 자유민주주의적 국제 교역 질서를 회복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남정호 논설위원, 차세현·이영희·이유정 기자 nam,j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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