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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때문에 울다 웃는 깨알 산문들

중앙선데이 2019.06.01 00:20 638호 21면 지면보기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심보선 지음
문학동네
 
“일 안 나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뭐하는 짓인지 알아? 이건 영혼을 낭비하는 짓이야.” 허름한 식당의 안주인이 일용직 공사판 노동자인 남편에게 쏘아붙이는 장면이다. 남편은 얼마 전 자기보다 나이 어린 현장감독과 시비가 붙어 자존심이 상해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안주인은 “자존심 굽히고 돈 벌어오라는 게 아냐”라며 “당장 일 나가!”라고 외친다.
 
나는 이 식당에서 밥을 먹다 말고 촌티가 풀풀 나는 화장을 한 안주인 아주머니의 얼굴을 쳐다봤다. ‘세상에, 영혼을 낭비하는 짓이라니.’ 여기서 ‘나’는 첫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펴낸 시인 심보선이다. 사회학자인 그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이기도 하다. 심보선 시인은 “이 수수께끼 같은 영혼 때문에 나는 웃다가 울다가 웃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 “영혼, 예술 그리고 공동체라는 세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며 그 화두들을 산문집에 토해 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우리 각자에겐 나름의 영혼이 있는 법이다. 그쪽과 이쪽의 세계는 다르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완전한 타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인터랙티브하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성찰한 글 77편은 잔잔한 파문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회학을 하는 좌뇌와 시를 쓰는 우뇌를 가진 필자는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무덤덤하면서도 유려하게 써 내려 갔다. 굳이 거창한 영혼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담백하지만 그 울림의 여운은 잔잔하면서도 길다.
 
저자는 사소한 것들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에서 진리와 영혼을 꼼꼼하게 탐색하는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가장 인기 있는 시인 중 하나인 심보선씨. 감각적인 첫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냈다. [사진 채널예스]

가장 인기 있는 시인 중 하나인 심보선씨. 감각적인 첫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냈다. [사진 채널예스]

한국은 ‘처절사회’다. 그 증상은 절규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 노래방에 가는 거야. 노래방에서 하는 거 그게 노래냐? 절규지.” 뭉크가 현대 한국 사회에 살았다면 ‘절규’의 화풍은 더 사실주의적이었을 테고 인물의 표정은 더 일그러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화초를 키우면서 느끼는 소확행에 대해선 “내가 화초 하나는 확실히 살리고 있잖아”라고 위안하면서도 “내가 화초 말고 누군가를 살릴 수 있을까?”라는 불확실성의 질문으로 연결한다. 그러면서 “작다고 생각한 것은 생각보다 컸고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은 생각보다 불확실했다. 그 요상함이 나는 꽤 맘에 들었다”고 만족한다.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는 “이제껏 우리 세대를 청년세대와 연결시켜 주는 게 무엇이 있었나. 우리의 지식은 낡았고 우리의 경험은 그들의 것이 될 수 없다. 꼰대 취급을 받지 않는 게 그저 최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퀸이 나타나 두 세대를 이토록 가깝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니 퀸은 영원해야 한다. 적어도 당분간은”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 책에는 시와 예술에 대한 진솔한 고백도 담겨 있다. 시를 쓰는 행위는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경이와 두려움에 빠져 타자가 됨으로써 쓸 수 없는 것을 쓴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과 참여도 돋보인다.
 
아무리 일상사가 번잡하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어디엔가 구겨져 있을 우리의 영혼을 색출해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들여다보노라면 우리 주변 구석구석을 비추는 거울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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