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얼굴기형 무료 수술 30년, 어린이 6000명에게 환한 미소

중앙선데이 2019.06.01 00:20 638호 26면 지면보기
[J닥터 열전]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장
백롱민 원장이 베트남 의료 봉사 현장 사진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30년 간 안면기형 어린이를 무료로 수술해 왔다. [김동하 객원기자]

백롱민 원장이 베트남 의료 봉사 현장 사진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30년 간 안면기형 어린이를 무료로 수술해 왔다. [김동하 객원기자]

베트남에 사는 타잉은 열 살 때 길에 굴러다니는 수류탄을 가지고 놀다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피부가 녹아내리고 턱과 가슴이 달라붙고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장애가 생긴 것이다. 그 상태로 10년을 살았다. 성장기라 몸은 자라는데 턱과 가슴이 붙어 있다 보니 턱과 치아가 변형됐다. 눈도 잘 감기지 않았다.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던 탓에 낯을 가렸다. 한국 의료봉사진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였다. 베트남 현지에선 수술이 불가능했다. 31일 분당서울대병원장으로 임명된 성형외과 백롱민(61) 교수가 당시 타잉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턱뼈와 손가락 등을 4~5차례 수술했다.
 

형이자 스승 백세민 박사 따라 시작
매년 베트남 등 찾아 국경없는 인술
현지에 장비 주고 자체 치료 교육도

“처음엔 이렇게 오래할 줄은 몰라
당연히 해야 할 일, 멈출 수가 없어”

수술을 받은 타잉은 새 세상을 만났다. 눈은 정상이 됐고, 음식도 제대로 씹고, 손도 움직일 수 있게 회복됐다. 7~8년 뒤, 서른살 가까이 된 타잉이 2박 3일 기차를 타고 백 원장의 베트남 의료봉사 현장을 찾아왔다. “동네 대장간에서 일도 배우고, 결혼도 앞두고 있어요.” 타잉은 눈시울을 붉히며 백 원장에게 땅콩 한 봉지를 건넸다. 백 원장은 가슴이 찡했다. “뿌듯하고 고마운 순간이었죠. 안면기형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커요. 방치해선 안 되는 사회적 책임입니다.”
  
안면기형 방치는 사회적 책임
 
백 원장은 지난 30여 년을 타잉과 같은 국내외 안면기형 어린이 환자의 수술에 바친 의사다. 코·입술이 갈라진 구순 구개열 같은 안면기형 어린이의 얼굴을 바로잡아 미소를 되찾아준다. 얼굴에 기형이 있으면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기 십상이다. 확률적으론 500명 중 1명은 선천성 안면기형으로 태어난다. 백 원장은 의료 봉사를 통해 국내에서는 1150여 명, 베트남·미얀마 등지에서는 4400여 명의 어린이에게 밝은 얼굴을 찾아줬다. “쌔근쌔근 자는 아이들에게 수술 시간 1~2시간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수술방에 들어가면 그 시간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늘 긴장되죠.”
 
백 원장은 1989년, 세계적 석학이자 15살 터울 형인 백세민 박사를 따라 국내에서 형편이 어려운 안면기형 환자를 돕는 일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30여 년 전만 해도 턱이 볼에 붙어 있고, 코가 이마에 있는 아이들은 밖에 나다닐 수가 없었다. 가족들도 그런 자식을 집에 숨겨 두던 때였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의외로 많았어요.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형의 가르침대로 아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자는 소명을 갖게 됐습니다.”
 
서울대 의대 선배이자 스승이기도 한 형 백세민 박사는 미국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로 명성을 쌓던 중 국내 얼굴기형 환자 치료를 위해 귀국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광대뼈와 아래턱뼈 모양을 바꾸는 기술, 1㎜ 혈관을 잇는 미세 접합수술 기법을 개발한 장본인이다. “당시 성형외과는 멋지고 도전적인 분야였어요.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형은 젊은 의사들의 인생 모델이 됐습니다.”
 
그런 형의 영향을 받은 백 원장은 96년부터 형과 함께 베트남에서 얼굴 기형 어린이 무료 수술을 시작했다. 97년부터는 건강상의 이유로 갑작스레 은퇴한 형의 빈자리를 대신해 베트남 해외 봉사단을 이끌었다. 그가 이끄는 베트남 해외 봉사는 지난 22년간 단 한해도 거른 적이 없다. 개발도상국의 젊은 부모들은 수술비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못하고, 여력이 되더라도 의술이 뒷받침되지 못해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백 원장은 ‘세민얼굴기형돕기회(smile for children)’를 운영했다. 뜻을 함께하는 개인·법인 회원의 후원금으로 지속가능한 봉사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해외 의료봉사 현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시설이 열악해 국내에서 마취기와 모니터기 등 모든 장비와 소모품을 갖고 간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하루 평균 30명, 일주일에 200명을 진료한다. “수술 후 해맑은 얼굴을 찾은 아이들과 가슴의 응어리를 털어버렸다는 부모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이 수술 후 밝아진 부모 보며 보람
 
세팅한 장비는 모두 기증한다. 현지 의사가 자국의 얼굴기형 어린이를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서다. 또 한국에서 연수를 원하는 현지 의사를 초청해 얼굴기형 수술 방법을 전수한다. 백 원장은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베트남에서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베트남 국가우호훈장(2016년)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로 오드리 헵번 인도주의상(2014)도 수상했다. 백 원장의 열정과 사명감은 동료 의사와 후배에게도 귀감이다. 그는 지난해 참의사의 상징인 ‘장기려 의도상’을 수상했다. 장기려 의도상은 서울의대 동문이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고(故) 성산 장기려 박사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헌신적인 이웃사랑을 본받기 위해 제정했다.
 
백 원장이 평생을 이어온 봉사활동의 원동력은 뭘까. 그는 “원동력이라 할 건 없고 어떻게 보면 관성 같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마다 언제 어디로 가서 아이들을 만날지 계획을 짜곤 하는데 그걸 깊이 생각하지는 않아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할 뿐이에요.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땐 정말로 20년 넘게 할 줄 몰랐어요. 타잉 같은 아이들이 여전히 많아 멈출 수가 없어요.” 백 원장은 올해도 봉사팀을 꾸려 베트남과 미얀마에 갈 계획이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구독신청

미세먼지 실험 아이디어 공모, 이벤트만 참여해도 바나나맛 우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