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중앙] 지방선거 1주년 - 여권 시·도지사 핵심 3인방 세 갈래 운명

중앙일보 2019.05.31 10:00
박원순, ‘최장수 서울시장’ 허울뿐, 외연 확대는 지지부진
이재명, 각종 의혹들 씻어내고 ‘보편 복지’ 성공에 올인

특집기획

복병 따돌리느라 실력 발휘 못하고 허송세월!

김경수, 드루킹 덫에 민심 잃고, 지사직 상실 위기 ‘이중고’
 
민선 7기 지방자치단체들이 출범한 지 1년째를 맞았다. 지난해 6월 4일에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역대 최대 승리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는 최악의 참패를 안겼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14곳을 민주당이 석권했다. 그 중에서도 한 해 앞서 치러졌던 대선에서 주목을 받았던 이들이 선거 관문을 무난히 통과해 지방자치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지방자치 역사상 첫 3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 촛불정국의 스타에서 전국 최대 지자체의 수장이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들의 가신에서 홀로서기에 나선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의 미래 잠룡들로도 꼽히는 인물들이다. 1년을 지낸 이들은 정권 교체를 이뤄낸 시민들의 열망과 기대에 부응하고 있을까. 세 사람의 지방행정 1년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 봤다. 
01. 박원순 서울시장 | “10년의 혁명적 변화” 체감하기엔 아직 일러
지난 3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관악구 신원시장에서 제로페이로 물건을 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관악구 신원시장에서 제로페이로 물건을 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시장은 대통령에 이어 권력의 ‘넘버 투’로 꼽힌다. 의전이나 권력 서열과 무관하게 전국적 인지도를 갖는 까닭에 차기 권력에 가장 가까운 자리로 인식된다. 2대 서울시장을 지낸 윤보선, 32대인 이명박 두 사람이 서울시장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1000만 수도의 행정책임자로서 권한도 막강해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들 중 유일하게 국무회의에도 참석한다.
 
박원순(63) 서울시장은 그중에서도 기록적이다. 3선에 성공한 건 그가 유일하다. 박 시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선시대 한성판윤까지 통틀어” 최장수 시장이다. 그는 지난해 4월 3선 도전에 나서면서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강산이 변하는 데 10년 걸린다. 시민의 삶을 바꾸는 데에도 10년이 필요하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됐으니 햇수로 9년째다. 내년이면 서울시민의 삶의 변화가 완성되는 시점이다. 박 시장의 비전은 얼마나 현실화했을까. 박 시장은 “과거 토건에 투자하는 시대에서 사람에 투자하는 도시로 확실히 패러다임이 전환됐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띄는 건 교통인프라 분야다. 도로교통 분야는 역대 최대 규모(35조원)인 올해 예산 중 유일하게 감소했다. 이는 박 시장의 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박 시장의 교통정책 방향은 보행자 중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걷기 좋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에 따라 서대문 고가차도 등 20여 개 고가차도가 철거됐다. 서울역 철길로 갈라진 동서를 잇는 고가차도는 공원 개념의 인도(서울로7017)로 바뀌었다. 도심 통행 속도는 시속 50㎞(이면도로는 시속 30㎞)로 줄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지방선거 때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박 시장이 교통개선 인프라를 투자하지 않아서 서울이 교통지옥이 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 전 지사의 비판과 달리 실제 통계에선 박 시장의 정책 방향이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보행자 중심 정책으로 나타나는 불편은 미미하거나 오히려 개선됐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서울시와 공동으로 실험한 결과 서울시내 일부 구간의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60㎞에서 50㎞로 낮췄을 때 통행시간 차이는 2~3분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교통사고 치사율은 30%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도심 통행차량 평균 속도는 취임 전 시속 13~16㎞였으나 취임 후 17~19㎞로 오히려 빨라졌다. 또 대중교통 2010년 시내버스 만족도 조사에서 74.16점. 지난해에는 81.24점으로 꾸준히 올랐다.
 
토건 등의 SOC 투자를 줄이다 보니 서울시 살림살이도 나아졌다. 그가 시장에 취임할 당시 서울시 채무는 20조에 달했다. 지난해까지 8조원의 부채를 감축해 재정건전성을 높였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 푸어스(S&P)가 발표한 서울시의 신용등급은 AA로 양호한 수준이다.
 
“토건보다 사람에 투자” 패러다임 변화
박 시장은 한 달간 강북의 옥탑방살이를 직접 체험한 뒤 강북 개발구상을 내놨다가 부동산 폭등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 시장은 한 달간 강북의 옥탑방살이를 직접 체험한 뒤 강북 개발구상을 내놨다가 부동산 폭등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3선의 첫 살림살이인 올해 예산은 복지와 도시재생에 초점이 맞춰졌다. 처음 서울시장에 취임했을 때 4조원대였던 복지예산은 올해 11조원으로 8년 만에 10조원 시대를 열었다. 서울시 전체 예산(약 35조7000억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다. 재건축·재개발의 대안으로 추진하는 마을재생사업 예산도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예산서에서 눈을 떼면 패러다임의 변화는 체감하기 어렵다. 유권자들의 평가는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기억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야 머릿속에 새겨진다. 그런데 박 시장의 정책은 “단절이 아닌 연결과 확장, 진화를 거쳐 서울을 글로벌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부연설명이 붙지 않는다면 뚜렷하게 그려지질 않는다. 예를 들어 ‘이명박=청계천, 중앙버스전용차로’와 같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기억이 박 시장에겐 부재한 것이다.
 
3선에 성공한 박 시장의 행보에는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한 조바심이 묻어났다. 부동산정책을 두고 정부와 엇박자를 낸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10일 싱가포르 출장 중이던 박 시장이 현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발언이 단초가 됐다.
 
박 시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구상을 밝혔다. “여의도를 통째로 재개발하고, 서울역과 용산역 사이 철로는 지하화한 뒤 지상은 마이스(MICE) 단지와 쇼핑센터, 공원 등으로 개발하겠다”는 박 시장의 발언에 ‘여의도 재구조화 종합구상’이란 해석이 붙었다.
 
즉각 부동산 시장이 반응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박 시장의 발언이 나온 직후(7월 9~16일) 서울 아파트 가격은 0.1% 올라 전 주(0.08%)보다 상승폭을 넓혔다. 시장이 박 시장의 발언을 호재로 받아들인 결과다. 특히 여의도와 용산의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각각 0.24%, 0.2%로 큰 변화를 보였다.
 
박 시장의 발언에 정부가 발끈했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온 힘을 쏟던 터였다. 국회에 출석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도시계획은 시장이 발표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진행되려면 국토부와 긴밀한 협의가 이뤄져야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 표시였다. 그러나 박 시장은 팟캐스트에 출연해 “여의도를 서울의 맨해튼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종합적 가이드라인과 마스터플랜 아래 개발이 진행되는 게 좋다”고 응수했다.
 
결국 서울시와 국토부 고위 관계자들이 만나 주요 개발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두 기관이 함께 관리하기로 합의하는 것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 달 뒤 박 시장의 돌출행동이 다시 나왔다. 이번엔 강북 개발 청사진이었다. 박 시장은 8월 19일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강북 개발계획을 예고 없이 발표했다. 도심 경전철사업 재추진, 공공기관 강북 이전, 빈집 매입 후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공급 등의 내용이었다. 이 발언이 나온 직후 동대문구·은평구·중구 등의 집값이 요동쳤다.
 
결국 박 시장은 일주일 뒤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그는 “예상치 않았던 부동산 투기나 과열이 일어나면서 이것을 지금처럼 그대로 추진하기 어렵다”며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 돼야 다시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난개발이 안 되도록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기존 재개발은 안 된다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역 개발이 무조건 토건사업으로 이해되는 것은 70년대식 발상”이라고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박 시장의 선의와 취지는 이해되지만 서툴렀다”며 “박 시장의 외연이 확장되지 않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박 시장의 메시지 전체의 맥락을 놓고 보면 시장을 부추기려 한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언론과 시장은 맥락이 아니라 키워드에 주목한다. 깊이 있는 분석 보고서보다 간결한 지라시가 주식 시장에 더 영향을 끼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체험 이벤트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4월 27일 경기 파주시 진서면 판문점 안에서 열린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연철 통일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이 만찬 전 건배를 하고 있다.

4월 27일 경기 파주시 진서면 판문점 안에서 열린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연철 통일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이 만찬 전 건배를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 달간 보여준 강북의 옥탑방살이 체험도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대낮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가는 폭염 속에서 강행한 체험정치였지만 진정성보다 보여주기로 비춰졌을 뿐이다. 더구나 옥탑방살이를 하면서 정리된 강북 개발 구상은 부동산 시장 교란이란 역풍을 맞고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해보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정치권에선 “체험 이벤트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박 시장의 옥탑방살이 이벤트는 정치인들이 이미지 쇄신이 필요할 때 주로 써먹는 단골 처방이다. 경기도지사를 지냈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006년 도지사직을 마친 뒤 민심대장정을 했던 게 대표적이다. 손 대표는 당시 100일간 전국을 떠돌며 민심을 청취했다. 손 대표에 이어 경기도 지사를 지낸 김문수 전 지사는 택시운전기사로 변신해 민심을 살피는 ‘민생택시’ 이벤트를 벌였다. 두 사람 모두 유권자에게 친서민적 이미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기대한 만큼의 지지층 확장 효과를 얻진 못했다.
 
최근에는 ‘제로페이’ 보급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제로페이는 지난해 박 시장이 3선에 도전하면서 내놓은 핵심 공약이었다. 소상공인 전용 결제시스템인 ‘서울페이’로 시작했다가 정부가 이를 소상공인 지원시책으로 채택해 전국으로 확대됐다. 일단 ‘박원순표 서민경제 대책’이 전국 정책으로 시행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소상공인을 위하는 정책인 데다, 혜택도 많아 주 사용자인 서민층에도 호소력이 있다. 지난해 12월에 시범사업을 시작해 올해 4월 기준 가맹점 수가 12만 곳을 넘었다.
 
하지만 제로페이를 접한 소비자들이나 소상공인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우선 사용이 복잡하다. 자체 어플리케이션(앱)이 없어서 은행 앱을 이용해야 하고 QR코드를 찍어 금액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점포의 포스(POS·판매정보관리) 시스템과 연동되지 않는 취약한 단점을 갖고 있다. 정부가 시장이 바르게 형성되도록 정책으로 조정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점 때문에 업계에선 ‘관치페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강남과 강북의 생활 환경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강남·북의 아파트 매매가격 차이는 12년 만에 가장 폭이 컸다. 강북의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보행자 중심 도로가 늘어나는 동안 강남의 교통망은 하루가 다르게 거미줄처럼 연결된다. 서리풀터널 개통으로 강남과 서초·동작을 잇는 신테헤란로 개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관악산을 관통하는 강남순환고속도로는 서울 남부, 동서 통행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강북의 구도심이 재생사업에 의존해 슬럼화를 간신히 피하는 동안 강남은 여전히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이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몸통(강남)은 놔둔 채 꼬리(강북)만 잡아 흔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 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3선 연임을 ‘10년 혁명’이라고 규정했다. 서울시를 혁명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시민의 뇌리에 각인되는 혁명적 변화는 아직 요원해보인다. 기억은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삼는 법이다. ‘메이드 바이 박원순’이 아닌 ‘메이드 위드 시민들’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02. 이재명 경기도지사 | 1심 재판 ‘완승’ 진짜 승부사 기질 입증 
지난해 취임한 지자체장들 중 이재명 경기도지사 만큼 논쟁적인 인물도 없을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한 촛불정국에 예고 없이 등장해 단숨에 민주당의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다. 그 여세를 몰아 인구 1300만 명의 전국 최대 지자체인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여유 있게 당선됐다. 만 3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그가 보여준 정치적 퍼포먼스는 폭발적이었다.
 
이 지사의 가장 큰 매력은 완곡한 정치적 레토릭(수사)을 걷어낸 직설 화법에 있다. 여기에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순발력을 갖췄다. 두 번의 성남시장 임기를 통해 얻은 행정 경험과 풀뿌리 시민운동 이력을 통해 얻은 자산이다. 전국 정치 무대에선 아직 신인으로 꼽히는 이 지사가 기본기 탄탄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하지만 취임 후 지난 1년간 이 지사의 활동은 아쉬움이 컸다.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연달아 불거진 여러 의혹들이 그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검찰이 기소한 친형 강제입원 시도 의혹과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업적 과장 외에 배우 김부선씨와의 스캔들, 조폭 연루 의혹 등이 그것이다. 대선 때부터 내내 그를 괴롭혔던 루머들은 대부분 검찰과 경찰 조사에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1형사부(부장 최창훈)는 5월 16일 오후에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검찰이 기소한 이 지사의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지사는 친형 강제입원 의혹에 대해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검사 사칭과 대장동 개발업적 과장 의혹에 대해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등 4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에 징역 1년6개월을, 나머지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벌금 600만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각각의 혐의에 대한 판결 이유에서 “검사 사칭은 억울하다는 표현일 뿐 허위사실이 아니고, 대장동 개발 업적을 선거 공보물에 포함한 것은 확정이나 혼돈의 의도가 아니다”고 밝혔다. 또 친형 강제입원 의혹에 대해서도 “형님의 가족이 받아들이지 않는 마당에 공무원을 통해 다소 사회적 무리나 도의적 비난은 받을 수 있으나 직권남용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권한에 따른 법 절차를 통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친형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키려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지사의 완승이다.
 
법원이 내 준 면죄부, “이제부터 진짜 실력”
이재명 경기지사가 5월 16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가 5월 16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지사가 혐의를 벗음에 따라 향후 도정 운영에 더욱 탄력이 붙게 됐다. 그가 지사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경기도 공직사회의 어수선한 분위기도 쇄신할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 지사 특유의 행정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무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지사에게 지난 1년의 가장 큰 소득은 그동안 여러 번의 선거 과정에서 반복됐던 의혹들을 이번에 완전히 씻어냈다는 점이다. 향후 그의 정치적 행보에는 일단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부터 괴롭혀왔던 루머들이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나와 확대 재생산됐다. 해명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1심의 무죄 판결은 사필귀정이다.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였고, 과장된 오해였다.” 1심 판결이 나온 뒤 이 지사의 최측근이 전한 그간의 소회다.
 
이 지사는 최근 민선7기 출범 1주년을 맞아 자신의 SNS를 통해 “현재의 경기도는 한마디로 혁명 중”이라고 자평했다. 그가 내세운 도정 가치는 공정·복지·평화다. 그중에서도 복지에 관한 그의 철학과 정책 아이디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하겠다. ‘이재명표 3대 무상복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무릅쓰고 청년배당, 공공산후조리비, 무상교복 지원사업을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로부터 보복성 감사와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이 지사가 내놓은 기본소득 개념은 그의 복지 철학과 경험이 녹아있는 결정체라고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29일 수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회 경기도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이 지사는 “기본소득 도입이나 보편적 복지의 확대는 근본적으로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경기 침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경제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기본소득 정책을 효과적인 경제정책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지역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기본소득을 통해 완성해 본 경험 때문이다. 성남시에서 시행했던 청년배당의 경우, 분기별로 일정 금액의 배당금을 지급하는데, 이때 지급수단은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성남사랑상품권)였다. 성남시 전체 경제 규모에 비하면 작은 금액이지만 전액 지역 안에서 소비가 이뤄지다 보니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에 단비가 됐다.
 
이 지사는 “당시 청년 배당에 대해 ‘헬리콥터 머니냐, 퍼주기냐, 표 얻기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니냐’ 등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며 “그러나 지금 기본소득 제도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선순환을 위해서 아주 필요한 정책이라는 점에 많은 분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무상복지 정책을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했다. 성남에서 실전을 통해 효과는 일부 확인한 터여서 논쟁이 비교적 적었다. 우선 청년배당과 공공산후조리비 지원을 실시했다. 청년배당은 경기지역에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들에게 분기별 25만원(연간 10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청년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정책 시행 후 처음 지급한 올해 1분기에 14만9928명 중 12만4438명(82.93%)이 신청했다. 10명 중 8명꼴의 높은 신청률이었다. 특히 성남시 거주 청년들은 93%가 신청해 가장 높았다. 경기도 관계자는 “복지부 협의가 3월말에 끝나 시간이 부족했는데도 반응이 좋았다. 2분기에는 신청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은 지역화폐로 지급됐다. 지난해 ‘경기지역화폐’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도내 31개 시·군이 자체적으로 ‘경기지역화폐’를 발행한다. 지폐 형태나 카드형,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해 결제하는 모바일형 등 세 가지 종류다. 경기도는 이 지사의 임기 안에 총 1조5905억원 어치의 지역화폐를 발행할 계획이다. 그중 8852억원은 청년배당 등 경기도형 복지정책 자금으로 지출하는 정책발행분이다.
 
‘이재명표 복지정책’ 본격 시동
지난해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3기 신도시 발표장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명 경기지사가 수도권 기초단체장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사진:국토교통부

지난해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3기 신도시 발표장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명 경기지사가 수도권 기초단체장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사진:국토교통부


이 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 해외 연구자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공동설립자인 애니 밀러 영국 시민소득트러스트 의장은 기본소득 박람회 기조연설을 통해 “소상공인들에게 사용된다는 점에서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측면이 있다”며 “기본소득은 비용보다 재분배 효과와 영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알마즈 젤레케 미국 뉴욕대 교수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하는 청년배당은 현명한 제도이자 모든 지자체가 세금 인상 없이 기본소득을 할 수 있는 제도”라면서도 “지방정부가 진정한 부의 재분배를 위해서는 세금의 인상이 불가피하다”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의 효과는 경제적인 부분 외에 지방분권 강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애니 밀러 의장은 “청년배당은 중앙의 체제개편이 가능해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기도 관계자도 “지방분권을 강화하려면 지역의 자립 경제 구조가 중요한 조건”이라며 “지역화폐와 기본소득 정책은 지역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발표된 수도권 3기 신도시는 이 지사에게 호재다. 2기 신도시만 해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중앙정부가 주도해 개발을 진행했다. 하지만 3기 신도시 개발에는 각 지자체 도시공사가 LH와 공동사업시행자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수익성이 좋은 수도권 신도시 개발 이익을 지자체가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지사는 “해당 지역 개발이익은 지역 기반시설이나 생활SOC 확충에 제대로 사용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시작된 남북관계 해빙무드에 경기도도 비무장지대(DMZ)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평화모노레일’ 건설 사업도 추진한다. 경기관광공사에 따르면 평화모노레일은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판문점까지 11㎞ 구간을 달린다. 구간에는 4개 역(임진각역-분단의역-평화의역-판문점역)을 설치한다.
 
경기도 전체 776개의 문화재들 중 160여 개가 접경지역에 있다. DMZ일대의 14개 전망대와 안보·생태 관광지에 연간 6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지만 각각의 연결고리가 약해 대부분 당일 여행에 그친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것.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DMZ를 아시아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 25곳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평화모노레일을 활용해 DMZ 일대를 관광할 수 있는 코스가 개발된다면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발전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경기관광공사 관계자는 밝혔다.
 
1심 판결을 통해 한숨 돌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다. 검찰이 항소할 경우 힘겨운 제 2라운드 전쟁에 접어들어야 한다. 법정 다툼과 별개로 ‘정치인’ 이재명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 즉, ‘친문세력’과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해야 여권 내에서 입지를 도모할 수 있다. 특히 이 지사가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의 취업 특혜 의혹을 거론하면서 깊어진 갈등의 골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그의 정치적 활동 반경도 결정된다고 하겠다.
 
03. 김경수 경상남도지사 | 시작부터 험난한 홀로서기, 남은 4년이 관건
김경수 경남지사는 취임 전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한 친노의 핵심인물이어서다. 비록 2016년에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단 정치 초년생이지만 무게감이 남달랐다. 민주당 내에선 문 대통령의 뒤를 이을 적장자로 꼽혔다.
 
동시에 문 대통령의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했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그가 연루되면서부터다. 특검 수사에 이어 급기야 임기 중 법정에서 구속돼 도지사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취임한 지 7개월 만의 일이었다. 1심 법원은 지난 1월 30일 김 지사가 댓글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행히 2심 법원이 보석 청구를 받아들여 4월 17일 석방됐지만, 예상치 못하게 중형을 내린 1심 선고를 뒤집기 위해 2심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2심에서 형량을 대폭 낮추거나 무죄로 뒤집지 못할 경우 지사직을 상실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절체절명의 위기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받거나, 그 외 다른 범죄로 금고형 이상이 확정되면 직을 상실한다. 김 지사는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죄로 징역 2년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직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적 생명에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직을 상실하게 되면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되기 때문이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10년간 있을 선거는 총선 3회, 대선 2회, 지방선거 2회다. 올해 만 51세인 그가 정계활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는 나이는 60대에 접어든 뒤다.
 
김 지사의 1년은 극과 극의 반전으로 기록된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유망주로 여권의 기대감과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취임했지만 지금은 가장 위태로운 은둔자로 전락했다. 경남도 관계자는 “2심 선고가 나오기 전까진 언론과 일체 접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칫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다. 다른 지자체들이 취임 1주년을 기념하는 기자회견과 성과를 알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과 달리 경남도는 적막감이 느껴질 정도로 잠잠하다. 경남 지역의 한 중견 언론인은 “그럴 만한 분위기도 아니지만, 그동안 재판에 집중하느라 도정 성과로 내놓을 게 없는 게 솔직한 현실”이라고 전했다.
 
지사직 상실 위기, 민심 이탈 이중고 “출구가 없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오른쪽) 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오른쪽) 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더 큰 문제는 민심의 이탈이다. 민선7기 취임 100일을 맞아 리얼미터가 실시한 광역단체장 지지도 조사에서 김 지사의 지지율은 42.3%로 나타났다. 선거 때(52%)보다 10%포인트가 빠져나간 셈이다. 매달 발표되는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김 지사는 취임 초부터 최근까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10일 발표된 리얼미터 4월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김 지사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41.5%로 15위에 머물렀다.
 
김 지사의 평가가 낮은 것은 경남 지역이 겪고 있는 지역 경제 침체 상황과 맞물려 있다. 조선 경기가 악화되면서 경남 지역에 집중된 조선소와 관련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연간 지역경제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경남 지역 수출은 전년도보다 32% 줄었다. 경남의 최대 수출 품목은 선박과 해양플랜트 등이다. 지역 내 건설 수주액은 39.7% 급감했다. 실업률은 2017년보다 0.1% 포인트 오른 30%를 기록했다. 경남 지역 취업자 수는 2017, 2018년 2년 내리 감소세다. 지난해 만 15~29세의 청년 실업자 수는 2만2000명으로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4월 24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 최종보고회’에 참석한 송철호 울산시장,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왼쪽부터)가 국무총리께 드리는 건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송봉근 기자

4월 24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 최종보고회’에 참석한 송철호 울산시장,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왼쪽부터)가 국무총리께 드리는 건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송봉근 기자

경남 지역 언론인 A씨의 말이다. “경남도민이 김 지사를 선택한 건 그가 문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란 점 때문이다. 국비 지원이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유치한다든지 여러모로 정부 도움을 받기에 유리할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다. 오히려 지사를 다시 뽑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 상황을 벗어날 계기가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김 지사의 운명을 가를 2심 선고는 6~7월쯤 나올 예정이다. 현재로선 1심을 뒤집는 반전 드라마를 쓰는 데 전념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유능한 행정가로, 또 여권의 적통임을 재입증하는 건 그 다음 문제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na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