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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70년대 중화학공업 이끈 ‘오 국보’

중앙일보 2019.05.31 00:07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는 오원철 전 수석. [중앙포토]

지난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는 오원철 전 수석. [중앙포토]

‘한국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의 효시’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1세.
 

오원철 전 경제수석

오 수석은 1960~70년대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담당하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를 가르켜 ‘오 국보’라고 불렀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황해도 출신인 고인은 경성공업전문학교 화학공업과(서울대 화공과 전신)를 졸업하고 공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시발자동차 공장장을 지내다가 61년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조사과장을 맡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상공부 화학과장으로 공직에 입문, 상공부 공업1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를 거쳐 71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다.
 
74년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정책 선언에 맞춰 중화학공업 기획단장을 겸임했다. 창원을 비롯해 울산·온산·구미·여수 등 전국 산업기지 조성을 지휘했다.
 
73년 오일쇼크 때는 중동진출을 기획했다. 70년대 후반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진행된 핵연료 국산화사업의 책임자로도 지목된다. 80년 신군부 쿠데타로 물러난 뒤 12년간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다. 90년대 들어 기아경제연구소 상임고문, 한국형 경제정책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저서로는 『한국형 경제건설』과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가 있다. 생전 고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기술 강국’만이 살 길임을 강조했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 발인은 6월 1일 오전 7시30분이다. 장지는 경기도 가평군 선영. 유족으로는 아들 오범규 명지대 교수와 딸 오인경 전 포스코 상무가 있다. 02-2258-5940.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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