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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의 한반도평화워치] 자유민주주의 빠진 대북정책, 한·미 균열과 외교 고립 불러

중앙일보 2019.05.31 00:02 종합 27면 지면보기
미·중 ‘프레임’ 경쟁 속 한국 외교의 길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LIO)가 흔들리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자유무역을 기치로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의 도전을 극복한 LIO는 인류의 이념적 진보 과정을 매듭짓고 최종적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냉전기 스파이 소설 작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é)가 지적한 대로, 패배해야 마땅했던 강대국(소련)이 패한 것은 맞지만, 잘못된 강대국(미국)이 승리했던 것일까?
 
지난 30년의 국제 상황은 냉전 붕괴가 미국의 압도적 패권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 세계화 패러다임 대신, 새롭게 구성된 국제 질서로 이어졌어야 했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첫째,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진전은 문명사적 대변혁이었지만, ‘국경 없는 경제’와 무한 경쟁 세계에서 자본과 역량을 갖춘 소수의 세력과 그렇지 못한 대다수 사이의 빈부 격차를 가중했다. 이는 금융 위기와 환경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1999년 독일 쾰른의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 반대를 위한 3만여 명의 ‘인간사슬’ 시위와 ‘시애틀 전투’라 불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총회 반대 시위를 필두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반세계화 운동은 반서방·반자본 사회 혁명을 주창한 1970년대 제3세계의 혁명적 성향을 짙게 띠었다.
 
둘째, 탈냉전기 미국의 대외 전략은 역설적인 양상을 띠었다. 한편으로는 냉전기 안보·경제 협력을 구축해 온 우방국들과 이념적 우월감 속에 서구적 가치를 다른 국가들에 일방적으로 주입하려고 시도하다 많은 반발을 샀다. 다른 한편으로는 냉전기 소련과의 경제적·군사적 원조 경쟁의 일환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주변부에 쏟았던 전략적 관심과 지원을 대부분 끊었다. 방치된 주변부는 실패 국가 혹은 내전과 테러의 온상으로 전락하였고 결국 9·11 테러로 이어졌다.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전념한 미국의 선택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보듯 물리력을 사용한 민주정부 수립이었다. 그러나 각국의 고유한 특성과 인종과 종교를 둘러싼 갈등, 민족주의 부상을 간과한 외형적 민주 제도 이식은 사회적 혼란과 반미 감정만 고조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이 반테러리즘에 자원과 역량을 투입하는 사이 비(非) 자유주의 국가인 중국은 심한 견제 없이 국제 영향력을 확장하였다.
 
셋째,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내부로부터 분열 조짐을 보이게 되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와 2010년 유럽 금융 위기로 대변되는 서구의 상대적 부진은 세계화의 한계를 드러냈다. LIO의 진원지에서도 불평등이 심화하며 배타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또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대외 정책, 반이민·반난민을 외치는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은 이들 LIO 대변 국가가 지향하던 보편적 가치와 다원주의, 관용 정신을 약화했다.
 
이와 대비하여 중국·러시아·터키·이란을 비롯한 비자유주의 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급기야 201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 무역협정이 미국을 불리하게 한다며 자유무역 대신 공정무역을 강조했지만, 시진핑 주석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옹호하며 다자주의 유지를 촉구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그런데도 LIO를 대체할 가치와 규범을 토대로 한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드는 것에 대한 논란이 많고, 중국 리더십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의구심도 크다. 사실 중국은 지난 30년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시장을 빌리고 LIO의 유용성을 이용하면서,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멀리하는 데 성공하였다. 언제까지 ‘머리는 왼쪽, 몸통은 오른쪽’으로 양분된 전략이 지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늘날 미·중 관계를 두고 역사적으로 패권 교체 시기에는 대부분 전쟁이 있었던 사실에 근거하여 패권국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있다. 반면, 미·소 냉전 때와는 달리 이데올로기 측면이 두드러지지 않고 적대적이면서도 상호의존적인 ‘치메리카(Chimerica)’ 관계가 일상화할 것이라는 시각이 더 지배적이다.
 
하지만 격화되는 미·중 무역 마찰은 부(富)와 글로벌 지배력을 두고 벌이는 패권 경쟁의 서막 그 이상일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중국 대중들은 열강에 의한 19세기 굴욕 외교를 떠올리며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표출하고 있고, 시진핑 주석은 미국 자본주의에 대응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강조하며 제도·정체성·이념 등을 포괄하는 ‘프레임 경쟁’을 시작했다. 더욱이 ‘미국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은 또 하나의 비자유주의 강대국인 러시아와 LIO의 가치와 규칙을 타파하려는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서 미·중 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외교적 고민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두 강대국 간 상호 배타적 갈등 상황이 첨예화해 궁극적으로 양자택일의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대부분 ‘헤징(Hedging) 전략’ 즉 미국과의 관계는 안정적으로 유지하되 중국에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게 관리하는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주는 미국과의 양자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인도와 더불어 이른바 쿼드 블록(4각 동맹)을 구축하였다. 인도 역시 중국과 협력하여 ‘친디아 경제권’을 형성하였지만, 정치·군사적으로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앞세워 중국과 파키스탄을 견제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미국 주도의 상호 첩보 동맹체(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인 ‘파이브 아이즈’(5 Eyes)에 가입하였다. 이들 국가는 경제 대국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정치·안보 협력을 통한 장기적 국익을 우선시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설사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 평화)가 무너져 ‘패배해야 마땅한 강대국(미국)’이 쇠락하는 것에 환호할 국가가 많다 하더라도, ‘팍스 시니카’(중국 주도의 세계 평화)의 도래가 가져올 ‘또 다른 잘못된 강대국(중국)’ 주도의 비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불안과 위협 의식은 훨씬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미·중 사이에 끼고 북한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게 된 상황이라 역내 다른 국가들보다 전략적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내에서 한·미동맹과 한·중 관계의 병행 발전이 중요하다는 데에 반대가 거의 없지만, 이를 위한 우선순위와 접근 방식에 대한 이견은 국론 분열 수준이다.
 
더욱이 우리의 현실 정치는 극명하게 나누어진 진보 vs 보수, 또는 민족 vs 외세라는 이분법 논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빨갱이, 토착 왜구, 독재자의 후예라는 말들이 네티즌 사이에서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난무한다. 이렇듯 양극단으로 나뉜 이념적 편향성을 바탕으로 한 사고와 비방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근본적 정체성마저 흔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선의에 가득 찬 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력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적폐 청산과 진상 규명, 과거사 청산이 한창이지만, 북한이 저지른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숱한 도발은 ‘남북한 특수 관계’ 속에 면죄부를 받아왔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대북 제재 완화로 비핵화 촉진’을 잇따라 강조하여 한미동맹의 균열과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렇듯 고군분투하는 우리 대통령에게 ‘촉진자가 아닌 민족 이익 당사자’가 되라고 강도 높게 밀어붙이는 배은망덕한 북한 지도자의 갑질이다.
 
그동안 남북한 관계에 있어 북한의 셈법에 따라 그토록 숱하게 롤러코스터를 탔으면 평화는 말로만 갈구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북·미 관계는 남북 관계를 통해 결코 개선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만도 하다. 우리 정부가 혹여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북핵 불용의 원칙을 ‘우리 민족끼리’의 미래를 위해 양보한다면 우리 앞선 세대의 희생을 헛되이 할 뿐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에 불행한 유산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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