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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인간에 대한 예의가 기생·공생 가른다”

중앙일보 2019.05.29 00:04 종합 23면 지면보기
28일 시사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최우식·박소담·장혜진·조여정·이선균·송강호. [뉴스1]

28일 시사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최우식·박소담·장혜진·조여정·이선균·송강호. [뉴스1]

“칸은 벌써 과거가 됐습니다.”
 

30일 개봉 ‘기생충’ 국내 첫 공개
‘설국열차’때 구상한 두 가족 얘기
코믹한 범죄물이자 악당 없는 비극
“칸은 벌써 과거, 관객 반응 보고파”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첫 황금종려상을 받고 귀국한 지 하루 만에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28일 서울에서 ‘기생충’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수상의 감격을 고스란히 되뇌는 대신 새 영화를 곧 관객에게 선보이는 감독다운 마음을 드러냈다. “관객 한 분 한 분의 생생한 소감”을 강조하며 “틈이 날 때마다 약간의 가벼운 분장을 하고 일반 극장에서 좌우의 진짜 관객 틈바구니에서 그분들이 속닥속닥 말하는 걸 듣고 싶다”고 말했다.
 
30일 개봉을 앞두고 이날 국내에 처음 공개된 ‘기생충’은 칸에서의 호평이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 수시로 터지는 웃음에 이어 스릴과 긴장, 비극과 여운이 차례로 펼쳐지며 2시간여 동안 다양한 감정을 고루 맛보게 했다.
 
이 영화의 인물 구조는 단순하고 대칭적이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와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이선균)네. 두 집 모두 부부·아들딸로 이뤄진 4인 가족이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으르렁대는 게 가족이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의 두 집 모두 가족끼리의 관계는 비교적 원만하다고 할 수 있다.
 
‘기생충’에서 사진은 기택(송강호)네 반지하, 아래 사진은 박사장(이선균)네 대저택. 이 영화는 두 가족의 극단적으로 다른 처지를 말보다 공간으로 확실하게 보여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에서 사진은 기택(송강호)네 반지하, 아래 사진은 박사장(이선균)네 대저택. 이 영화는 두 가족의 극단적으로 다른 처지를 말보다 공간으로 확실하게 보여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특히 기택네 식구들이 생계를 위해 협업을 펼치는 대목은 한 편의 유려한 코미디이자 다단계로 흥미를 더해가는 범죄드라마 같다. 극 중에서 각자의 역할 분담도, 이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전체를 아우르며 속도감을 더하는 연출도 모두 빼어나다.
 
그 중에도 맛깔난 것은 아들 기우(최우식)가 아버지 기택에게 일종의 ‘연기 지도’를 하는 대목. 기택을 연기한 송강호가 어떤 배우인지 관객 대부분이 알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대목이다. 기우를 연기한 배우 최우식은 “대본을 처음 읽고 엄청나게 긴장됐던 장면”이라며 “감히 누가, 제 또래 배우가 송강호 선배에게 연기 지도를 하겠냐. 아무리 연기라고 하지만 긴장되고도 재미있었다”고 전했다.
 
코미디도 그렇지만 특히 비극을 빚어내는 방식은 예측불허다. 영화 전체에 딱히 악당이라고 지목할 만한 캐릭터가 없는 것도 특징. 간담회에서 봉 감독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구상한 것이 2013년이라고 전했다. “2013년은 ‘설국열차’ 후반작업할 때였어요. ‘설국열차’도 부자와 가난한 자의 얘기잖아요. 기차 칸 앞 뒤로 나뉘어서 싸우는 SF장르였죠. 똑같은 부자와 가난한 자 얘기지만 좀 더 내 주변의 일상, 우리 주변 현실에 가까우면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의 얘기로 그려보면 어떨까 싶었죠.”
 
‘기생충’에서 위 사진은 기택(송강호)네 반지하, 사진은 박사장(이선균)네 대저택. 이 영화는 두 가족의 극단적으로 다른 처지를 말보다 공간으로 확실하게 보여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에서 위 사진은 기택(송강호)네 반지하, 사진은 박사장(이선균)네 대저택. 이 영화는 두 가족의 극단적으로 다른 처지를 말보다 공간으로 확실하게 보여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의 계급투쟁, 계급 간 충돌이 액션과 함께 적나라하게 그려졌다면 ‘기생충’은 빈부격차는 전혀 다른 맛을 낸다. 가난한 기택네도, 부자인 박사장네도 상대를 일방적으로 적대시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가족의 전혀 다른 형편은 반지하와 대저택, 사는 공간을 통해 극단적인 대비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선을 넘지 않는다”거나 “냄새가 난다” 같은 미묘한 대사가 독특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두 가족의 만남이 빚어내는 불안한 접점을 아주 예리하게 포착한다.
 
봉 감독은 “굳이 ‘양극화’ 같은 단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마주치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에 대해 “서로에 대한 예의, 인간의 존엄에 관한 부분을 건드는 게 있다고 본다”며 “인간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예의를 지키냐에 따라 기생이 되느냐, 공생이나 상생이 되느냐 갈라지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칸영화제 공식상영에 참석했다 일찍 귀국한 배우들도 다함께 등장해 수상장면을 온라인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본 소감도 전했다. 이선균은 “칸에 있는 것만큼 벅찼다. 아침에 맥주 한잔하며 자축했다”고 말했다.
 
칸영화제 현지 수상소감에서 봉 감독은 “열두 살에 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그에 관한 질문을 하자, 특유의 디테일하면서도 별 것 아니라는 투의 설명을 들려줬다.  
 
“정확히 말하면 중학생 때였어요. 한국에선 보통 열네 살이라고 하는데 현장이 프랑스였기 때문에 그쪽 나이 계산법을 기준으로 열두 살 때였다고 한 거죠. 중학생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고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그 당시 ‘스크린’ ‘로드쇼’ 같은 월간잡지를 보면서 그랬던 아이들이 많이 있었고, 저도 그런 평범한 아이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성격 자체가 집착이 강한 성격이라 그 후에도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오늘날 이렇게 좋은 배우들은 만나는 지경에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후남·나원정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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