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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와 '가가함' 오른 트럼프···"日 군사대국화 손들어줬다"

중앙일보 2019.05.28 16:5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 전용헬기 마린원이 28일 오전 10시 30분쯤 일본 해상자위대 가가함 갑판에 내리고 있다. [EPA=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 전용헬기 마린원이 28일 오전 10시 30분쯤 일본 해상자위대 가가함 갑판에 내리고 있다. [EPA=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국빈방문 마지막 날인 28일 오전 10시 30분쯤 전용 헬기인 마린원을 타고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탑재 호위함인 가가함(DDH-184) 갑판에 내렸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다. 미국 대통령이 일본 전투함에 승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가가함 격납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부. [AFP=연합]

일본 해상자위대 가가함 격납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부. [AFP=연합]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갑판 아래 격납고로 내려가 미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 500여명 앞에서 연설했다. 아베 총리는 “미ㆍ일 동맹은 전례 없이 강하다”며 “이 함상에 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 게 그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는 강한 결의를 갖고 일본의 방위능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은 이날 양국 정상이 가가함을 찾은 데 대해 “미국과 일본이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을 만들어 나간다는 의지를 대외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가가함엔 미ㆍ일 동맹의 과거ㆍ현재ㆍ미래 코드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최종 목적지는 ‘군사대국 일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뼈아픈 과거=‘가가’는 원래 일본 제국주의 시절 항공모함의 이름이었다. 1921년 전함으로 진수한 가가함은 28년 항모로 고친 뒤 일본의 주력 항모로 활약했다. 32년 상하이(上海) 사변과 37년 중일 전쟁에도 참전했다.

 
19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 해군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을 받고 불타고 있는 일본제국 해군의 항공모함 가가함. 결국 가가함은 침몰한다.

19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 해군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을 받고 불타고 있는 일본제국 해군의 항공모함 가가함. 결국 가가함은 침몰한다.

 
41년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기지를 공습할 때 선봉에 선 게 가가함이었다. 그때까지 중립을 지키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고, 태평양을 놓고 일본과 싸웠다. 가가함은 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 해군에 격침됐다. 당시 가가함이 가장 많은 폭탄(4발)을 맞았고, 인명 피해(832명 사망)가 가장 컸다.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미국은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평화헌법의 굴레=1대 가가함이 침몰한 지 73년 만인 2015년 8월 27일 2대 가가함이 진수했다. 가가함은 길이 248mㆍ폭 38m에 만재배수량이 2만7000t이다.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갑판과 20대 안팎의 전투기를 넣을 크기의 격납고를 가졌다. 그래서 가가함은 ‘항모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이 항모로 쓰기 위해 건조했으며, 이름도 옛 항모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탑재 호위함인 가가함(DDH-184). [사진 해상자위대]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탑재 호위함인 가가함(DDH-184). [사진 해상자위대]

 
일본 방위성은 논란을 부인했다. ‘가가’라는 함명도 이시카와(石川)현의 옛 지명인 가가(加賀)에서 나왔으며, 2015년 이시카와현 가나자와(金沢)까지 가는 호쿠리쿠 신칸센(北陸新幹線)의 개통을 기념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주 일본 한국 대사관의 국방 무관을 지낸 권태환 국방대 교수는 “가가함에서 항공기의 창정비(완전히 분해한 뒤 다시 조립하는 정비)가 가능하다”며 “처음부터 원거리 작전에 투입하도록 만든 항모”라고 말했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본은 무력사용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을 갖고 있다”며 “헌법상 제약 때문에 일본군을 ‘자위대(自衛隊)’라 부르는 것처럼 가가함에 ‘헬기탑재 호위함’이라 명칭을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의 전우=지난해 12월 확정한 ‘방위계획대강’과 ‘중기 방위계획’에 따르면 일본은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스텔스 전투기인 F-35B 42대를 들여올 예정이다. 또 가가함과 이즈모함(DDH-183)에 F-35B 운용 능력을 더하는 작업을 내년 시작한다. 가가함은 그동안의 가면을 벗고 곧 항모로 거듭나는 셈이다.
 
수직착륙하고 있는 미국 해병대의 F-35B. [미 해병대 유튜브 캡처]

수직착륙하고 있는 미국 해병대의 F-35B. [미 해병대 유튜브 캡처]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려고 한다. 보통국가는 전쟁할 수 있는 국가며, ‘자위대’는 ‘일본군’이라는 제자리를 찾게 된다는 게 아베 총리의 생각이다. 일본 정부는 2019~2023년 5년간 방위비(국방예산)로 사상 최대인 27조4700억엔(약 274조2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김경민 교수는 “이날 승선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헌법개정과 보통국가를 꿈꾸는 아베 총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가함 승선을 놓곤 그간 일본 군사력 사용의 근간이던 ‘전수방위 원칙’(침공한 적을 일본 영토에서만 군사력으로 격퇴한다는 원칙)을 무너뜨리려 하는 아베 정부에 눈을 감아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가함은 향후 미국 해군과 함께 남중국해의 해역을 지나가는 '항행의 자유(FONOP)'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아베 총리는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동맹이나 적국을 따지지 않고 국익만을 앞세우고 있다”며 “한국이 바짝 긴장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서울=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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