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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권력집단’된 서른 살 전교조, 초심으로 돌아가라

중앙일보 2019.05.28 00:04 종합 32면 지면보기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1989년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시절 대학가에서 단골 대화 주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었다. 학생들은 거리에서 참교육 구호를 외쳤고, 그들의 교육개혁 운동이 결실 보기를 원했다. 28일이면 전교조 출범 30주년이다.
 

권위주의 학교문화 바꾸려 노력
투쟁보다 대안 내놓고 혁신해야

그동안 전교조는 우리 교육과 사회에 여러 흔적을 남겼다. 촌지 안 받고, 학생에게 체벌하지 말자는 주장은 참신했다. 강제 자율학습도 반대했다. 구시대적 관행과 교육 부조리를 거부하겠다는 선언에 국민은 호응했고 지지를 보냈다. 학생을 교육 주체로 인정하고, 학생자치 활동을 존중하는 문화를 촉발한 것도 공(功)이다. 통일 교육이나 환경교육을 전면에 꺼낸 것도 전교조였다.
 
전교조는 학교 문화를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 교장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권위주의적 문화를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학교 운영에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풍토를 이끈 것도 평가할 만하다. 교사 권익 보호와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활동은 헌법상 권리다.
 
하지만 전교조는 상처도 많이 남겼다. 우선 학교를 정치로 물들였다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국선언, 특정 정당 공개 지지, 여의도 정치 진출까지 있었다. 교육이 독재정권의 선전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외쳤던 교사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드는 것을 본 시민들은 배신감까지 느꼈을 것이다. 교육 운동에 계급 투쟁적 이념이 스며드는 것을 보면서 전교조 출범 초기의 순수함과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젠 전교조 내부에서도 순수한 교육 운동이라는 명분과 정당성을 잃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학교에서 편 가르기와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소수 집단이 결속력을 유지하면서 활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이념과 주장에 반대하면 타도 대상으로 몰아가는 행태는 그 자체가 반교육적이다. 교육 당국이나 학교 관리자와 대립각을 세워서 존재감을 키우려 했겠지만, 교육자로서 균형감·화합·절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뚜렷한 교육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아쉽다. ‘전교조 학교들’에서 학력 저하 현상이 생긴다는 문제 제기를 극복하려면 국민이 이해하고 지지하는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했다. 하지만 전교조 홈페이지에는 오래된 정책 자료, 성명서, 논평이 대부분이다. 정책 역량보다 ‘반대와 투쟁’이라는 유전자(DNA)만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이제 전교조는 권력 집단이 됐다. 시·도 교육감 17명 중 14명이 전교조 출신이거나 친전교조다. 정부와 여당 곳곳에 전교조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더는 보호받을 약자가 아니다. 높은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책무성을 발휘해야 한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조합원 수는 반 토막 났고,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원인을 신세대 교사의 특징에서 찾는다면 오산이다. 교육 비전의 실종, 이념적 편협성, 과격한 투쟁 일변도가 낳은 결과다.
 
초심으로 돌아가 교육혁신 운동에 매진하는 것이 답이다. 투쟁보다 대안을 제시하고 현장에서 변화를 도모하는 개혁집단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젊은 교사들이 돌아오고, 조합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사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조합원 권익 보호라는 노조 본연의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낫다.
 
실질적인 교실 변화를 이끌고, 바람직한 교육 방향을 고민하는 교사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도덕성과 역량을 겸비한 교사들의 노력과 헌신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여러 교사단체와 연대해서 한국 교육의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십을 기대한다. 이제 전교조는 변할 것이냐, 역사의 뒤안길로 사질 것이냐 갈림길에 섰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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