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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작은 이름들을 위하여

중앙일보 2019.05.28 00:03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누가 심었는지 아파트 단지 허름한 공간에 모란과 작약이 몇 걸음 떨어져서 자라고 있다. 두 꽃을 한때 혼동하기도 했던 나에게 좋은 기회여서 매년 관찰해 보니 두 꽃은 한참 달랐다. 싹도 잎도 꽃도 겨울을 나는 방식도. 그런데 금년에는 모란꽃을 보지 못했다. 4월 중순쯤 전지하던 사람이 막 잎을 내던 모란을 잡목인 줄 알고 잘라버린 것이다. 며칠 뒤, 누군가가 꽃 사진이 곁들여진 이름표를 세워 놓았다. “작약꽃입니다.” “모란 꽃나무입니다.”
 

작은 것들의 존재를 살려내야
우리의 삶도 품위를 지키게 돼
죽음의 광기를 이겨낼 수 있어

얼마 전 후배들과 회식을 하는데 한 사람이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 후에 누가 물었다. “찔레꽃이 어떻게 생겼지?” 내가 놀랐던 건 그 좌중에 자신 있게 설명하고 나선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연배들이 50 전후여서 삶의 경험도 충분한 이들이었는데.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사진을 돌렸지만 그건 아니었다. 찔레꽃은 향기인데 스마트폰이 냄새를 전해주지는 못하니까. ‘찔레꽃’이라는 이름은 아는데 누구에게 불러야 할지 모르는 셈이었달까? 하긴 나 역시 들판에 나가면 많은 ‘이름 모를 꽃’들 옆을 지나가며 여러 ‘이름 모를 새’들과 만난다. 국악을 하는 사람들은 놀라겠지만 나는 이따금 “가야금과 거문고가 어떻게 다르지요?”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서양에서 오케스트라의 기초가 잡힌 것은 바로크 시대다. 기악곡이 발달하고 바이올린족의 악기 생산이 활발해지면서다. 현악합주가 바탕이 되고 여기에 몇몇 관악기가 얹히는 편성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춤과 여흥을 위한 음악을 했다. 협주곡과 신포니아의 형식이 이 시대에 나타난다. 18세기 중엽에 이 기악곡들이 충분히 하나의 음악 세계를 담을 만한 규모를 갖추게 되어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교향곡과 협주곡이 작곡된다. 이 시기에 정형화된 오케스트라를 2관 편성이라고 부르는데 현악합주에 관악기를 둘씩 사용하는 편성이라는 뜻이다. 교향곡을 통해서 자신이 상상하는 음악의 우주를 그려내는 작곡가들에 의하여 이 편성은 점차 커져서 3관, 4관 편성이 된다.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악기 중에서 음높이나 음색이 다른 악기들이 첨가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플루트보다 작고 더 높은 소리를 내는 피콜로, 오보에와 비슷하지만 더 낮고 목가적인 소리를 내는 잉글리시 호른이 첨가되는 식이다. 19세기 내내 오케스트라의 규모와 소리는 풍부해져서 이제 교향곡은 박애와 환희, 보이지 않는 세계의 환상, 고난과 구원 등 심오한 인간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된다.
 
여유로우면 작은 차이를 구별한다. 멋쟁이가 아니라도 평화시를 사는 우리는 매일의 날씨와 할 일들을 염두에 두고 섬세하게 다른 옷들을 챙긴다. 또 코스로 나오는 여러 음식을 품위 있게 먹기 위하여 그에 맞는 다양한 식기를 늘어놓고 사용한다. 위급하고 절박하면 이 차이는 무시된다. 전쟁이 벌어지면 돈, 금붙이, 먹을 것, 신분증 같은 것만 챙기고 아끼던 가구, 사연이 담긴 그림과 책들, 가꾸던 화분, 돌보던 애완동물들, 다 두고 떠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태를 보는 눈도 단순해진다. “내가 살아날 길인가, 아닌가?”
 
위기를 한 번 당하면 그 경험은 의식에 남아 우리의 행동거지에 영향을 미친다. 집단적으로 겪은 위기는 몇 세대에 걸쳐 그 집단의 의식에 남는다고도 한다. 6·25를 직접 경험한 세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아직 두 세대가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섬세한 차이를 살피고 거기에 이름을 붙여 그 이름을 불러주는 문화는 아직 척박하다. 오히려 비슷한 의견은 대충 묶어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단순화하기 바쁘다.
 
2차대전 당시 나치 군대는 레닌그라드를 900일 동안 포위했다. 시민들은 참혹한 전투와 기아를 견디며 살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런 상황에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의 세 악장을 썼다. 시민들은 도시의 문화생활을 이어가려고 애썼다. 기력이 다한 배우가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죽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완성과 초연은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지만 이 곡은 1942년 8월 포위된 도시에서 연주되었다. 단원들은 간직해 두었던 정장을 입었고 홀을 가득 채운 청중은 눈물을 흘리며 들었다. 연주 후에 지휘자는 한 소녀로부터 꽃다발도 받았다. 죽음의 광기에 대항하는 가장 큰 힘은 삶의 품위를 지키는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제로 1년 반 뒤에 레닌그라드는 해방되었고 나치는 급속히 패망의 길을 걸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맞다. 그런데 악마를 이기는 힘도 디테일에 있다.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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