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수퍼 코리언 4대 천왕

중앙일보 2019.05.27 00:13 종합 27면 지면보기
정제원 스포츠팀장

정제원 스포츠팀장

박찬호는 1994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그를 소개하면서 이름 앞에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란 수식어를 붙였다. 국내 언론에선 ‘코리언 특급 열차’로 썼지만, 미국 기자들은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란 표현을 사용했다. 역동적인 투구 폼을 앞세운 그에게 이 수식어는 잘 어울렸다. 그런데 이런 표현의 밑바닥에는 ‘아시아 선수는 미국 무대에서 통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구심과 함께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신체적으로 열등하다’는 편견이 깔려 있었다.
 
박찬호의 경우가 그렇듯이 서양인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썩 좋은 건 아니다. 서양인에게 동양인은 체구가 작다거나 눈이 찢어진 사람으로 각인된 경우가 많다. ‘동양인’이란 누구인가. 표준국어 사전에 따르면 ‘동양’이란 유라시아 대륙의 동부 지역, 즉 아시아의 동부 및 남부를 이르는 말이다. 나라 별로는 한국, 중국, 일본과 인도, 미얀마, 타이, 인도네시아 등이다.
 
그런데 동양인은 모두 체구가 작고, 나약한가. 동양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 ‘오리엔탈(oriental)’은 그런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오리엔탈이란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아시아 사람을 얕보거나 비하하는 모욕적인 뜻으로 쓰였다. 그래서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연방 법규나 공식 문서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니그로’와 함께 ‘오리엔탈’이란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그 이후 ‘오리엔탈’이란 단어는 사전에서 없어졌다. 그러나 아시아 선수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은 올 시즌에도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시달렸다. 그가 차별과 편견을 극복한 방법은 실력이었다. 올 시즌 눈부신 활약으로 토트넘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그의 또 다른 무기는 ‘스마일’과 친화력이다. 항상 웃는 그의 표정을 보며 영국 팬들도 마음을 활짝 열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로 거듭난 손흥민은 6월 2일 큰 경기를 앞두고 있다. 바로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는 전 세계 스포츠 대회 가운데 상금이 가장 많은 빅 이벤트다. 올해 우승 상금은 1900만 유로(약 253억원)나 된다. 준우승을 하더라도 1500만 유로(약 200억원)를 받는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왼손 투수 류현진이 펄펄 날고 있다. 자로 잰듯한 컨트롤과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움으로 강타자들을 잇달아 제압하고 있다. 류현진은 특히 강타자와의 대결을 피하지 않고 정면대결을 펼친다. 볼넷을 내주느니 차라리 홈런을 맞겠다는 각오로 과감하게 공을 스트라이크존에 꽂아넣는다.
 
아시아인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건 스포츠 스타뿐만이 아니다. 손흥민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경기장에서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서는 바로 그 시각, 아이돌 그룹 BTS(방탄소년단)는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연다. 9만장의 입장권이 90분 만에 다 팔려나갔다는 뉴스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들의 공연을 보러 런던으로 날아가는 전 세계 팬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비행기가 오가는 하늘길이 붐빈다는 소식이다. 서구의 언론은 비틀즈를 능가하는 팬덤이라고 소개했다.
 
손흥민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서고,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다. BTS가 비틀즈 못잖은 인기를 구가하는 가운데 26일엔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하나 모두 꿈같은 이야기다. 손흥민과 류현진, BTS와 봉준호. 현실은 퍅퍅하지만 ‘수퍼 코리언 4대 천왕’을 보며 우리는 오늘도 웃는다.
 
정제원 스포츠팀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