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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칸의 거장 오르다

중앙일보 2019.05.27 00:06 종합 1면 지면보기
봉준호 감독이 프랑스 칸에서 한국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 25일(현지시간) 폐막한 올해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새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봉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놓고 환하게 웃고 있다. [AFP=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프랑스 칸에서 한국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 25일(현지시간) 폐막한 올해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새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봉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놓고 환하게 웃고 있다. [AFP=연합뉴스]

“저는 그냥,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린 영화광이었습니다.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질 날이 올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영화 ‘기생충’ 한국 첫 황금종려상
“우리 영화 100주년 맞아 큰 선물”
빈부 양극 두 가족의 블랙 코미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가 벌어졌다. 봉준호(50) 감독이 25일(현지시간) 저녁 제72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황금종려상은 전 세계 예술영화 축제로 최대 규모,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 영화제 최고상이다. 이를 겨루는 경쟁부문에 한국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2000년 ‘춘향뎐’으로 처음 진출했고, 2002년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아 수상의 물꼬를 텄다. 한국영화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기생충’이 사상 처음이다.
 
이런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려는 듯 봉 감독은 주연배우 송강호와 곽신애 프로듀서를 수상무대에 불러냈다. 그는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되게 큰 영화적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작업을 가능케 해준 건 저와 함께해준 아티스트들 덕분”이라고 했다. 특히 “무엇보다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가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지 못할 영화였다”며 “이 자리에 함께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 송강호 배우의 멘트를 이 자리에서 꼭 듣고 싶다”고 청했다.
 
‘살인의 추억’부터 ‘기생충’까지 봉 감독과 네 편의 영화를 함께한 송강호는 “배우로서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 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분들에게 이 영광을 바친다”고 소감을 말했다.
 
봉준호 “위대한 배우들 덕분” 송강호에 무릎꿇었다
 
봉준호 감독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다. 맨 오른쪽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이 올해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EPA=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다. 맨 오른쪽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이 올해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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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와 정보기술(IT) 기업 CEO인 박 사장(이선균)네, 사는 형편이 극과 극으로 다른 두 집안이 뒤얽히는 블랙 코미디. 반지하와 대저택을 오가는 사회 드라마이자 미스터리·공포 장르가 뒤섞인 영화다. 지난 21일 칸영화제에서 열린 공식 상영은 웃음과 환호가 뜨거웠다. 해외 언론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앞다퉈 호평을 내놨다.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곤잘레스 감독에 따르면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심사위원 9명의 만장일치였다.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고 다정하다. 놀라운 영화”라는 심사평이 나왔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쿠엔틴 타란티노, 켄 로치, 다르덴 형제 등 할리우드나 유럽의 쟁쟁한 거장 감독들의 영화를 제친 결과다. 작가주의 영화를 애호하는 칸이 장르영화를 택한 것도 상징적이다.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비록 기존 장르 법칙을 이상하게 부서뜨리거나 뒤섞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저는 장르영화 감독”이라며 “그래서 오늘 황금종려상이 더욱 실감 안 난다. 장르영화 팬이자 만드는 사람으로서 놀랍고도 기쁘다”고 했다.
 
“마침 금년이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에요. 한국영화에 칸영화제가 의미 큰 선물을 줬습니다.” 중국 기자가 한국 첫 황금종려상 의미를 묻자 봉 감독이 한 말이다. 이어 “이번 영화는 클로드 샤브롤, 앨프리드 히치콕, ‘하녀’를 만든 한국 거장 김기영의 영향이 컸다”면서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중국의 장이머우를 능가하는 한국 마스터(거장감독)들이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기자가 “영화가 너무 한국적이어서 외국 관객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던데 실제론 다들 충분히 즐겼다. 왜 그런 우려를 했느냐”고 묻자 감독은 “엄살을 조금 떨었다”고 장난스레 웃었다. “그 말을 한국 기자회견에서 했는데, 칸영화제에 먼저 소개되지만 한국 개봉 때 우리끼리 킥킥거리며 즐길 요소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고 가족 드라마여서 다른 나라에도 보편적으로 이해되리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다”고 했다.
 
한국 취재진과 따로 만난 그는 “(오늘 수상 같은 일은) 축구나 월드컵 쪽에서나 나오는 현상인데 쑥스럽다. 약간 판타지영화 같이 초현실적인 느낌”이라며 “이 순간을 17년간 함께한 송강호 선배님과 함께하고 있어 더 기쁘다”고 했다.
 
◆한국영화 최다 192개국 판매도 기록=칸영화제에서 봉 감독은 2006년 ‘괴물’을 감독주간에 선보인데 이어 2008년 옴니버스 영화 ‘도쿄!’와 2009년 김혜자 주연 영화 ‘마더’로 잇따라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진출했다. 경쟁부문은 2년 전 ‘옥자’로 처음 초청됐지만 넷플릭스 영화란 논란 끝에 수상은 불발됐다. 절묘하게 장르를 비틀어 사회 풍자로 날을 세우는 솜씨만큼은 작품마다 인정을 받았다.
 
이번 영화는 그 절정이란 평가다. 각국 평론가 10명이 평가한 스크린데일리의 평점에서는 올해 경쟁작 21편 중 최고인 3.5점(4점 만점)을 받았다. 투자배급사 CJ ENM에 따르면 한국영화 역대 최다인 192개국에 판매됐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평단과 영화산업에 동시에 찬사 받는 일이 극히 드문데 봉준호 감독은 해냈다. 어려운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영화에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열어 줬다”고 했다. 심사위원장 이냐리투 감독은 “올해 수상작들은 당면한 사회현실에 대한 자각이 엿보였다. 하지만 정치적 어젠다가 심사기준은 아니었다. 영화 그 자체 외엔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수상작
황금종려상 ‘기생충’(한국) 봉준호 감독
심사위원대상 ‘아틀란틱스’(세네갈) 마티 디옵 감독
남우주연상 ‘페인 앤 글로리’(스페인)
안토니오 반데라스
심사위원상 ‘레미제라블’(프랑스) 래드 리 감독
‘바쿠라우’(브라질) 클레버 멘돈사
필로&줄리아노 도르넬레스 감독
감독상 ‘영 아메드’(벨기에)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감독
여우주연상 ‘리틀 조’(오스트리아) 에밀리 비샴
각본상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프랑스) 셀린 시아마 감독
특별언급 ‘잇 머스트 비 헤븐’(프랑스)
엘리아 슐레이만 감독
 
프랑스 칸=나원정 기자 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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