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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 맞아도 말 못하는 경찰···"나서봐야 낙동강 오리알 신세"

중앙일보 2019.05.26 16:39
무시받는 경찰 공권력 
금속노조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집회 도중 건물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을 끌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금속노조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집회 도중 건물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을 끌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원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날 노조원들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ㆍ합병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는데 일부가 사무소 진입을 시도하면서 입구를 지키던 경찰과 부딪힌 것이다. 이 충돌로 경찰 10여명이 부상을 입었고 일부 경찰들은 치아가 골절되거나 손목 인대가 손상됐다. 한 경찰청 간부는 “집회ㆍ시위나 사건 현장에 ‘출동하기가 겁난다’고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후배들이 있을 정도로 경찰의 권위가 많이 하락한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경찰의 공권력이 바닥을 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거리의 주취 난동부터 각종 집회ㆍ시위 현장에 이르기까지 경찰이 폭행을 당하거나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유착 의혹부터 대응 미숙 논란까지…“경찰 자초한 면도”
세계적인 치안 강국으로 꼽히는 한국의 경찰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경찰에 대한 국민 신뢰에 금이 가면서 자연스레 공권력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실제 최근 몇달간 경찰은 각종 논란들로 곤욕을 치렀다. 버닝썬 사태에 전ㆍ현직 경찰들이 연루된 데 이어 박근혜 정부 시절 정보 경찰을 동원해 국회의원 총선거에 불법개입한 혐의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구속되는 등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대림동 여경 사건’에서는 주취자가 경찰의 뺨을 때리는 등 난동을 피운 상황에서 경찰 대응이 미숙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강신명(가운데), 이철성 전 경찰청장이 15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는 모습. 최정동 기자

강신명(가운데), 이철성 전 경찰청장이 15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는 모습. 최정동 기자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공안 경찰이 권력에 편승해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해 문제가 됐다면, 최근에는 유착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부패하거나 무능한 경찰의 이미지가 생겼다”며 “경찰의 역할이 중요한만큼 내부적으론 자부심을 끌어올릴 방안을 모색해야겠지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존중할 만한 모습을 경찰 스스로 갖추고 있는 지부터 되돌아 봐야한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팀장은 “공권력 강화를 거론하기 이전에 경찰이 자초한 불신부터 극복하는 게 우선”이라며 “결국 공권력이라는 것은 국민과 경찰의 신뢰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최근 일련의 사태 속에 경찰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라고 했다.
 
경찰의 입장이 정권에 따라 바뀌는 것도 신뢰 하락에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2016년)과 용산참사(2009년) 등 논란이 된 사건에 대해 정당한 집행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이번 정부가 들어선 뒤엔 두 사건에 대해 경찰청장이 직접 사과하는 방식으로 태도를 바꿨다.

 
경찰은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인권친화적인 경찰’로 거듭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지만 되레 ‘소극적이고 힘 없는 경찰’이라는 비판의 화살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재현 팀장은 “한국 경찰에 모범적인 공권력이라고 부를만한 기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강력 사건부터 주취난동, 집회ㆍ시위에 이르기까지 상황에 맞게 공권력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는 매뉴얼부터 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서봐야 ‘낙동강 오리알’ 신세"  
지난해 4월 30일 광주 광산구 수완동에서 발생한 집단폭행 사건 당시 영상. 경찰관이 피해자 진술을 듣는 상황에서 또다시 폭행하는 모습이 찍혔다.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지난해 4월 30일 광주 광산구 수완동에서 발생한 집단폭행 사건 당시 영상. 경찰관이 피해자 진술을 듣는 상황에서 또다시 폭행하는 모습이 찍혔다.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반면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원칙대로 법 집행을 하고 싶어도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현 정부들어 인권을 강조하는 기류가 확산되면서 경찰 내부에서도 ‘과잉 대응 논란만큼은 피하자’는 분위기가 커졌다는 것이다. 형사과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한 경찰관은 “동료들 사이에서 ‘뺨 한대 정도는 맞더라도 일단 참고보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라며 “집회ㆍ시위, 각종 출동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징계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데 어떤 경찰이 제대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함부로 나서다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는 인식이 경찰 조직 전반에 퍼져 있는 게 문제”라며 “일단 인권침해 논란이 터지면 경찰 수뇌부에서 책임을 져주는 것도 아니고 해당 경찰이 징계나 여론 비난을 다 감당해야하는 상황인데 적극적으로 나설 경찰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일부 시위대나 주취자들을 보더라도 ‘한번 건드리기만 해봐라’는 식의 자신만만함이 있는 반면, 경찰은 ‘과잉 대응 논란은 피하고 보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공권력이 경시되는 사건들이 잇따르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공권력 행사와 인권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당장 취객이나 집회ㆍ시위자들을 상대로 강경 대응하는 것보다는 민생 치안이나 각종 범죄 현장에서 경찰이 믿음직한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도 점차 신뢰를 보내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손국희ㆍ편광현ㆍ남궁민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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