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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헐떡이며 시험장 달려갔는데… 벌써 끝난거야?

중앙일보 2019.05.26 07:00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12)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배움의 때를 놓친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살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사진 Pixabay]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배움의 때를 놓친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살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사진 Pixabay]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먼 산지에 가서 참외를 한 차씩 싣고 와 파느라 몸은 녹초가 되어가던 때였다. 내가 낳은 두 아이 잘 돌보는 것과 실질적인 가장 노릇, 한 인간으로서 시작한 늦은 공부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30대 후반에 방통대 진학
열일곱 살 때 나는 여러 질병으로 아팠던 아버지 약값 때문에 가정형편 상 중퇴하고 바로 다음 날 공장으로 가야만 했다. 그 후 나는 배움의 때를 놓친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살았다. 그러다 더는 미룰 수 없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각오한 때가 서른 후반이었다. 그 다짐 후에도 형편이 따라주지 않아 한참 후에야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그 길로 바로 방통대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이른 새벽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부리나케 장사를 준비해 차를 몰았다. 장사하다 보면 시험공부를 따로 할 시간이 없었다. 학습관에서 같은 학과 동아리 사람들이 누리던 스터디와 차 한 잔의 여유도 내겐 주어지지 않았다. 오로지 나 혼자 화물차 속에서 장사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러니 학교성적도 신통치 않았고 한두 개씩 과락 과목이 나와 늘 계절학기로 아등바등 넘어갔다. 내 화물차 조수석에는 항상 기출문제들과 전공 교과서들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었다. 그 당시 몸은 새벽부터 밤까지 장사와 배달로 지치고 마음은 바짝바짝 다가오는 시험 부담에 쫓겼다.
 
2009년 봄. 내가 달력에 붉은 사인펜으로 표시했던 중간고사 출석시험은 5월 23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였다. 시험 당일도 오전에는 최대한 과일을 팔아야 했기에 시험장 근처 마을에서 잠시 물건을 팔고 늦기 전에 시험장으로 차를 몰았다. 점심밥을 포기하고 그 시간에 국문학과 예상시험문제를 스캔하듯 빛의 속도로 훑었다. 시커먼 손 닦을 시간도 없이 남루한 작업복을 입은 채로 시험을 보러 뛰었다.
 
물건을 팔다 점심도 못 먹고 손 닦을 새도 없이 시험을 보러 뛰었다. 하지만 시험장에 도착해보니 시험 감독관도 학생들도 없었다. 사진은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 중인 학생들. [뉴스1]

물건을 팔다 점심도 못 먹고 손 닦을 새도 없이 시험을 보러 뛰었다. 하지만 시험장에 도착해보니 시험 감독관도 학생들도 없었다. 사진은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 중인 학생들. [뉴스1]

 
그런데 시험장에 도착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학생들이 시험 보러 몰고 온 차로 발 디딜 틈 없어야 할 주차장이 너무 한산했다. 서둘러 차를 세우고 다른 생각할 틈 없이 숨을 헐떡이며 교실로 달렸다. 그런데 교실에는 시험 감독관도 학생들도 없었다. 나는 순간 시험장 위치를 다시 확인했지만 그곳이 분명 맞았다.
 
그날 시험장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순간 우주 미아가 된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세상이 진공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침착하게 책상에 앉아 다시 시험 일정표를 보았다. 아뿔싸! 5월 23일 시험은 맞는데 오후가 아니라 오전이었다. 우리 과 동기들은 이미 오전에 시험을 치르고 모두 사라진 후였다. 
 
장사하며 죽기 살기로 시험공부를 했건만, 시험은 물 건너간 후였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졸업해야 힘겨운 노점상 생활을 면할 텐데 앞이 캄캄했다.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한 나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차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화물차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다 틀렸다. 나는 땟국이 흐르는 내 작업복과 흙 묻은 운동화와 품에 꼭 안고 있던 시험공부 자료를 힘없이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쳤다. 화물차 운전석에 앉아 혼자 펑펑 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 안에서 통곡하는 나를 흘끔흘끔 보다 지나갔다.
 
시기를 놓친 공부와 힘겨운 현실이 너무 서러웠다. 남들처럼 제때 공부 못하게 되었던 내 가난도 아픈 아버지도 다 원망스러웠다. 사춘기에 학교 가는 친구들 피해 숨어서 공장으로 가야 했던 내 어린 모습이 오버랩 돼 실컷 울었다. 기진맥진 울고 나니 두 시간이 흘러있었다. 너무 울어 탈진한 몸으로 차를 돌렸다. 운전하며 가는 내내 또 눈물이 쏟아져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켠 라디오에서 믿기 힘든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날 새벽에 한 나라의 대통령이 투신자살했다는 속보였다.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나는 또 한 번 충격이었다. 물론 나는 그 후 4년 만에 무사히 대학 공부를 마치고 졸업했지만 이미 마흔을 넘긴 나이였다.


공부는 ‘때’ 놓치지 말아야
공부에는 때가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가급적 그 시기에 배우고 넘어가는 것이 삶에서 효과적이다. 사진은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공부에는 때가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가급적 그 시기에 배우고 넘어가는 것이 삶에서 효과적이다. 사진은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최근 학교를 자퇴하는 중·고등학생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의 자퇴 이유는 우리 세대가 겪었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천편일률적인 입시공부로 시간 낭비하지 않고 좀 더 빨리 진로를 택해 그쪽에 올인 하겠다는 전략에서 나오는 선택이다.
 
그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저마다 신중하게 결정하겠지만 나는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걱정이 몹시 앞선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가급적 그 시기에 배우고 넘어가는 것이 삶에서 효과적이다. 순서가 조금 바뀐다고 달라질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공부 시기를 놓친 경험자는 ‘때’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안다. 그 빈 곳을 나중에 채운다는 것이 결코 지금의 마음처럼 쉽지 않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특히 학교공부는 더하다. 그때를 놓치면 더 먼 길을 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
 
김명희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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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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