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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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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대출 잘 안돼…천재 개발자도 2년이면 한국 떠요”

중앙일보 2019.05.26 05:00 경제 3면 지면보기
인도 출신 판교 스타트업 대표, 판카즈 아가르왈 인터뷰
판카즈 아가르왈 태그하이브 대표. 박민제 기자

판카즈 아가르왈 태그하이브 대표. 박민제 기자

판카즈 아가르왈(36)은 판교테크노밸리 내 보기 드문 인도 출신 스타트업 창업자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상 바이샤(상인ㆍ농민) 계급 출신인 그는 인도 최고 명문 인도공과대학교(IIT)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2004년 삼성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해 디스플레이 사업부에서 일했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고 삼성전자에서 계속 일하다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C랩’을 통해 ‘키드 테크(kid-tech)’ 스타트업 태그하이브를 2017년 초 창업했다.
 
삼성 C 랩 출신 최초 외국인 창업자  
 지난 15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 테크노밸리에서 만난 아가르왈 대표는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판교에서 창업한 사연에 대해 “초기 스타트업에 사무 공간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잘 돼 있어 판교에 자리 잡았다”며 “강남 테헤란밸리와 달리 주변에 유흥가도 많지 않아 일만 하기 딱 좋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모디 인도 총리의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판카즈 아가르왈(오른쪽 두번째) 대표도 동행했다. 뉴델리 소재 한 학교에서 자신이 개발한 IT교육 솔루션인 클래스 사티를 시연했다. [뉴시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모디 인도 총리의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판카즈 아가르왈(오른쪽 두번째) 대표도 동행했다. 뉴델리 소재 한 학교에서 자신이 개발한 IT교육 솔루션인 클래스 사티를 시연했다. [뉴시스]

왜 창업했나.
“12세 아들, 7세 딸이 있는 아빠다. 애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레고 같이 비싼 장난감도 몇 번 가지고 놀다 말더라. 그래서 장난감에 IT를 결합해 활용도를 높이면 어떨까 생각한 게 시작이었다. 마침 회사 사내 벤처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런 아이디어로 지원했다. C랩 출신 최초 외국인 창업자였다.”
 
국제전화 국가번호 '82'처럼 빠른 한국 
2년 넘게 판교서 스타트업을 하고 있다. 근무 환경은 어떤가.  
“나는 인도에서도 시골 중의 시골인 비하르(Bisanpur) 출신이다. 칸푸르에서 대학을 나오고 서울과 미국 보스턴에서 공부했다. 정말 여러 곳을 거쳤지만, 지금의 판교에는 판교만의 장점이 있다. 이곳에선 북적북적 사람들이 모여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다수가 스타트업 관계자들이다. 고민이 비슷하니 서로 얘기도 잘 통한다. 복도를 지나가다 마주친 옆 사무실 사람들과 언제 투자를 받을지, 언제 J 커브(매출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시기)를 그릴지 고민을 털어놓고 얘기하는 게 일상이다. 그래서 자극도 받고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좋다.”
 
한국 창업 환경의 특징이 있다면.
“한국 국제전화 국가번호는 ‘82’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빨리빨리 하는 문화가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데 큰 장점이다. 복잡한 행정절차를 빨리 처리하는 효율적인 행정시스템은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치안이 좋은 점도 장점이다. 다만 요즘 미세먼지가 심한 점은 아쉽다.”
 
성공한 최고경영자 만나기 어려운 판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판교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지향한다.
“아직 실리콘밸리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버드 다닐 때나, 삼성전자 다닐 때 여러 차례 실리콘밸리에 갔다. 그곳의 가장 큰 장점은 주변에 성공사례가 넘쳐나고 그 성공사례의 장본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메인스트림’과 ‘네트워킹’이 잘된단 얘기다. 예컨대 2012년에 갔을 때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에게 만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냈다. 같은 하버드 MBA 출신이라 e메일 주소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바로 답변이 와서 사무실로 오라고 하더라. 페이스북 본사로 찾아가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굳이 샌드버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주변에 쉽게 성공한 창업자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카카오·쿠팡 등 성공한 IT 기업 경영자들을 직접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 e메일조차 알기 힘들다. 그 점이 아쉽다.”
 
외국인으로 생활하기도 쉽지 않을 거 같다.
“실리콘밸리가 잘되는 것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다. 미국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좋은 팀이 구성되고 혁신적인 기업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오는 외국 개발자들은 이곳에 손님으로 올 뿐이지 정착해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외국인을 위한 교육 시설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학교가 많지 않을뿐더러 학비가 비싸다. 우리 아이들은 수원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니는데 학비가 1년에 3000만원가량 들어간다. 내가 삼성에 있을 때 벌어 놓은 돈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심지어 외국인한테는 대출도 잘 안 된다. 천재 개발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이곳에 왔다가도 2년 정도 지나면 나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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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유창한데도 어려운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나도 총 14년간 한국에 살았지만, 아직도 한국 사람들이 ‘버닝 썬’ 이런 얘기 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아가르왈 대표가 창업한 태그하이브는 완구에 IT를 접목한 스타트업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IT와 교육을 융합시키는 스마트교실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이 회사가 출시한 ‘클래스 사티(Class Saathi)’는 인도의 열악한 교육 인프라에 맞춘 수업 솔루션이다. 사티는 힌디어로 친구라는 의미다.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의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TS)에서 3억원 지원금과 함께 인도 현지 네트워크 연결 등 실무적인 도움을 줬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모디 인도 총리의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판카즈 아가르왈 대표도 함께 갔다. 그는 뉴델리 ASN 종합 학교에서 태그하이브가 개발한 IT교육 솔루션인 클래스 사티를 시연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모디 인도 총리의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판카즈 아가르왈 대표도 함께 갔다. 그는 뉴델리 ASN 종합 학교에서 태그하이브가 개발한 IT교육 솔루션인 클래스 사티를 시연했다. [연합뉴스]

인도 사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인도 학교의 70%가 공립인데 대부분 학교 시설이 열악하다. 컴퓨터가 없는 환경에서 수업을 효율적으로 도와주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우리 시스템은 선생님이 활용하는 앱과 아이들이 활용하는 일종의 리모컨인 ‘클리커’로 구성된다. 출결 확인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 중에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챙길 수 있게 만들었다. 또 축적된 데이터도 다음에 수업 방향을 정하는 데 활용 가능하다. 코이카의 CTS 프로그램 지원으로 인도 20개 학교 1000여명 학생이 이 시스템을 경험했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나도 함께 가서 클래스 사티를 시연했다. 오는 8월부턴 본격적으로 인도 사업을 진행할 생각이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외국인 창업자로 한국에서 성공하고 싶다. 그래서 후배 창업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후배 창업자들이 내게 만나자고 e메일 보내지 않을까.”  
 
판교=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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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제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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