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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투기 추락 침묵 뒤엔···美무기로 美와 싸우는 역설

중앙일보 2019.05.25 09:00
지난 14일(현지시간) 이란 공군의 F-14 톰캣 전투기 1대가 이란의 이스파한 공군 기지에서 추락해 조종사 등 승무원이 비상탈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F-14는 미국이 1970년대에 생산한 기종으로, 40년 가까이 이란 공군이 주력기로 운용 중이다.    
 
이란 F-14 톰캣 전투기[위키피디아]

이란 F-14 톰캣 전투기[위키피디아]

그런데 미국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항공사고 집계 사이트인 ASN(Aviation Safety Network) 등 해외 매체들이 긴급하게 소식을 전달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란 정부는 침묵이다.    
 
여기엔 미국 무기로 반미(反美)에 나서야 하는 이란의 현실이 녹아있다는 분석이다. 이란은 70년대 경쟁국이던 이라크가 러시아산 무기를 들여오자, 미국에서 지원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F-14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이란에 봉쇄에 가까운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군사장비의 보강은 쉽지 않다.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과 검은 커넥션을 통해 거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공력 유지를 위해선 미국에서 부품을 들여가야 하는데 이마저 여의치 않다.
 현재 전투기 보유대수조차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황에서 여차하면 미국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이란이 스스로 전력 손실을 공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미국산 무기로 미국과 전쟁을 치를 수도 있는 이란의 역설이 담겨 있는 셈이다.   
미 해군이 운용했던 F-14 톰캣

미 해군이 운용했던 F-14 톰캣

 이란은 1974년부터 1979년 이슬람 혁명 전까지 미국으로부터 79대의 톰캣을 인도 받았다. 미국은 소련 견제를 이유로 당시 세계 최고 수준 전투기인 톰캣을 유일하게 이란에게만 수출했다. 그러나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이 반미 노선으로 돌아서자 톰캣은 미국의 골칫거리가 됐다. 미국은 톰캣의 부품 수출을 막았지만 이란은 다양한 경로로 부품을 조달 받거나 기술 개량을 진행하면서 톰캣의 전력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2006년 톰캣을 퇴역시키면서 대부분 기체를 폐기하기도 했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미국의 이 같은 노력에도 톰캣은 여전히 이란 공군의 주력기로 활동하고 있다. 기존 미국이 장착한 AIM-54A 미사일을 넘어 2013년엔 이를 개량한 파쿠르 미사일로 무장을 하기도 했다. 미국 AIM-54A보다 사거리가 15% 길고 무게도 가볍다는 게 이란 측의 주장이다. 톰캣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극심해지면서 이란은 이 전투기의 유지·개량을 극비리에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란이 운용 중인 톰캣 보유 대수는 최소 12대에서 40대까지로 추정된다.  
 
이란이 공개한 첫 자체개발 전투기 코우사르. 연합뉴스

이란이 공개한 첫 자체개발 전투기 코우사르. 연합뉴스

톰캣의 성공적인 운용에 힘입어 이란은 아예 미국제 무기를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하는 방식으로 전력 증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8월 이란이 첫 자체개발 전투기라고 공개한 ‘코우사르’가 대표적이다. 이란은 또 미국의 AH-1 코브라 공격헬기, 토우(TOW) 대전차미사일, SM-1 함대공미사일 등을 개량해 전력화에 성공한 이력이 있다. 미국 입장에선 이란과 전쟁이 벌어지면 자국에서 개발된 무기를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F-5전투기 비행 모습. 뉴스1

F-5전투기 비행 모습. 뉴스1

 
최현호 군사 칼럼니스트는 “이란의 역설계를  활용한 무기 생산 능력은 수준급”이라며 “외국산 무기 수입이 아닌, 자체 개량을 강조함으로써 이슬람 혁명 이후 자주국방을 선전하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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