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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5000여 구 유해 수습…이념 떠나 산 자들의 의무

중앙선데이 2019.05.25 01:06 637호 2면 지면보기
유해발굴 최고 권위자,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충남 아산시 야산에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 피해자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충남 아산시 야산에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 피해자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지난 24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국도변 한 야산. 초입에는 ‘아버지, 어머니, 70년의 어둠 거두어 내고 이제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14년부터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을 이끄는 박선주 단장(72·충북대 명예교수)과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발굴하는 현장이다. 박 단장은 “희생자 유족과 지역민들 증언에 따르면 6·25 전쟁 때 인민군 부역자들로 몰린 민간인들을 20일 동안 처형한 지역”이라며 “이 일대에서만 많게는 150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역사학 전공, 미국서 뼈대학 공부
일제 징용자 유해 수습하며 시작

설화산 폐광서 민간인 208명 희생
어린이·젊은 여성 유골 다수 발견

자원봉사하는 시민들 있어 힘 얻어
대통령 직속 유해발굴센터 필요

취재진이 찾은 이 날은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70년 동안 현장이 많이 훼손된 탓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야산은 1970년대 중반까지 예비군 훈련장으로 쓰였다가 화교에게 팔렸다고 한다. 이후 곳곳에 화교 무덤이 조성됐다. 세월이 더 흘러 이 무덤들이 이장되면서 현장은 또 파헤쳐졌다. 박 단장은 “현장 훼손이 심해 유골을 수습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유해발굴 분야에서 선구자이자 최고 전문가로 통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수습한 희생자 유해만 5000구 정도다. 박 단장은 “젊은 시절 공부한 학문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라며 “더구나 현장에서 유족들을 보면 쉽게 일을 놓지 못한다”고 했다.
  
8년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끌어
 
연세대 사학과 출신인 박 단장은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79년 미국 버클리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체질인류학을 공부하고 89년 귀국한 박 단장은 충북대에서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일해 왔다. 97년 지인의 소개로 일제 강점기 일본 홋카이도로 끌려갔다 사망한 한국인 징용 피해 노동자의 유해 발굴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2000년 군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정부의 요청을 받고 8년 동안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이끌었다. 당시 군 관계자들은 박 단장으로부터 유해발굴 방법, 감식 기법 등을 전수받았다. 2007년부터 3년 동안 박 단장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 학살 매장지에서 발굴 작업을 계속했다. 2010년 이후 정부 차원의 유해발굴 사업이 중단되자 민간 차원의 유해발굴단이 꾸려졌다. 2014년 공동조사단이 본격 활동에 들어가면서 박 단장은 제자들과 시민 자원봉사자들을 이끌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현재 유해발굴이 진행되는 아산 지역은 어떤 현장인가?
“한국전쟁이 터지고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9·28 서울 수복을 전후해 인민군이 물러갔다. 이후 준군사 조직인 치안대 같은 것이 결성되면서 부역 혐의를 받던 민간인들이 많이 희생됐다. 아산 배방읍 설화산, 탕정면, 염치읍 대동리 등에서 모두 700~800명 정도의 피해자가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설화산에서 유골 수습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진행된 발굴 과정에서 3200여 점의 뼛조각이 발견됐다. 감식 결과 대략 208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 설화산 폐금광 입구에서 처형됐다. 감식해 보니 희생자 중 58명이 1살 남짓에서 12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로 파악된 여성의 유골도 많이 발굴됐다. 이들이 지니고 있던 비녀만 해도 70여 개가 유품으로 발견됐다.”
 
군 전사자 유해 발굴을 하다 민간인 학살 희생자 발굴 책임자로 활동하다 보니 오해를 받지는 않았나.
“일각에서는 좌익 활동하다 죽은 빨갱이들의 유골을 왜 수습해 주느냐고 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좌·우, 진보·보수의 시각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전쟁이라는 혼란기에 제대로 된 조사나 절차도 없이 국가 폭력에 의해 돌아가신 분들 아닌가.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컴컴한 땅 밑에 묻혀 있는 이들의 유골을 수습해 영혼만이라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볼 때 산 자로서 마땅히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미국 유학 시절 체질인류학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뼈대학을 통해 인류의 진화 과정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문이다. 나는 구석기, 청동기 시대의 사람 뼈를 연구해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를 해 왔다. 1998년 군 관계자로부터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군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계획하는 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 지금에 이르는 계기가 됐다.”
 
체질인류학을 공부한 것이 현재 유해발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한국전쟁은 동족끼리의 싸움이었고 전선도 불분명했다. 현장의 지형이나 그 지역의 역사적 사실 등이 종합적으로 분석돼야 한다. 특히 군 전사자 유해발굴 때는 인민군과 육박전이 벌어져 유해가 혼재돼 묻혀 있는 현장도 있다. 인식표(군번줄)나 다른 유품이 없으면 피아 구별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 찾을 날 왔으면
 
50대 초반에 시작한 유해발굴이 벌써 20년이 넘었다.
“가족들과 예순다섯까지만 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뼈대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인력이 별로 없다 보니 그만둘 수가 없더라. 70살까지 5년만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2년이 더 지나갔다. 일흔다섯까지 할 생각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일흔을 넘긴 나이인데 힘들지는 않나.
“2~3년 전만 해도 곡괭이질을 직접 했었는데 이제는 힘에 부치더라. 아무런 대가도 없이 현장을 찾아 자원봉사하는 시민들이 있어 버틸 수 있다.”
 
민간 차원에서 발굴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비용 문제 등 어려움도 많을 것 같다.
“국가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봉사와 모금으로 진행하고 있고, 최근에는 아산시 등 지자체가 예산지원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하루빨리 관련 법이 만들어져 국가 차원에서 희생자 유해 발굴이 이뤄져야 한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대통령 직속으로 유해발굴센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군 전사자와 민간인 희생자, 일제강점기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고 감식하는 종합 기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노력해 온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찾을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전쟁 때 민간인 유해 전국 168곳에 산재…10%도 발굴 못 해
지난해 아산시 설화산 폐금광에서 희생자 유품인 비녀 70여개가 발견됐다. [사진 유해발굴공동조사단]

지난해 아산시 설화산 폐금광에서 희생자 유품인 비녀 70여개가 발견됐다. [사진 유해발굴공동조사단]

한국전쟁 당시 전국적으로 민간인 집단 희생 관련 유해매장 추정지는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전국 각지에 묻혀 있는 유해가 20만 구를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중 ‘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이 가장 많았다. 보도연맹은 1949년 정부가 좌익 활동 전력이 있는 시민들을 계도하겠다며 만들었다. 하지만 가입 대상 기준이 자의적이어서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나 무고한 국민도 포함됐다.
 
2015년 대전시 낭월동 골령골에서 수습된 희생자 유골. [사진 유해발굴공동조사단]

2015년 대전시 낭월동 골령골에서 수습된 희생자 유골. [사진 유해발굴공동조사단]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각종 자료와 희생자 유족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관련 조사를 했다. 전국적으로 168곳이 매장 추정지로 1차 거론됐다. 지표조사와 유해발굴 가능성 조사를 한 결과 이 중 59곳에서 유해 발굴이 가능한 것으로 나왔다. 그리고 유해발굴의 시급성, 현장의 특정 여부 등을 고려해 우선 발굴 대상지로 다시 39곳이 추려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부터 3년 동안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 충북 청원 분터골, 전남 진도 갈매기섬 등에서 유해 발굴을 했다. 유해 1617구와 유품 5600여 개를 수습했다. 진실화해위 활동 기간이 종료된 2010년 12월 31일까지 실제 발굴이 진행된 곳은 13군데로 전체 매장 추정지의 10%도 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와 함께 유해발굴 사업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유족들과 시민단체가 뜻을 모아 민간 차원에서 유해발굴에 나섰다. 2014년 2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이 결성됐다. 공동조사단은 2014년 2월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를 시작으로 유해발굴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현재까지 7차에 걸쳐 5곳에 대한 유해 발굴이 이뤄졌다. 지난 3월에는 충북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에서 40구의 유해와 136점의 유품을 수습했다.  
 
유족과 공동조사단 측은 조속히 관련 법을 만들어 정부가 다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19대 국회 당시에는 이낙연 의원(현 국무총리)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등을 위한 기본법안’을 비롯해 총 13개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법안들이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현재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7개가 국회에 제출돼 계류 중이다.
 
아산=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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