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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 통화록 유출 후폭풍…한국 외교관 꺼리는 미국

중앙선데이 2019.05.25 00:57 637호 6면 지면보기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24일 외교상 기밀 누설 혐의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24일 외교상 기밀 누설 혐의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3급 비밀인 한·미 정상 통화록을 직원 여러 명이 돌려봤고 이를 외부에 유출했다”는 정부 감찰 결과가 나오면서 주미대사관 통화록 유출 사건 파문이 한·미 동맹 외교 전반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다음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양국 간 조율이 시급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 외교관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방한 앞두고 조율 급한데
‘24시간 상시 공조’ 체제 흔들려

조세영 차관 “유출은 범법 행위”
민주당, 검찰에 강효상 의원 고발

한국당 “작년 정청래도 입수 발언
여권 반응 너무 달라 내로남불”

한·미 양측에 정통한 소식통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과 국무부 등 미 정부 주요 카운터파트들이 한국 외교관과의 통화와 면담을 기피하기 시작했다”며 “한국 정부가 통화록 유출을 발표하면서 주미대사관이 신뢰할 수 없는 상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동맹의 상징인 ‘24시간 상시 공조’ 체제가 이번 사건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도 24일 페이스북에 “외교 기밀 내용이 정부를 공격하는 데 유리한 것이라도 이를 폭로하는 것은 더 큰 국익을 해치는 범죄 행위”라며 “차기 집권을 꿈꾸는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강 의원의) 출당을 선택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미 양국의 정상적인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당장 다음달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 및 의제 조율부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다른 관계자는 “미국도 언론 등에 기밀이 유출된 사례는 많지만 정부가 나서서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출을 인정하면 정부 간 정보 교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조윤제 주미대사는 직원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트럼프 대통령 방한 준비 등 맡은 소임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조세영 신임 외교부 1차관은 24일 취임식에서 “최근 해외공관에서 국가 기밀을 다루는 고위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기강 해이와 범법 행위가 적발됐다”며 “외교부를 믿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부끄러운 사건으로, 신속하고 엄중한 문책 조치와 재발 방지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우리 외교부는 비상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강력한 조직 쇄신을 주문하면서다.
 
주미대사관은 외교부 합동 감찰에 이어 다음주부터 2주간 감사원 정기 감사를 받는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보안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미대사관 측은 “현재 본부에서 감찰 중인 사항과 관련해 대사관은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강효상 의원. [뉴스1]

강효상 의원. [뉴스1]

유출자인 외교관 K씨(3급)는 지난주 감찰이 시작되면서 업무에서 배제됐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주미대사관에 근무 중인 K씨는 외교부 본부가 조윤제 주미대사에 3급 비밀 전문으로 보낸 지난 7일 한·미 정상 통화록을 열람했다. 이후 고교 선배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과 두 차례 카카오톡 통화로 내용을 유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공방도 격화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외교상 기밀 누설 혐의로 강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 법률위원장을 맡은 송기헌 민주당 의원 등이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검을 찾아가 강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통화 유출을 넘어 국익을 유출한 문제”라며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강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국당은 굴욕 외교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 제보’라고 맞받았다. 또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의 과거 방송 발언을 거론하며 역공에 나섰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1월 MBN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한 것을 제가 로 데이터(raw data)로 다 받아봤다”고 한 뒤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어보이며 “여기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강 의원과 정 전 의원을 대하는 여권의 반응이 너무 판이하다”며 “이런 게 바로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이유정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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