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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하늘은 남 돕는 자를 돕습니다”

중앙일보 2019.05.25 00:03
기능이 다른 사람끼리 협업해야… 자신의 인생사용 설명서는 ‘어시스트의 달인’
 

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17)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

사진:전민규 기자

사진:전민규 기자

“소통을 하려면 옳은 말이라도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아내의 바가지와 부모님 잔소리를 사람들이 잘 안 듣는 건 말이야 맞는 말인데 기분이 나빠서예요.”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은 “나이가 들면 배우자와 자녀에게, 맞는 말을 기분 상하지 않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게 바로 꼰대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스펙 좋은 사람들이 대체로 이렇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요. 진실이 거짓을 이기더라도 한참 끌려 다니다 이기는 것도 진실을 외치는 사람들의 이런 태도와 무관치 않아요. 도덕적 우월감 같은 거죠.”
 
윤 회장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공군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후 종합무역상사였던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급여가 높았고 삼성전자보다 인기가 있었다. 1983년 입사 5년차 때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을 접했다. 그는 한국에 새 문명의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로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나중에 삼성물산 사장을 지낸 당시 부장은 “토플러는 미래학자이니 10년만 더 다니라”고 만류했다고 한다. 정보전략연구소를 차린 그는 직원 10명을 두고 정보와 지식을 파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토플러가 [권력이동]을 냈다. 밤을 새워 독파한 끝에 디지털 혁명 시대엔 스피드가 지배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그는 ‘시테크’를 창안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타임 베이스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간 창조의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아 같은 이름의 책도 냈다. [시테크]는 우리 사회에 시테크 바람을 일으켰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명강사 거쳐 대학 총장, 차관급 공직에 
 
윤 회장은 [협업으로 창조하라] [정보학 특강] 등 지금까지 총 23권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강의와 방송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2007년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지냈고 그 후 차관급인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맡았다. 임기를 마치자 여러 기업에서 상근 부회장, 고문 자리를 제안했지만 고사했다. 정치판은 한참 잘나갈 때도 기웃거리지 않았다. 현재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비롯해 10여 곳의 이사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2014년엔 사단법인 한국협업진흥협회를 만들어 협업 전도사로 변신했다. 협업진흥협회는 협업에 관한 교육, 진단, 연구 및 컨설팅을 담당하는 국내 유일의 기관이다. “기능이 같은 사람끼리 서로 돕는 게 협동(cooperation)이라면, 협업(collaboration)은 기능이 서로 다른 사람끼리 돕는 겁니다. 농부들이 하는 품앗이는 협동이고, 전공이 다른 의사끼리 진단과 치료를 같이 하는 협진은 협업이죠.”
 
‘미스터 콜라보’로 통하는 그는 행정개혁은 정부 부처 간 칸막이를 부수는 게 아니라 칸막이에 구멍을 내 파이프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연결할 때 거대한 시너지 효과가 창출되고 융복합이 창조적으로 일어나죠. 반면 칸막이를 아예 제거하려 들면 당사자들이 반발합니다. 정도전의 개혁도 그래서 실패했어요. 부처 간에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필요한 때 협업을 해야 합니다.”
 
협업은 목표는 같지만 기능은 서로 다른 파트너끼리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따로 또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4대강 수습 등 우리 사회의 갈등 현안 해결에도 협업이 필요합니다.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도, 영·호남 간 지역 갈등도 협업으로 풀어야 돼요. 이른바 협치도 협업 정치의 준말이에요. 상대 당이 잘한 건 박수쳐 주고 서로 협업해 공동으로 입법을 해야죠. 내로남불의 정치 문화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30여 년 경력의 자타가 공인하는 명강사이다. 그의 강의 노하우는 독보적 콘텐트로 승부하는 것이다. 이렇다 할 기교도 없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잘 정리해 담담하게 전달합니다. 이미자·조용필처럼 좋은 노래를 잘 부르면 굳이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는 50대 초중반에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 중 다수가 강사 시장에 들어오지만 안착하는 케이스가 흔치 않다고 말했다. “강의 스킬보다 강의의 테마, 즉 나름의 콘텐트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리더십이나 소통을 강의하는 사람은 쌔고 쌨어요. 어떤 리더십인지 스스로 차별화해야죠. 내가 할 수 있는 강의가 아니라 남에게 도움 되는 강의, 세상이 필요로 하는 콘텐트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필요를 찾아내려면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2009년 그는 [매력이 경쟁력이다]란 책을 냈다. 매력이라고 할 때 매(魅)는 도깨비라는 뜻이다. “매력은 도깨비처럼 사람을 홀리는 힘이죠. 중앙공무원교육원장 할 때 신임 사무관들에게 실력, 담력과 더불어 매력을 가꾸라고 당부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3력이죠. 정신적 매력과 외모를 가꿔 호감을 사라는 겁니다. 담력은 도덕적으로 당당할 때 생깁니다. 떳떳하게 살았어야 결정적인 기회나 위기에 담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평생 ‘어시스트의 달인’으로 살아
 
2015년 ‘공군을 빛낸 인물’에 뽑힌 윤은기 회장이 지난 5월 초 국산 초음속전투기 FA-50에 탑승했다. / 사진:사진 윤은기

2015년 ‘공군을 빛낸 인물’에 뽑힌 윤은기 회장이 지난 5월 초 국산 초음속전투기 FA-50에 탑승했다. / 사진:사진 윤은기

그가 그랬다. 그는 한 번도 어떤 자리에 지원해 본 일이 없지만 생방송 프로그램을 10여 년 진행했고, 대학 총장과 민간 출신 첫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지냈다. 공무원교육원장으로 갈 때 200여 가지 인사 검증을 거쳤고, 재직 중엔 판공비를 쓰지 않았다. “법대로 살았지만, 무고하는 사람이 없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MBA를 했지만, 대인관계에서 50 대 50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5를 더 할애, 늘 55 대 45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제가 총장을 지낸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의 영문 약칭이 assist인데 평생 남이 골을 넣도록 어시스트했어요.”
 
그에게 윤은기의 ‘인생사용 설명서’에 뭐라고 적혀 있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도 ‘어시스트의 달인’이었다. “박지성 선수도 아시아 출신으로 유럽에 진출해 쓴 전략이죠. 젊은 날엔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만 날이 갈수록 남을 돕는 자를 돕습니다. 최후의 승자는 남을 돕는 사람이에요. 끝이 창대해야 하는데, 스스로를 도와 시작은 창대하고 남을 돕지 않아 끝이 미약하면 인생에 그런 비극이 없죠.”
 
2015년 그는 ‘공군을 빛낸 인물’(공군 주관)이자 ‘자랑스러운 공군인’(공군전우회 주관)으로 뽑혔다. 공군 장교 출신으로 공군 정책발전자문위원장을 오래 지내기는 했지만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난 5월 초엔 공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공군참모총장의 권유로 국산 초음속전투기 FA-50에 올랐다. 전투기 조종사의 근무 상황을 직접 체감해 보고 근무 환경도 파악해 보라는 취지였다.
 
그의 멘토는 그가 부관으로 공군에 복무하던 시절 모신 김동호 전 공군 작전참모부장(소장)이다. 지덕체를 겸비한 군인이었던 김 장군은 1979년 12·12사태를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에 대한 지지를 요구했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 그 바람에 공군의 엘리트였지만 옷을 벗어야 했다. 훗날 그는 “중장, 대장 진급하고 전역 후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철학과 인생관에 따라 군을 떠난 게 더 떳떳하다”고 털어 놓았다고 한다.
 
윤 회장은 인생은 마치 4막의 오페라처럼 춘하추동 사계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아도 생각의 방향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향해야 합니다. 자연의 가을은 짧아졌지만 인생의 가을은 만만치 않게 길어요. ‘이렇게 길 줄 알았다면 그때 시작할 걸’ 하고 후회하지 말고 새로운 지식을 접하든 젊어서 못한 악기 연주를 배우든 자꾸 배워야 합니다. 매력을 가꿔 멋진 시니어가 되는 겁니다. 100세 시대 매력적인 시니어가 많은 나라가 바로 선진국입니다.”
 
그는 사업을 하다 실패해 야반도주하는 사람을 나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 자신 정보전략연구소 창업 후 2년 간 그런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친구 등 지인들은 그와 마주치면 돈을 꿔 달랄까 봐 피했다고 한다. 봉급날 전날 밤이면 악몽을 꿨고, 빚이 쌓여 자살 충동을 느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빚에 짓눌려 죽지 말고 야반도주한 후 여봐란 듯이 재기해 갚으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저도 토플러가 첫 방한한 후 사람들이 강의, 자문 등으로 찾기 시작해 살아났습니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과거 기업의 경쟁력, 스피드 경영, 고객 만족 등을 외친 것에 대해 요즘 반성적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본다고 말했다. “양극화, 분노 사회 등 승자독식 경쟁의 부작용으로 우리 사회가 막대한 갈등 비용을 치르고 있고, 생산성까지 저하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를 외면한 탓이죠. 기술 문명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사람을 자원이 아니라 인간 자체로 바라보는 신인본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소설가 
 
그의 버킷 리스트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소설을 잘 쓰고 싶어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말했다. 고려대에 입학했을 때 왜 심리학과에 진학했느냐는 교수의 질문을 받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는 그의 가방엔 늘 전공 책과 함께 소설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감동을 줍니다. 언젠가 소설을 통해 제가 꿈꾸는 이상향을 그려볼 거예요. 습작도 합니다.”
 
여전히 현역인 그의 인생 3막 설계이다. 만년에 소설가로 데뷔한 이강숙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한은 총재를 지낸 고 김준성씨가 모델이다. “이강숙 총장이 고희에 쓴 첫 소설 [빈병 교향곡]을 대전에 강의하러 가는 차 안에서 읽으면서 기쁨과 좌절을 동시에 맛봤습니다. 그 연세에 내가 꿈꾸는 소설가로 데뷔하신 것이 기뻤고, 그분의 타고난 재능에 좌절했죠. 그날따라 무심한 비가 줄줄 내렸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면 친구를 새로 사귀기보다 검증된 친구와 깊이 사귀는 게 좋다고 말했다. “60대 중반이 되면 마치 방사성 원소의 반감기처럼 도리어 친구 수를 계속 절반으로 줄여나가야 합니다. 형식적인 모임에 끼기보다 마음 맞는 친구와 어울리고, 베풀기도 하면서 사는 게 좋다고 봐요.”
 
그는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그는 성년이 된 자녀의 경우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면 부모가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아이들이 자랄 때도 거의 방목을 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정보도 더 빠르고 더 똑똑해요. 배우자 선택도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하려고요. 자식의 결혼에 반대해 그 자식이 더 잘된다는 보장 없습니다. 사실 결혼은 집안도 재력도 서로 다른 사람끼리 하는 게 좋아요. 다른 사람끼리 만나야 우주가 넓어지죠. 무엇보다 자식 인생의 봄날은 우리가 겪은 춘궁기와는 다릅니다. 인생 2막엔 배우자에게도 자유를 줘야 합니다. 더 이상 돈은 못 갖다 줘도 가을날의 자유는 줄 수 있어요. ‘알아서 해’ ‘그렇게 해’ 이 두 마디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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