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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라드 칼럼] 북한 도발 배경에는 식량난이 있다

중앙일보 2019.05.24 00:31 종합 28면 지면보기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이 심각한 식량난에 빠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북한에서 총 136만 톤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부족량이 150만 톤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장마당 쌀값 하락을 근거로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따른 지표에 불과하다. 북한 주민이 쌀값을 감당하지 못해 굶거나 쌀보다 값싼 곡물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수요가 준다.
 
식량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은 북한이 5~9월에 전국적 기아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 시장에서 쌀은 1톤당 약 400달러에 거래된다. 쌀 150만 톤을 사들이려면 최소한 6억 달러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에서 북한에 공여하기로 한 800만 달러는 상황을 크게 바꾸지 못한다. 기적이 일어나 엄청난 양의 쌀을 공급받게 된다 해도 이를 주민들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운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굶주림은 분노를 부른다. 북한 정권은 그것을 두려워한다.
 
북한 정권은 제7차 노동당 대회를 개최한 2016년 5월에 경제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최근 유출된 북한 경제발전 5개년 전략서(2016~2020) 요약본에 따르면 2016년에도 북한 식량 공급은 수요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제시된 해결책을 보면 북한 지도부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 북한의 목표는 과학기술 발전, 교역 다변화, 러시아와의 협력 등을 통해 국내총생산(GDP)을 역대 최대 성장률인 8%까지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전략대로라면 북한과 러시아의 연간 무역량은 현재의 10배인 10억 달러에 이르러야 한다.
 
북한이 이 전략서를 작성할 때 러시아는 경기 침체에 빠져 있었으며 최근에도 GDP 0.5% 증가라는 부진한 성장을 기록했다. 러시아는 크고 작은 전쟁들을 치르고 있고, 주요 수출 품목인 석유와 가스 무역량은 목표치에 한참 미치지 못하며, 퇴직 연령을 높이고 부가세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의 다른 전략들도 비현실적이다. 과학기술 발전과 교역 다변화는 북한에 있어 너무 벅찬 과제다.
 
북한 정권의 허황한 전략은 실패했고, 식량난이 닥쳤다. 북한 정권은 5월 4일과 9일에 미사일 실험을 감행했다. 미국을 압박하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북한은 줄곧 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제재가 완화되면 북한의 주요 품목인 석탄을 다시 수출할 수 있다. 그러나 주요 목적이 미국 압박이라고 보기에는 첫 번째 실험과 두 번째 실험의 간격이 너무 짧다. 연속으로 실시된 미사일 실험에는 올해 안에 발생할 다른 일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5월 1일 일본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외교관계 회복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조건 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은 이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 북한은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구축하려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같은 절차가 따라올 것을 잘 알고 있다.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무력을 과시하는 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미사일 실험은 당면한 위기를 타개할 만한 뾰족한 방도가 없는 북한의 절박한 몸부림으로 추정된다. 몇 주 내에 대북 제재가 완화되고 일본이나 한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못할 경우 북한은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 하지만 중국이 도와준다는 보장이 없다.
 
북한은 대기근을 겪은 1990년대에 국제 사회에 원조를 요청했고, 당시에는 국제 구호 활동가들에게 상당히 자유로운 입국을 허락했다. 이번에도 같은 조처를 할 수도 있겠으나, 국제적 지원과 제재 완화를 위해 위협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그 선택이 북한의 미래를 좌우한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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