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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와이즈 어니스트호 몰수, 왜?

중앙일보 2019.05.24 00:30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미국이 압류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가 북·미 관계의 변수로 부상했다. 북한 김성 유엔대사가 21일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심사숙고하라”고 위협한 다음 날 한대성 제네바주재 대사도 “큰 결단을 하지 않으면 협상 재개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와이즈 어니스트호 반환을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내건 셈이다.
 
하지만 미국은 꿈쩍도 안 한다. 국무부는 김 대사 회견 이후 “외교적 협상엔 열려 있지만, 제재를 계속 집행할 것”이라고 했다.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하원 금융위에서 “대통령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를 모두 계속 집행하는 데 단호하다”며 “제재는 김정은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데 매우 중요한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아이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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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와이즈 어니스트호 문제에서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대북 제재 버팀목인 미국 달러 결제망에 구멍이 뚫린 사례이기 때문이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몰수 소장에 따르면 와이즈 어니스트호는 지난해 3월 14일 평양 남포항에서 석탄 2만 5000톤을 싣고 출항했다가 같은 해 4월 2일 인도네시아에서 억류됐다. 석탄과 선원들은 돌려주는 대신 배를 압류한 뒤 몰수를 추진하는 근거를 1974년 제정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상 특정 불법 행위를 촉진하기 위한 돈세탁 혐의라고 기재하고 있다.
 
와이즈 어니스트호가 운항과 정비 등에 달러 송금 제휴 계좌로 미국의 뉴욕 은행 두 곳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2017년 1월 와이즈 어니스트호의 하역과 정비 부품을 구매하는 청구서와 이메일에선 뉴욕 남부의 첫 번째 은행 지점을 활용한 증거들이 발견됐다. 지난해 3월 석탄 밀수와 관련해선 모두 75만 달러를 뉴욕의 두 번째 은행 계좌를 통해 송금했다. 석탄 선적지를 남포가 아니라 러시아 나홋카로 기재한 허위 문서를 활용했다.
 
달러를 통한 국제 자금 거래는 미국 뉴욕 은행들의 계좌를 통한다. 북한 돈세탁에 조력하는 전 세계 은행과 기업을 국제결제망에서 퇴출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이 대북 제재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런데 미 금융기관을 활용해 버젓이 제재를 회피한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쉽게 돌려보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므누신 장관은 오히려 국제 자금 이체와 돈세탁에 초점을 맞춰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 직후 남북 금융협력 사업 준비를 놓고 미 재무부의 경고 움직임에 떨어야 했던 한국 은행들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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