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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모의 체벌권 삭제, 가정폭력 줄이는 전기로

중앙일보 2019.05.24 00:21 종합 30면 지면보기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민법상 규정된 부모의 ‘체벌’ 권한 삭제를 추진한다. 부모가 훈육 목적으로도 자녀를 체벌하지 못하도록 민법 915조에 규정된 부모 등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법무부·교육부·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는 23일 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확정했다.
 
1960년에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개정이 없었던 ‘친권자 징계권’ 조항은 그간 아동에 대한 체벌을 정당화하는 사유로 인용돼 왔고, 아동복지법이나 아동학대 특례법상 체벌 금지 조항과도 상충하는 면이 있어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무엇보다 징계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훈육’과 ‘학대’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현재 친권자의 징계권을 명문화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고, 스웨덴 등 54개국은 이미 아동 체벌을 법으로 금지했다. 일본도 지난 3월 징계권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친권자의 체벌 금지를 명기한 아동학대방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의회에 제출돼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그간 우리 정부에 가정, 학교 및 모든 여타 기관에서 아동 체벌을 명백히 금지하도록 법률과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해 왔다.
 
물론 일각에서는 체벌의 교육 효과를 강조하며 부모의 가벼운 체벌마저 못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반론도 내놓는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아동 체벌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3%가 ‘상황에 따라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체벌이 필요하다는 답이 76.8%로, 필요 없다는 답(23.2%)을 크게 앞섰다. 아직도 한국 사회 특유의 가족주의가 공고하다는 뜻이다. 법 개정과 함께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어떤 끔찍한 아동학대나 가정폭력도 처음에는 가볍게 한 대 때리는 데서 출발하며, 작은 폭력의 사인을 무심코 넘긴 것이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진 사례들을 숱하게 보아 왔다. 어려서 아동학대를 당한 피해자가 장성해 부모가 되어 폭력의 가해자로 돌변하는 일도 적지 않다.
 
자녀를 독립된 인격이 아닌 부모의 소유물로 보면서 ‘내 자식이니까 내가 때려도 된다’ ‘훈육을 위해서는 때릴 수도 있다’는 인식이 가정폭력의 중요한 고리임을 우리 사회 모두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책은 아동을 단순한 양육 대상이 아닌 생존권, 발달권, 참여권, 보호권을 가진 권리주체로 보고 국가의 책임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에 모처럼 의미 있는 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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