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동물은 한 번,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무슨 뜻일까

중앙일보 2019.05.23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35)
아이는 걷기 위해 수없이 무릎을 찧는다. [사진 pixabay]

아이는 걷기 위해 수없이 무릎을 찧는다. [사진 pixabay]

 
사랑 학교
버들강아지 물오르듯
옹알이 졸업한 아이 보아요
엄마라고 부르기까지
오만 번 실패를 겪는다지요
제 발로 아빠 향해 걷기까지 
수도 없이 무릎을 찧었겠지요
그래도 얼마나 아팠을까 하고 
아무도 얼굴 찡그리지 않아요
틀렸다고 야단치는 이는 더더욱 없고요
길 가던 이 모두 까르르 손뼉 치며 뒤쫓아요
잘 해내리라 믿으며 기다려요
사랑이기에 그렇죠
 
멀미하는 파랑주의보 같은 나날
당신과 그대라는 만남을 기도하기까지
돌아앉아 가슴으로
두 번째 낳아준다면 어떨까요
 
해설
얼마 전 조카가 낳은 첫딸의 백일잔치가 있었다. 태어나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변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사진 unsplash]

얼마 전 조카가 낳은 첫딸의 백일잔치가 있었다. 태어나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변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사진 unsplash]

 
며칠 전에 조카딸이 첫딸을 낳고 백일상을 차렸다. 하얀 드레스에 예쁜 모자를 쓴 모습이 앙증맞아 아기천사 같다. 태어나서부터 수시로 보내오는 사진을 봐왔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변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마치 누룩을 넣은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오른듯하다.
 
평소에도 부부 사이가 좋은 조카딸 내외에 귀엽고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니 더 화목해 보여 흐뭇하다. 돌아보니 둘을 키웠어도 그때보다 더 살갑게 느껴진다. 아이가 태어나면 처음 3년 동안 평생에 할 효도를 다 하는 거라는 옛말이 실감 난다. 아기 얼굴만 떠올려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시범조교' 있어야만 학습되는 인간의 뇌
언젠가 TV에서 망아지가 태어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망아지는 태를 뚫고 나오자마자 연약한 네 다리를 부르르 떨면서 일어섰다. 그리곤 바로 어미 품을 파고들어 젖을 빨고 다음 날에는 자신 있는 모습으로 들판을 뛰어 달린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망아지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대뇌와 중뇌에 감각과 운동 패턴이 입력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여타 동물과 달리 태어날 때 패턴화한 신경연결망이 없다. 그야말로 두뇌가 백지인 상태로 태어난다. 인간은 1000억 개의 뇌신경세포 뉴런과 연결부인 시냅스가 있다. 하지만 일어서고 걷고 말하는 구체적인 동작을 하려면 다양한 뉴런끼리 패턴화한 신경망이 연결돼야 작동한다. 그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학습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골반과 산도가 좁아져 큰 두뇌를 지닌 영아를 낳기 어려웠다. 태아의 큰 머리 때문에 산통이 심하고, 자칫하면 산모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래서 인류는 작고 미성숙한 아이를 낳아서 다 자랄 때까지 부모가 돌보아 키우는 방법을 택했다.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신경 반응이 인간의 뇌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려면 아이 스스로 시도하고 도전하며 실패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한두 번의 시도로는 뇌에 각인이 되지 않는다. 즉, 인간의 뇌는 타인과의 만남과 어떤 동작에 실패하는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 기관이다. 이런 의미에서 뇌는 ‘사회적 기관’이며 ‘운동기관’이다.
 
인간은 패턴화한 신경연결망이 없이 태어난다. 하지만 망아지만 해도 패턴화된 정보가 있어 태어나자마자 걷고, 젖을 먹으며, 다음 날엔 뛰어다니기도 한다. [사진 pixabay]

인간은 패턴화한 신경연결망이 없이 태어난다. 하지만 망아지만 해도 패턴화된 정보가 있어 태어나자마자 걷고, 젖을 먹으며, 다음 날엔 뛰어다니기도 한다. [사진 pixabay]

 
특히 인간은 소나 늑대, 원숭이 같은 다른 동물을 통해 올바른 체험을 얻을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을 통해서만 뇌의 인식이 활성화한다. 망아지는 태어나자마자 말답게 자라지만, 인간은 평생 사람다운 교육과 존중을 받아야만 인간답게 된다. 대접받는 대로 자란다. 이런 점이 인간이 지닌 약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인간답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오래전부터 성현들은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개인은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고유한 인격이 있으며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일관성 있고 애정 어린 태도,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실수를 용납하는 공정한 교사의 훈육, 친구들과의 동등한 교류, 납득할만한 보상을 베푸는 회사의 상사, 그리고 이웃의 인격적 배려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사실 두 번 태어나는 셈이다. 엄마의 자궁을 통해 한 번, 가족과 이웃을 통해 다시 한번 더 태어나는 것이다. 한자로는 어린아이를 아동(兒童)이라 쓴다. 여기서 ‘아(兒)’는 천문이 열린 갓난애 머리를 형상한 절구 ‘구(臼)’와 두 다리를 형상한 어진 사람 ‘인(儿)’의 합자이다. 동(童)은 마을 ‘리(里)’와 설 ‘립(立)’의 합자로 아이를 마을 사람들이 키워준다는 뜻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대가족이 모여 살아 나를 업고 안고 키워주셨다. 그런데 핵가족인 요즘은 자칫 ‘독박육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기 엄마에게 무거운 책임이 지워진다. 그러니 아기 아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목욕시키고 분유를 먹이는 일 등은 감당해야 마땅하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 즉각적인 응대를 해주어야 한다. 넘치도록 충분한 애착을 느끼게 해야 나중에 애착결핍증후군에 걸리지 않는다. 최소 2~3분 이내에 아이의 요구를 해결해 주도록 한다. 그래야 아이가 부모를 신뢰한다. 이런 점에서 유대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은 그것이라 부르는 3인칭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드시 ‘너와 나’라는 관계 속에서 2인칭과 1인칭의 인격적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3인칭은 방관이라는 말과 동류다.
 
아이의 요구 2~3분 안에 해결해줘야
공자는 논어에서 '인(仁)'을 강조했다. [사진 통나무 제공]

공자는 논어에서 '인(仁)'을 강조했다. [사진 통나무 제공]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성의 완성이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만이 인간의 존엄성을 자각하고 자신과 타자를 인격적으로 대했다. 특히 공자는 논어에서 ‘인(仁)’을 강조했는데, 그 뜻이 복합적이다. 제자들의 질문에 모두 조금씩 다르게 대답했다.
 
한자 ‘仁’은 단순히 어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과 소통, 배려가 담긴 의미다. 仁은 사람 인(人)과 두 이(二)의 합자로 관계적 의미가 담겼다. 곧 ‘두 사람이 동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는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행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라는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업광고는 사람을 소비자로만 여겨 이윤을 높이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학교는 인격도야가 아니라 진학성적을 올리기에 급급하다. 공장과 회사는 사람보다 능률을 최고로 삼으며 환경오염과 자연을 훼손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가는 감언이설로 권력을 잡으려고만 하지 진정 국민을 위하고 미래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
 
뇌는 굳지 않는 신경가소성이 있어 인간은 늙어서도 배우고, 새로운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사진 unsplash]

뇌는 굳지 않는 신경가소성이 있어 인간은 늙어서도 배우고, 새로운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사진 unsplash]

 
그런데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 인간의 뇌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굳어버리지 않는 신경가소성이 있다. 뇌는 마치 플라스틱을 성형하듯이 새로운 패턴을 입력할 수 있다. 신경가소성은 나이가 들어서도 누구나 창의적으로 배움을 지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한때는 유전자의 영향으로 사람의 길이 정해진 것처럼 받아들여졌으나,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유전자의 발현도 얼마든지 억제하거나 조절이 가능하다고 한다.
 
굳이 종교를 말하지 않아도 신경가소성과 후성유전학의 결과 인간은 행동하는 주체로서 능동적인 체험을 한다면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인식하며, 인간의 존엄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 효능감(Self efficacy)’이라고 부른다.
 
옛 스승들은 인간답게 사는 길만이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길을 한 번만 체험하면 절대 사라지지 않는 보화를 쌓는 것이라 확언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할 게 있다. 인격이다.
 
인간의 앞날은 예측하기 어려운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와 같다. 파랑주의보는 폭풍과 태풍이 불지 않아도 갑자기 3m 이상의 파도가 몰아칠 위험이 있을 때 내리는 기상예보다. 파랑주의보가 내리면 어선이나 소형 선박은 출항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그럴 땐 안전한 항구에 닻을 내리고 풍랑이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다행히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항구가 되어줄 능력이 있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