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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땐 부시 참 미웠다"···다시 주목받는 盧·부시 인연

중앙일보 2019.05.23 11:11
2006년 9월, 미국 백악관에서 마주 앉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중앙포토]

2006년 9월, 미국 백악관에서 마주 앉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중앙포토]

“노무현 정부 때는 부시가 참 미웠다. 이라크 파병을 노 전 대통령이 원해서 했겠나. 그런데 10주기를 맞아 초상화까지 들고 오겠다는 부시 전 대통령을 보면서, 그에 대한 미움이 스르르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한 중진 의원이 최근 한 말인데,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보는 여권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해찬 대표도 22일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두 분은 재임 시 여러 차례 만나면서 한미 동맹과 관련해 깊은 논의를 많이 했다. 처음엔 입장이 매우 달랐는데, 여러 차례 만나면서 공감대를 많이 이루고 인간적인 신뢰도 쌓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퇴임 후 초상화를 공부해 상당히 잘 그린다고 하는데, 그 초상화를 갖고 봉하로 간다고 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노무현 재단은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는 부시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12월 14장의 사진을 전달했다.

 
사실 두 사람 인연의 시작은 호연이라기보단 악연에 가까웠다. 북한을 보는 관점이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부시는 2001년 9ㆍ11테러 이듬해, 이란ㆍ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규정하고 코너로 몰아붙였다. 부시는 햇볕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하려 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 지칭할 정도로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냈다. 반면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 전 대통령은 평화와 대화가 대북 정책의 주된 기조였다.

 
두 사람은 재임 중 8차례 만났다. 2003년 5월, 첫 정상회담을 했는데 여당은 물론 야당도 “환영한다”고 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남북 교류를 북한의 비핵화와 연계한 데다, 이라크 파병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11월, 곧바로 갈등설이 불거졌다. BDA(방코 델타 아시아)를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인식한 미국이 제재를 가했는데, 이때는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NPT) 복귀 의사를 밝히는 등 6자 회담이 일부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시기였다. BDA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노 전 대통령의 설득에 부시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런 기조가 바뀐 건 2006년 11월이다. 부시가 네오콘이자 강경 보수였던 도널드 럼스펠드국방부 장관을 경질한 걸 신호탄으로 미국의 대북 기조가 바뀌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간선거에서 패한 것도 럼스펠드 경질에 영향을 끼쳤겠지만, 노 전 대통령의 줄기찬 설득이 부시의 마음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2009년 1월 퇴임한 부시는 2010년 쓴 자서전 『결정의 순간』 한국판 서문에 “2009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음을 밝히고 싶다”라고 썼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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