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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썩는 비닐 쓰라면서 55%는 안묻고 소각하는 정부

중앙일보 2019.05.23 05:00 종합 1면 지면보기
22일 한 시민이 서울 중구 대형백화점 내 의류매장에서 산 옷을 담은 생분해 비닐봉투를 들고 있다. 김정연 기자

22일 한 시민이 서울 중구 대형백화점 내 의류매장에서 산 옷을 담은 생분해 비닐봉투를 들고 있다. 김정연 기자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몰. 취재 기자가 이곳의 한 의류매장에서 티셔츠 두 장을 고르자 매장 직원은 자연스럽게 흰색 비닐봉투에 담아줬다. 대형 매장인 IFC몰의 모든 상점은 비닐봉투 제공이 금지됐지만, 봉투값도 받지 않고 무상 제공했다. ‘생분해성 비닐’이기 때문이다. 
 
22일 찾은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백화점 매장에서는 비닐봉투 제공이 금지됐지만, 생분해성 비닐은 예외였다.

생분해성 봉투 하단에 '폐기 시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려주세요' 문구가 쓰여 있다. 김정연 기자

생분해성 봉투 하단에 '폐기 시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려주세요' 문구가 쓰여 있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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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규제 프리패스' 된 생분해성 비닐
 생분해성 봉투 안내문구. '무상배포 가능' '생분해 가능'을 강조하며 '일반쓰레기' 배출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 프로팩]

생분해성 봉투 안내문구. '무상배포 가능' '생분해 가능'을 강조하며 '일반쓰레기' 배출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 프로팩]

생분해성 비닐(환경표지 EL724 인증을 받은 생분해성 수지 제품)은 옥수수 전분이나 고구마 전분 등으로 만들어져 토양 속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 땅에 묻힐 경우 이론적으로 90일 만에 자연으로 돌아간다. 환경부는 지난달 비닐봉투 단속 이후에도 생분해성 비닐은 ‘유‧무상 제공’이 가능하게 예외를 뒀다. 생분해가 비닐 규제 시대의 ‘프리패스’가 된 셈이다.

 
생분해성 비닐봉투는 100장에 7000~8000원꼴(도매가 기준)로 100장에 2000원꼴인 일반 비닐보다 3~4배 비싸다. 그런데도 시중에서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생분해 비닐 문의‧주문이 급증하고 있다. 일선 지자체도 생분해성 비닐을 이용한 종량제 봉투 개발에 나서는 중이다. 
 
국내 생분해성 비닐봉투 제조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기도 포천의 ‘프로팩’의 경우 지난 1월 주문량이 60t이었으나 이달에는 150t으로 급증했다. 프로팩 관계자는 “4월 1일 규제 직전엔 공장을 24시간 돌려도 모자랄 정도였고, 아직도 밀려 지금 주문하면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생분해 안 되고 절반 이상 ‘소각’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제는 땅에 묻히면 분해되는 생분해성 비닐이 실제 땅에 묻힐 확률이 낮다는 점이다. 생분해성 비닐은 현재 일반쓰레기로 배출된다. 일반쓰레기 매립률은 2012년 이후 꾸준히 감소 추세다. 2017년 종량제봉투에 담겨 일반쓰레기로 배출된 플라스틱류(비닐류 포함) 하루 4600t 중 매립된 것은 898t(19%)이고, 55%인 2571t은 소각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활용하는 일반 비닐과 섞이지 않게 생분해성 비닐은 일반쓰레기로 배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생분해성 비닐이 섞일 경우 성분이 달라 재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땅에 묻지 않는 생분해성 비닐은 단순 폐기물에 불과한 셈이다.
 
생분해성 비닐봉투를 제작하고 남은 자투리 역시도 ‘폐기물’이다. 기존 비닐 생산 과정에서는 자투리를 녹여 다시 비닐을 만들지만, 생분해성 비닐은 녹여 사용할 수가 없다. 생분해성 비닐봉투 생산업체 사장 A 씨는 "재생이 안 되는 자투리는 돈을 들여 소각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팩의 경우 한 달에 발생하는 자투리 비닐이 8~9t에 달한다. 다만 프로팩 측은 "최근 생분해성 비닐 자투리를 활용해 다시 생분해성 수지를 만드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불가피한 비닐은 '재생비닐'로 교체하려니…'사용 금지'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 흙 묻은 채소 등을 담을 때 예외적으로 제공이 가능한 '얇은 속 비닐봉투(비닐 롤백)' 사용 자제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 흙 묻은 채소 등을 담을 때 예외적으로 제공이 가능한 '얇은 속 비닐봉투(비닐 롤백)' 사용 자제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비닐업계 관계자들은 생분해성 비닐만 허용하는 건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비닐을 재활용한 ‘재생 비닐’ 활용을 늘리는 방식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비닐 공장 사장 B 씨는 “재생 비닐은 기존 생산 라인에 재생 수지만 투입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 비닐 제작자들이 생분해성 비닐보다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재활용도 '닫힌 순환(closed recycling)'으로 가고 있다”며 “대부분 소각하는 국내 상황에 생분해 비닐은 큰 의미가 없고, 불가피하게 비닐 봉투를 사용해야 할 경우 새 비닐보다는 재생비닐이 낫긴 하다“고 말했다.
  
새비닐(왼쪽)과 재생비닐로 만들어진 종량제봉투. 천권필 기자

새비닐(왼쪽)과 재생비닐로 만들어진 종량제봉투. 천권필 기자

현재 재생비닐은 대부분 산업용으로 쓰이고 있지만, 종량제봉투 등 일반 봉투로 제작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서울시는 합성수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2020년까지 폐합성수지 재활용 비율이 40% 이상인 종량제봉투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현장에선 재생 수지가 60% 들어간 재생비닐도 일반 비닐과 똑같이 '금지' 대상이다. 재생비닐을 생산하는 폴리사이언텍 전승호 대표는 "환경부 친환경 마크를 받은 것인데도 규제 대상이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마트·백화점 등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속 비닐을 '재생비닐'로 교체하려는 문의가 많이 온다"며 "수요가 많은 데도 재생비닐을 사용할 수 없고, 새 비닐을 줄이는 효과도 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생분해 봉투도, 재사용 봉투도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린피스 코리아 김미경 플라스틱캠페인팀장은 “생분해 비닐은 마음껏 써도 되는 것처럼 인식된 건 잘못된 솔루션의 결과”라며 “‘감축’에 더 집중해 감축-재사용-재활용 순서로 정책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쓰레기를 대부분 소각하는 상황에서 생분해 비닐이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이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생분해 비닐도 줄여야 할 것”이라며 "재생 비닐에 대해서는 관련 규제를 정비해 가장 나은 자원 활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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