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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 “안 입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입는 사람은 없다”…불붙은 한국 레깅스 시장

중앙일보 2019.05.23 05:00 강남통신 2면 지면보기
“레깅스가 청바지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미국은 어떻게 요가 바지의 나라가 되었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내놓은 분석이다. 미국의 레깅스 시장이 평상복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청바지 시장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여졌다. 이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국내 레깅스 시장도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백화점과 온라인몰에선 레깅스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론칭 4년 만에 수백 만 장의 레깅스를 팔았다는 국내 브랜드도 등장했다. 올해만 이미 수십 개의 중소업체가 레깅스 경쟁에 뛰어들었다. 불붙은 한국 레깅스 시장을 들여다봤다.  
 
최근 1~2년 사이 국내에 선보이고 있는 레깅스는 파스텔톤을 기본으로 한 화사한 색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Y존을 도드라지지 않도록 배려하고, 배를 다 감쌀 정도로 허리 부분을 높게 만든 디자인으로 여성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국내 요가복 브랜드 뮬라웨어의 모델 이하늬의 모습. [사진 뮬라웨어]

최근 1~2년 사이 국내에 선보이고 있는 레깅스는 파스텔톤을 기본으로 한 화사한 색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Y존을 도드라지지 않도록 배려하고, 배를 다 감쌀 정도로 허리 부분을 높게 만든 디자인으로 여성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국내 요가복 브랜드 뮬라웨어의 모델 이하늬의 모습. [사진 뮬라웨어]

레깅스는 신축성 좋은 소재로 몸에 잘 맞게 만든 타이즈 형태의 하의다. 몸에 딱 달라붙는 모양새 때문에 ‘쫄바지’ ‘쫄쫄이’로도 불리는데, 최근 이 레깅스가 ‘스타 아이템’으로 조명받고 있다. 
레깅스의 인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게시물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레깅스란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게시물 수는 41만 개가 넘는다. 영문 #leggings 해시태그로는 690만 건. 대부분이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는 사진이거나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빼 몸을 S자로 만들고 포즈를 취한 사진들이다.  
요즘의 레깅스는 검정·회색 등 어두운 색 일색이었던 과거와 다르게 핑크·보라 등 다양한 파스텔톤 컬러로 화사함을 강조한다. 가격은 2만~3만원 대로 가성비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운동복,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레깅스. 사진은 안다르의 모델 신세경 모습. [사진 안다르]

운동복,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레깅스. 사진은 안다르의 모델 신세경 모습. [사진 안다르]

 
한국 레깅스 시장, 지금 고속 질주 중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3년 4345억원이었던 국내 레깅스 시장 규모는 △2016년 6380억원 △2017년 6800억원 △2018년 6950억원으로 성장했다. ‘요가복의 샤넬’이라 불리는 캐나다 브랜드 룰루레몬이 상륙한 2016년 이후 탄력이 붙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 G마켓 역시 2016년 이후 레깅스 판매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G마켓 강선화 패션레저실장은 “2018년 레깅스 판매 신장률은 3년 전인 2015년 대비 92%”라며 “디자인은 물론 기능성까지 갖춘 가성비 높은 제품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레깅스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국내 전문 브랜드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안다르·젝시믹스·뮬라웨어가 대표적이다. 2015년 시작한 안다르는 첫 해에만 10억원의 매출을 올리더니, 지난 2018년엔 400억원에 달하는 실적을 올렸다. 같은 시기 출발한 젝시믹스 역시 2018년에 전년 대비 10배 이상 성장한 250억원(레깅스 부문. 젝시믹스코리아 전체 매출은 39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고, 올해는 8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초 배우 이하늬를 모델로 내세운 뮬라웨어의 ‘업타운팬츠’는 출시 3개월 만에 20만장 가까이 팔렸다. 젝시믹스의 강교혁 총괄이사는 “올해만 새로 론칭한 신규 브랜드가 40~50개”라며 “지금 국내 레깅스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뮬라웨어의 연보라색 레깅스. [사진 뮬라웨어]

뮬라웨어의 연보라색 레깅스. [사진 뮬라웨어]

이는 전체 애슬레저 룩(스포츠웨어와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가벼운 스포츠웨어) 시장이 성장한 영향이 크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5000억원이었던 국내 애슬레저 룩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조원으로 성장했다. 2020년엔 3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백화점엔 최근 1~2년 사이 애슬레저 룩 매장이 크게 늘었다. 롯데백화점은 아예 지난해 상반기 조직개편에서 ‘애슬레저 룩 파트’를 신설하고, 2015년 10개 수준이었던 애슬레저 룩 매장 수를 지난해 24개로 늘렸다.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약 48% 신장했다. 같은 기간 청바지 상품군은 4% 신장에 그쳤다. 올해도 룰루레몬을 여성복 층인 3층에 입점시키는 등 애슬레저 룩 분야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 vs "부적절" 논란 커
국내 요가복 전문 브랜드 젝시믹스의 다양한 레깅스들. [사진 젝시믹스]

국내 요가복 전문 브랜드 젝시믹스의 다양한 레깅스들. [사진 젝시믹스]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부정적인 시각도 따른다.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탓에 '레깅스 패션이 과연 공공장소에서 적합한가'에 대한 논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5월 13일엔 국내 모 대학 커뮤니티에 올라온 "딱 붙는 레깅스 학교에서 입는 게 좀 그래?"라는 게시글 때문에 온라인에서 열띤 댓글 공방전이 벌어졌다. "개인의 자유"라는 의견과 "학교에선 입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직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레깅스 차림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TPO에 맞지 않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많다. 평소 레깅스를 즐겨 입는다는 직장인 양지혜씨는 "휴일엔 자유롭게 입지만 회사 출근 시엔 입지 않는다"며 “상사와 동료들의 불편한 시선과 수근거림이 느껴져 마치 내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잡음은 세계 1위 레깅스 시장인 미국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미국 CNN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제임스메디슨 고등학교에서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할 때 노출이 심한 옷이나 잠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공지하면서 여기에 레깅스를 포함시켜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앞서 3월 말엔 미국 인디애나주 노트르담 대학 신문에 한 학부모가 “레깅스 차림의 젊은 여성들 때문에 남학생들이 불편해할 수 있으니 착용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실어 문제가 됐다. 이에 반발한 노트르담대 학생들은 레깅스를 입고 캠퍼스에 모여 ‘레깅스 시위’를 벌였다.    
학교만이 아니다.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은 지난해 3월 캐나다 덴버 국제공항에서 여객기에 탑승하려던 10대 소녀 승객 3명의 탑승을 레깅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거부해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 중 1명은 가방에서 치마를 꺼내 입어 비행기에 올랐지만, 나머지 2명은 이를 거부해 결국 탑승하지 못했다.  
이제 레깅스는 일상 생활에서도 쉽게 입는 옷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은 안다르의 모델 신세경의 레깅스 화보. [사진 안다르]

이제 레깅스는 일상 생활에서도 쉽게 입는 옷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은 안다르의 모델 신세경의 레깅스 화보. [사진 안다르]

 
우리가 레깅스를 입는 이유 
이처럼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레깅스를 입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요가·필라테스 등 운동을 즐기는 여성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운동복으로 레깅스을 착용해본 사람들은 레깅스의 장점을 일상생활에서도 계속 누리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일상복과 매치하기 쉬운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의 ‘예쁜 레깅스’를 원하는 수요 또한 커졌다. 국내 레깅스 브랜드들은 하이 웨이스트에 파스텔톤 컬러를 쓰는 등 여성적인 디자인을 제시하며 소비자의 욕구를 파고들었다. 운동 매니아인 이수연(젝시믹스)씨, 요가 강사 자격증을 가진 신애련(안다르)씨 등 젊은 여성 대표들이 자신이 입고 싶은 레깅스를 직접 만든 게 주효했다. 20대 직장인 최정인씨는 “하나에 10만원이 훌쩍 넘는 룰루레몬은 가격이 부담스러웠는데, 최근 나온 국내 브랜드 레깅스는 2만 원대라 부담이 없다”며 “디자인도 예쁘고 기능성도 좋아 색깔별로 사서 입고 있다”고 말했다.
거의 매일 레깅스를 입는 다는 이수연 젝시믹스 대표. [사진 젝시믹스]

거의 매일 레깅스를 입는 다는 이수연 젝시믹스 대표. [사진 젝시믹스]

론칭 3년 만에 지난해 4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안다르’의 신애련 대표. [사진 신애련 인스타그램]

론칭 3년 만에 지난해 4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안다르’의 신애련 대표. [사진 신애련 인스타그램]

지난해 3월 론칭한 국내 레깅스 브랜드 '템플'은 3000여 명의 레깅스 착용자를 조사해 사람들이 어떤 레깅스 기능을 원하는지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제품을 개발해 인기를 끌었다. 이곳의 송연주 대표는 “레깅스의 복부 접힘과 흘러내림이 착용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한 가지 레깅스 제품을 만드는데 16차례 디자인·제작 수정 작업을 거쳤다”고 말했다.  
지난해 론칭한 국내 브랜드 ‘템플’의 보정 레깅스 ‘스파이럴’을 입은 모델. 템플은 3000여 명에 달하는 레깅스 착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신제품 레깅스에 적용했다. [사진 템플]

지난해 론칭한 국내 브랜드 ‘템플’의 보정 레깅스 ‘스파이럴’을 입은 모델. 템플은 3000여 명에 달하는 레깅스 착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신제품 레깅스에 적용했다. [사진 템플]

 
운동하는 여성이 멋있다 
레깅스 경험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편안함’이다. 홍보회사에 근무하는 노사랑씨는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레깅스를 입기 시작했는데 옷을 안 입은 것처럼 너무 편해서 운동이 끝나도 벗고 싶지가 않다”며 “쇼핑을 갈 때나 모임에도 입고 나가는 등 일상복으로 애용하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레깅스는 몸매가 좋은 사람만 소화할 수 있는 옷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엔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그대로의 내 모습을 좋아하고 받아들이자는 ‘자기 몸 긍정주의’가 확산되면서 레깅스 시장 성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있는 뮬라웨어의 플래그십 스토어 ‘카페뮬라’에서 열린 요가 클래스의 모습이다. [사진 뮬라웨어]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있는 뮬라웨어의 플래그십 스토어 ‘카페뮬라’에서 열린 요가 클래스의 모습이다. [사진 뮬라웨어]

한편으로는 ‘멋진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운동으로 여가활동을 즐기는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레깅스 패션에까지 투영된 것이다. 또 해외 유명 셀럽들이 레깅스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면서 '레깅스=세련된 패션 아이템'이라는 트렌드도 확산됐다.  

지난 2017년 미국의 레깅스 수입량(2억 장)은 처음으로 청바지 수입량을 넘어섰다. 시장조사회사 NPD그룹의 마셜 코헨 애널리스트는 “레깅스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국내 상황도 비슷한 분위기다. 트렌드 분석가 이정민 대표(트렌드랩506)는 “편하다는 착용상의 장점에 패셔너블한 이미지까지 갖춘 레깅스는 더욱 속도를 내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들 것”이라며 “향후 몇 년간은 레깅스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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