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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비율 40% 논쟁, 정해진 기준은 없다

중앙일보 2019.05.23 00:07 종합 5면 지면보기
뜨거워지는 재정 확대 논란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오른쪽)은 21일 회의에서 재정확대 논란에 대해 ’‘재정 파괴’ 운운하는 것은 정치선동“이라고 말했다. 왼쪽은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오른쪽)은 21일 회의에서 재정확대 논란에 대해 ’‘재정 파괴’ 운운하는 것은 정치선동“이라고 말했다. 왼쪽은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적정한 나랏빚 기준에 대한 논쟁이 심화하고 있다. 발단은 지난 16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 건전성 관리의 마지노선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를 제시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대한 근거를 따져 묻는 모습이 연출됐다. 경기부양을 위해 나라 곳간을 풀자는 청와대와 오랫동안 곳간을 지켜온 재정 당국 간의 ‘신경전’은 정치권ㆍ학계로 번져 ‘나랏빚 논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8.2%였다. 이에 자유한국당에선 “40% 선이 깨지면 국가가 부도난다”(정미경 최고위원)며 위기론을 제기하고 있다. ‘채무비율 40%는 재정 위기의 한계선’이라는 주장에 더불어민주당은 아무 근거가 없는 기준이라고 반박한다. 민주당 내 경제전문가로 분류되는 최운열 의원은 “어디를 찾아봐도 국가채무비율 40%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근거나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조정식 정책위의장도 “야당의 재정 파괴 주장은 정치 선동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채무비율

국가채무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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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국에는 정부가 준수해야 할 적정 나랏빚 기준은 없다. 홍 부총리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를 거론한 것은 국민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 저항선’을 고려한 것이란 해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홍 부총리 제시 기준은) 10여년 동안 국가채무비율이 30%대로 유지되다 앞자리 숫자가 ‘4’로 바뀌게 됐을 때의 국민 정서적 거부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정 당국이 법ㆍ규정을 통해 마련한 기준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재정학자들도 국가채무비율 적정성에 관한 연구가 부족해 적정 나랏빚 비율을 계산해 내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인구 추계부터 경기 변동, 산업 구조 변화, 남북통일 비용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워낙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정 당국에서도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에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다만 ‘마지노선 40%’란 기준이 나오게 된 배경은 있다. 유럽연합(EU) 구성의 토대가 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에서 유럽공동체의 가입 조건으로 제시한 기준 국가채무비율이 60%이었다.
 
 
여당 “일본 224%” 야당 “국가부도 우려”
 
장기 재정 전망

장기 재정 전망

국내에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긴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기재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5%로 정하는 재정건전화법을 발의했다. 지금도 계류 중이지만, 재정 전문가들은 이 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재정준칙으로 정한 기준 ‘60%’ 보다 더 엄격한 데다, 이 수치를 법에다 명시하게 되면 경제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는 재정 전략을 짜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적정한 국가채무비율은 국민 합의를 통해 도출해 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전문가들도 경기 침체 국면에서 재정을 풀어 경기 부양을 하거나, 중장기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투자’를 위해 빚을 낼 필요가 있다면 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난해 출산율 ‘0명’대(0.98명)에 진입한 저출산ㆍ고령화 추세에서 노인 부양을 위한 연금 고갈 문제,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통일 비용 조달 문제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채무비율을 무작정 늘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공적자금 합산한 전체 빚 규모 파악해야
 
OECD 주요국

OECD 주요국

현재 민주당은 “채무비율이 조금 더 늘어난다고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다”(정성호 기획재정위원장)며 신속한 추가경정예산(6조7000억원 규모)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 정부부채(D2, OECD 기준,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 포함)는 2017년 기준으로 42.5%다. 미국(105.1%)ㆍ영국(117%)ㆍ일본(224.2%)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보다 양호하기 때문에 나랏빚을 더 낼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야권에선 “미국은 스스로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 국가여서 부채비율 자체가 큰 의미가 없고, 일본은 국채 대부분을 국내에서 사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돈을 찍어 재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과 한국을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실제 기축통화국이 아닌 스위스(42.9%)ㆍ노르웨이(42.8%)ㆍ호주(42.6%) 등은 한국과 비슷한 국가채무비율 수준을 보인다.
 
특히 한국은 4대강ㆍ지역균형발전ㆍ탈원전사업 등 공기업을 통한 국책사업 비중이 크고, 취약 산업 지원 등에 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이 동원되고 있지만, 이를 모두 더한 전체 국가채무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는 금융 공기업을 제외한 비금융 공기업 채무까지만 합산한 국가채무 통계만 발표하고 있다. 일각에서 우리나라 채무비율은 공기업 부채가 빠져있기 때문에 일종의 착시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500조 원대의 공기업 부채 규모만 포함해도 국가채무 비율은 GDP의 60% 선을 뛰어넘는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적자를 국가가 보전해야 하는 금융 공기업 채무 등 ‘숨은 빚’까지 모두 합산한 정확한 국가채무 규모와 장기 재정전망 등을 바탕으로 닥친 경제 현안을 해결하면서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 기준을 국민 합의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현일훈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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