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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공무원이 등 돌리면 나라 못 움직여”

중앙일보 2019.05.23 00:06 종합 24면 지면보기
세종시, 공무원 복지부동 현장 가보니
지난 16일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입주해 있는 정부세종청사 6동 앞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근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정책이 잘 되면 아무 말 안하다가 못 되면 관료 탓한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지난 16일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입주해 있는 정부세종청사 6동 앞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근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정책이 잘 되면 아무 말 안하다가 못 되면 관료 탓한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대통령 정책실장이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른 채 “국토부 관료들이 이상한 짓을 한다”고 ‘관료 탓’ 뒷담화한 게 지난 10일이다. 며칠 뒤 KTX를 타고 오송역에 내려 세종시로 향했다. 가는 길은 뿌옜다.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잔뜩 내려와 오리(五里)의 분별이 난망했다. 거대한 인공 도시에 듬성듬성 들어선 정부 부처 건물들도 흐릿했다. 갑자기 얻어맞은 국토교통부와 세월호 사건으로 초토화된 해양수산부, 채용비리 수사로 어수선한 환경부 등 건물 속 공무원들의 어정쩡한 현실과 닮아 있었다.
 

세종시에선 “차관·국장도 코드”
국장·과장 회의 따로, 지시 따로
나쁜 정책은 없고 과속이 늘 문제

“마이크 밀담은 공무원에 대한 이번 정권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 준 거 아닌가요. 잘 되면 청와대 공, 못 되면 공무원 탓인 거죠. 여기 분위기요? 푹 가라앉아있죠. 500조에 육박하는 전 부처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만 해도 신바람이 안 난대요. 경제정책은 청와대와 장관이 결정해 지시를 내리면 따르느라 밑에서 위로 아이디어를 내기 힘든 구조예요. 이 정부에선 과거 정부보다 예산과 재정 확대를 우선시하다 보니 이 분야 직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죠.”
 
사무실에서 만나는 게 부담스러운지 청사 1층 휴게실로 내려온 경제 부처 중간 간부가 16일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공무원으로 살아가기 어떤가.
“예전엔 기재부가 권한이 세고 승진도 빨랐으나 이젠 일은 많고 승진은 가장 느린 부처가 됐다. 최근 잘 나가던 부장, 과장이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외교부 북미과장은 SK로 갔고. 인재는 떠나고 신규 사무관들은 오기를 기피한다. 공무원들의 눈치보기는 더 심해졌다. 결정적 이유는 장관을 넘어서 차관, 실·국장 인사까지 청와대와 국회가 관여해서다. 공무원의 꿈은 일단 ‘차관’인데, 실현이 어려워졌다. 정치권에 휘둘리고 청와대 눈치 보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찾으니 일을 시킬 수가 없다.”
 
복지부동의 신풍속도가 있다면.
“업무 회의를 국장급 따로, 과장급 따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 같이 모여서는 안 한다. 카톡 대화방 사용은 줄고 요샌 간부 텔레그램방에서 업무 지시를 한다. 그런 대화방도 과장들끼리, 국장들끼리 단절돼 있다. 동료끼리는 안전하다는 믿음이 깨졌다. 신재민 사무관 폭로 사건 이후로 장·차관이 주재하는 회의에 사무관 배석 관행이 사라졌다. 장·차관→국장→과장→사무관에게 1대1로 하방 지시한다. 업무지시가 전화로 내려오면 녹음도 한다. 정책 보고서를 만들 때 ‘과수’(과장 수정), ‘국수’(국장 수정)라고 표기한 파일을 만들어 보관한다. 정책이 A안에서 B안으로 바뀐 과정도 기록한다. 나중의 책임 추궁에 대비해 기록을 명확히 해둔다는 것이다. 회의 자료를 주면서 준비한 안건 전체를 주지 않고 각자 해당되는 부분만 잘라서 제공하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부처 간 업무 협조도 예전 같지 않다. 자료 공유 요청하는 이도, 받는 이도 껄끄러워한다. 본연의 업무에 쓸 역량이 엉뚱한 데서 낭비된다.”
 
정부 정책 추진의 올바른 방향은.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했지만 민생에 직접 영향을 끼친 건 아니었다. 현 정부에선 더 강력한 정책들이 쏟아졌다. 국민 각자에게 영향이 가는 것들이다. 나쁜 정책은 없다. 항상 속도가 문제다. 속도를 낼 때 공무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국가 재정과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공무원이 잘 안다. 세월호같이 큰 배가 넘어진 건 갑자기 운전대를 꺾어서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향하는 정부 정책의 전환 속도가 완만해야 하는 이유다. 5년 단임제의 폐해일 수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 출신의 권석창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이전 청와대의 지시나 정책 방향에 따라 일을 한 관료들을 형사처벌함으로써 공직 사회 복지부동을 초래한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권 전 의원은 공무원 복지부동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엔 전 정부 국정과제 실천에 앞장섰더라도 뇌물 등의 비리가 없다면 감사를 통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선 블랙리스트 작성, 국정교과서 개편 등 전 정권의 정책을 수행한 사람들이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 혐의로 감옥에 갔다. 그 시기에 해외 파견이나 교육받으러 간 공무원은 무탈하다. 이러다 보니 서로 국정과제 담당 요직에 가지 않으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현 정부 관심사업인 도시재생사업추진단에 가기를 희망하는 공무원이 없어 인사난을 겪었다고 한다.”
 
다른 부처들에 비해 통일부와 복지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한 복지부 공무원은 “우리는 괜찮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 북한 상대하는 통일부와 사회적 약자에게 혜택 주는 복지부가 제일 신나서 일했던 것과 같다. 적폐 논란도 거의 없다. 복지부는 치매 환자 및 아동 복지, 건강보험 확대 정책을 통해 더 가진 사람 것 받아 골고루 나눠 주는 일을 주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 7조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 보장을 규정한다. 그러나 허울뿐 아닌가. 공무원(公務員)들은 여전히 고달프고 갈팡질팡한다. ‘공무원(空無員)’이 돼가고 있다는 자조 섞인 한탄도 나온다. 영혼 없다는 소리까지는 모르나 머리마저 비어서야 되겠나.
 
“국민의 정부 때 공무원을 개혁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세웠기에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하고 규제를 혁파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당시 그들을 직접 만나보니 봉급 인상보다 공정한 인사를 더 원하더라. 공무원이 등을 돌리면 나라를 못 움직인다. 국가 전체의 위기가 와도 감지하지 못한다.”
 
김성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이사장의 공무원관(觀)을 곱씹어 본다.
 
제주도선 무사안일 행정…위미리 해안가서 1조원대 펀드사와 펜션간 분쟁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제주 위미리 해안가에 건축중인 단독주택 모습. [조강수 기자]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제주 위미리 해안가에 건축중인 단독주택 모습. [조강수 기자]

지난 20일 바람이 세차게 부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해안가. 국내 헤지펀드 1위 업체인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2015년 건축허가를 받은 연면적 1562㎡ 규모의 연수원과 연면적 399㎡ 단독주택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제주 올레길 5코스와 인접해 있어 경관이 수려한 데다 완공되면 앞쪽 ‘지귀도’ 조망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건물 신축 과정에서 시청에 내야 하는 설계도면 일부를 누락하고 단독주택 공사를 위해 3m 높이로 지반을 높이는 성토작업을 벌인 것이다. 특히 성토작업으로 지상 2층 주택이 사실상 3층이 됐다. 이로 인해 옆집 펜션의 조망권을 직접 침해하면서 1년 가까이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무허가 형질변경(개발행위)이다. 건축법상 50cm 이상 성토를 할 경우 개발행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토목공사 도면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청이 원상복구 시정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담당 공무원들은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건축 허가를 받은 후 2년 이내에 착공하지 않아 건축 허가 취소 대상인데 봐 줬고, 그 취소 기간 동안 건축 심의, 증축 설계 변경 등을 허용해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이날 서귀포시청에서 만난 오모 사무관은 “형질 변경 도면과 서류는 내지 않았으나 부지 종·횡 단면 등이 표기된 건축허가 도면으로 갈음해서 허가했다”며 “펜션 측이 조망권의 피해를 보는 건 맞지만 건축 허가를 취소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주민 600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 7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는 이단비(48·여)씨는 “제주도 전체가 난개발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게 된 데는 서귀포시청과 제주도청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일 처리도 한몫했을 것”이라며 “통큰 재량 행정의 근거가 뭔지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서귀포시에선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조성 사업이 대법원 판결로 무효가 된 일도 있었다. 콘도와 상가를 분양해 관광수익을 얻을 목적으로 한 휴양형주거단지를 주민복지시설인 ‘유원지(遊園地)’에 인가한 것은 명백한 하자이므로 토지수용 및 인허가를 취소한다는 거였다. 토지를 강제 수용당한 토지주들의 개별 반환 소송이 18건에, 대상 부지만 48만㎡에 달한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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