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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벤처 대표, 이공계 학위받아 벤처기업 인증"...대만 규제 방벽 가장 낮아

중앙일보 2019.05.22 16:31
메디젠휴먼케어의 유전자 분석 시스템. 하루 최대 5000건까지 분석할 수 있지만 검사 항목을 제한하는 규제에 막혀 의뢰 건수는 많지 않다. 최정동 기자

메디젠휴먼케어의 유전자 분석 시스템. 하루 최대 5000건까지 분석할 수 있지만 검사 항목을 제한하는 규제에 막혀 의뢰 건수는 많지 않다. 최정동 기자

# 바이오 기기 스타트업 A사는 스마트폰 앱으로 부정맥을 측정해 의사에게 전달하는 진단기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선 제품 출시도 못 한 채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국내에선 생체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기능이 원격의료에 해당해 국내법상 불법이라서다. 유럽 심장학회 학술대회에서 1위로 뽑힐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A사는 규제에 막혀 국내에선 상품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대한상의, 산업 분야 규제사례 발표
"포지티브, 소극행정, 기득권 저항"
"3가지가 규제 공화국 낳았다" 지적

 
# 스타트업 B사는 소비자 셀카를 분석해 맞춤형 안경테를 추천하는 인공지능(AI) 서비스를 개발했다. 하지만 얼굴 이미지 분석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할 수 있다는 판단에 국내 출시를 포기했다. 대신 중국 기업과 손잡고 중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2일 발표한 국내 산업 분야 규제 사례집에 포함된 스타트업 사연이다. 대한상의는 "한국의 산업 분야 진입규제 문턱이 중국은 물론 이집트보다 높다"고 밝혔다. 사례집에 인용된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 분야 진입규제 환경은 조사대상 54개국 중 38위를 기록했다. 미국과 일본보다 낮았다. 1위는 대만이었다. 한국의 진입규제 환경은 2017년 49위에서 지난해 38위로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대한상의는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국내 산업규제 장벽이 높은 원인으로 포지티브 규제, 기득권 저항, 소극행정 3가지를 꼽았다. 포지티브 규제는 법에 규정된 것만 허용한다. 반면 네거티브 규제는 현행법상 불법이 아닌 모든 걸 합법으로 본다. 포지티브 규제 대표 사례로는 소비자가 업체에 유전자 검사를 직접 의뢰하는 DTC(Direct To Consumer) 검사를 꼽았다. 정부는 2016년 관련 고시를 개정해 혈당 등 12가지 항목에 대한 DTC 검사를 허가했다. 올해는 규제샌스박스를 통해 기존 12가지 항목에 13가지 항목을 새롭게 추가했지만 경쟁국보다 검사 가능 항목이 여전히 부족하다. 중국과 영국은 DTC 검사 항목을 따로 제한하지 않는다.
 
상의

상의

 
김정욱 KDI 규제센터장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DTC 검사항목 확대했음에도 경쟁국에 비해선 상당히 부족하다”며 “건별 심사를 통해 샌드박스에서 승인받은 사업만 가능하도록 한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론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구태언 변호사는 “중국 등 경쟁국이 규제하지 않는 분야에선 필수 규제를 제외하고 모든 규제에 대해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득권 저항으로 규제 장벽이 굳건한 사례로는 영유아 건강관리 서비스 앱을 개발하는 C사를 꼽았다. C사는 체온과 발열・구토・반점 등 증상을 입력하면 의사가 대처법을 알려주는 앱을 개발했지만 국내에서 불법인 원격 의료에 해당해 국내 사업은 접었다. 이 밖에도 최근 관심이 집중된 차량공유서비스와 도심 숙박공유도 기득권 저항으로 규제 문턱을 낮추지 못하는 대표 사례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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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행정 사례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인사 노무 업체 D사는 IT 기반 인사 노무 업체로 업종을 전환해 벤처기업 인증을 신청했지만, 대표가 이공계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탈락하기도 했다. IT 벤처기업 대표가 이공계 관련 학위를 취득해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고 대한상의는 소개했다. 정영석 대한상의 규제혁신팀장은 "규제를 푸는 공무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 보신 행정 문화를 개혁해야 규제 문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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