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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려 '선박 검사관' 된 입양 여성 41년 만에 가족 만났다

중앙일보 2019.05.22 14:18
41년 전 프랑스로 입양된 제시카 브룬(47)씨가 22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경찰청 1층에서 고모(78)와 만나고 있다. 제시카가 찾던 친부는 2009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41년 전 프랑스로 입양된 제시카 브룬(47)씨가 22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경찰청 1층에서 고모(78)와 만나고 있다. 제시카가 찾던 친부는 2009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하늘이 만들어준, 이 세상에서 최고로 감동 깊은 자리다. 참 반갑다. 고마워."
 

프랑스 국적 제시카 브룬, 고모 부부 상봉
올 2월 "친부 찾아 달라" 전북경찰청 찾아
47년간 그리워하던 친부는 2009년 사망
아기 때 친모 잃어…영아원 생활 후 입양
'조선 강국' 모국 그리워 선박 회사 취업

22일 오전 10시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경찰청 1층 로비에 꽃다발을 든 노부부가 나타났다. 41년 전 프랑스에 입양된 여성 제시카 브룬(47·한국명 홍금영)씨의 고모 박모(78)씨와 고모부 이모(82)씨다.
 
제시카에게 꽃다발을 안긴 고모부는 "(양부모가) 잘 키워주셔서 고맙고, 이 자리를 만들어 준 (김형민 전북경찰청 민원)실장님과 정부에 감사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제시카는 고모 부부와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였다. 한국말이 서툰 그는 통역사를 통해 "감사하다(독일어 danke·당케)"고 했다.
 
이번 만남은 현재 독일에 사는 제시카가 지난 2월 "47년 전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 달라"며 전북경찰청에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 신청서를 낸 지 석 달 만에 이뤄졌다. 독일 선박설비 전문회사(DNV GL)에서 선박 검사관으로 일하는 제시카는 다음 달부터 오는 8월까지 석 달간 경남 거제도에 있는 한국 사무소 파견 근무를 앞두고 먼저 입국했다. '한국에서 가족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다.  
 
경찰은 제시카 어머니가 전주 예수병원에서 사망했다는 단서를 토대로 병원 측과 관할 주민자치센터의 도움으로 전주에 고모 1명이 산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확인 결과 제시카 아버지는 지난 2009년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78년 여섯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된 제시카 브룬(47)씨가 22일 전북경찰청 1층에서 만난 고모부(82)와 포옹하고 있다. 왼쪽은 고모 박모(78)씨로 제시카가 찾던 친부는 2009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1]

1978년 여섯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된 제시카 브룬(47)씨가 22일 전북경찰청 1층에서 만난 고모부(82)와 포옹하고 있다. 왼쪽은 고모 박모(78)씨로 제시카가 찾던 친부는 2009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1]

제시카가 입양되기 전 작성된 아동개별조사서에 따르면 제시카는 1972년 2월 18일 예수병원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한 달 만에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아버지가 양육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병원 측은 제시카를 익산 기독삼애원(옛 기독영아원)에 보냈다. 영아원에서 여섯 살까지 생활한 제시카는 1978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제시카의 한국 이름 성(홍씨)은 어머니 성(姓)으로 확인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양부모는 친딸같이 제시카를 금지옥엽으로 키웠다. 열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스페인으로 이사한 제시카는 자신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안 뒤 모국과 아버지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해양공학을 전공하고, 선박 회사에 취업한 것도 '조선 강국'으로 알려진 한국에 오기 위해서였다. 제시카는 '독일 첫 여성 선박 검사관'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를 찾겠다는 간절함이 직업까지 이어진 셈이다.
 
제시카는 기독삼애원에서 어렵게 확인한 아동개별조사서와 영아원 수용의뢰서를 토대로 2005년부터 3년간 아버지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기록이 거의 안 남은 데다 제시카 본인도 입양 전 기억이 희미해서다. 그래도 두 손을 모아 기도한 후 사각 식탁에 있던 밥과 국을 먹거나 하얀 수녀복을 입은 여성과 헤어져 슬퍼하던 모습 등을 기억해냈다.  
 
제시카는 2013년 4월 교통사고로 양부모를 모두 잃은 뒤 본격적으로 친부 찾기에 나섰다. 주함부르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고, 지난 2월 자신이 태어난 전주를 관할하는 전북경찰청까지 방문하게 됐다. 당시 제시카는 "아버지를 만난다면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버지가 왜 나를 버렸는지 묻지 않겠다. 양부모를 잃었는데 아버지마저 잃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제시카는 평생 애타게 찾던 친부는 이미 세상을 떠나 못 만났지만, 이날 피붙이인 고모를 만난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고모는 처음 본 중년의 조카 손을 꼭 잡은 채 "이건 기적"이라고 했다. 제시카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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