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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서 봉준호 웃었다…틸다 스윈튼도 9분간 기립박수

중앙일보 2019.05.22 12:00
21일 밤 10시경(프랑스 현지시간) 제72회 칸영화제 '기생충' 갈라 레드카펫에 선 봉준호 감독이 활짝 웃었다. [EPA=연합]

21일 밤 10시경(프랑스 현지시간) 제72회 칸영화제 '기생충' 갈라 레드카펫에 선 봉준호 감독이 활짝 웃었다. [EPA=연합]

 
131분 상영 내내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상영 후엔 기립박수가 9분이나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1일(프랑스 현지시간) 제7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뜨거운 호응 속에 베일을 벗었다. 경쟁부문 21편 중 열다섯 번째 상영. 먼저 공개된 해외 거장들의 작품에 별다른 화제작이 없었던 가운데 ‘기생충’의 반응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틸다 스윈튼도 9분간 기립박수
'기생충' 갈라 상영에 딸(왼쪽)과 함께 참석한 배우 틸다 스윈튼. 봉준호 감독과 전작 '설국열차' '옥자'를 함께한 그는 올해 개막작 주연을 맡아 칸영화제를 찾았다. [AP=연합]

'기생충' 갈라 상영에 딸(왼쪽)과 함께 참석한 배우 틸다 스윈튼. 봉준호 감독과 전작 '설국열차' '옥자'를 함께한 그는 올해 개막작 주연을 맡아 칸영화제를 찾았다. [AP=연합]

자정 넘은 늦은 시간 끝났음에도 2000여석 뤼미에르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떠날 줄 모르고 환호했다. 이들 중엔 ‘설국열차’ ‘옥자’를 봉 감독과 함께한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도 있었다. “땡큐, 땡큐 포 커밍. 밤이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갑시다.”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하는 봉 감독의 목소리가 벅차올랐다. 함께한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기생충’은 올해 초청작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다.” 칸영화제 크리스티앙 쥰 부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이날 영화를 본 폴란드 배급 관계자는 “칸영화제에서 이렇게 많이 웃고 긴장했던 영화도 오랜만”이라고, 브라질의 한 배급 담당자는 “봉준호의 모든 트레이드마크를 가지면서도 매우 놀랍고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고 감탄했다.  
 
'기생충' 상영 전 레드카펫에 선 (왼쪽부터) 봉준호 감독과 배우 최우식, 이선균, 조여정, 장혜진, 박소담, 이정은, 송강호가 군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EPA=연합]

'기생충' 상영 전 레드카펫에 선 (왼쪽부터) 봉준호 감독과 배우 최우식, 이선균, 조여정, 장혜진, 박소담, 이정은, 송강호가 군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EPA=연합]

대담하게 웃긴, 봉준호표 블랙코미디 
영화는 범죄 드라마면서 블랙코미디고, 서글픈 휴먼 드라마이자, 공포 스릴러이기도 했다. 한 장르를 꼽자면 ‘봉준호 영화’라 불러야 할까. SF‧판타지 등 장르물을 비틀어 시대의 맥을 짚어내는 게 그의 장기. 이번엔 그런 재미와 의미가 황금비율을 이뤘다.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와 IT그룹 CEO인 박사장(이선균)네, 정반대 두 가족이 뒤얽히는 기상천외한 희비극엔 빈부격차가 빚어낸 부조리한 사회상이 대담하게 소용돌이친다.  
 
장르물 즐기듯 관객 폭소한 장면…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명문대생을 사칭해 박사장네 고액과외 면접을 보러 가는 과정은 케이퍼 무비 뺨치도록 경쾌하고 치밀하다. 온가족이 손발이 척척 맞는 44분 지점에선 관객들이 장르물을 즐기듯 환호를 내질렀을 정도. 각본을 겸한 봉 감독이 풍자감각을 끌어올린 대사부터 착착 붙는다. 이를 탁구공 튀기듯 주고받는 배우들의 호흡도 빼어나다.  
 
‘살인의 추억’(2003)부터 감독과 네 번째 함께한 송강호는 이번에도 표정 하나로 주제를 다 담아낸다. ‘괴물’의 못난 아빠 강두와 같고도 다르다. ‘옥자’에 이어 만난 최우식은 요령 만점 캐릭터와 섬세한 감정선을 고루 선보인다. 박 사장의 “심플한” 아내 연교 역의 조여정도 여러 TV 드라마에서 사연 많은 부잣집 사모님 역을 변주해온 경력이 빛을 발했다. ‘살인의 추억’, ‘옥자’에선 슈퍼돼지 옥자 목소리 등으로 봉 감독과 함께해온 배우 이정은도 눈에 띈다. 이번에 박 사장네 가사도우미 역을 맡아 남다른 에너지로 중반부를 장악한다.  
 
칸영화제 현지에서 공개된 '기생충' 포스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칸영화제 현지에서 공개된 '기생충' 포스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또 다른 주인공, 반지하 VS 대저택
이번 영화에서 공간은 또 다른 주인공. SF영화 ‘설국열차’에선 얼어붙은 세계를 달리는 기차칸을 계급사회에 빗댔고, 재난영화 ‘괴물’에선 미군의 독극물로 오염된 한강 다리 밑을 들여다본 봉 감독. 이번엔 우리 사회의 더 깊고 어둔 밑바닥을 작정하고 파고들었다.  
 
남이 버린 쓰레기봉투, 취객의 오줌발이 내다보이는 기택네 쾨쾨한 반지하 집과 유명 건축가가 지은 박 사장네 대저택은 믿기지 않을 만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동시에 어느 동네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현실적이다. 흙수저는 흙수저대로, 금수저는 금수저대로 살기를 강요하는 듯한 이런 극과 극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은 죄가 되어 무겁게, 무겁게 쌓인다. 
 
기택네 반지하 집 창문은 세상의 낮은 곳을 비추는 스크린처럼 비치기도 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택네 반지하 집 창문은 세상의 낮은 곳을 비추는 스크린처럼 비치기도 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재미와 의미 황금비율, 수상 가능성…
“예상을 뛰어넘으려 최선을 다했다”는 봉 감독의 말처럼 영화의 매 순간이 허를 찌른다. 2년 전 넷플릭스 영화 ‘옥자’에 이어 두 번째 경쟁부문을 찾은 봉 감독의 수상 가능성도 점쳐볼 만하다.  
 
한편, 이날 상영 전 레드카펫 행사엔 “송강호♡사진 같이 찍어요” “기생충 표 찾‘읍’니다” 등 한국말 푯말을 든 외국인 관객이 자주 보였다. ‘옥자’의 반전 캐릭터로 해외에도 얼굴을 알린 최우식에겐 사인 요청이 많았다.  

 
이번 영화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이미경 CJ 그룹 부회장이 이례적으로 이날 상영을 찾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자사 영화를 위해 칸영화제를 지원 방문한 건 2009년 경쟁부문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이어 10년 만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과 아내 연교가 저택에서 잠든 모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과 아내 연교가 저택에서 잠든 모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프랑스 칸=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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