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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구하겠다"던 봉화 엽총 난사범, 항소심서도 '무기징역'

중앙일보 2019.05.22 11:26
지난해 8월 21일 오전 9시 15분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발생한 엽총 난사 사고로 공무원 등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가 난 소천면사무소. [뉴스1]

지난해 8월 21일 오전 9시 15분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발생한 엽총 난사 사고로 공무원 등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가 난 소천면사무소. [뉴스1]

지난해 8월 경북 봉화군에서 엽총을 난사해 공무원 2명을 살해하고 이웃 1명을 다치게 한 7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봉화군서 이웃과 물 문제로 다투던 김모(78)씨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다"며 범행 계획해
총기 난사로 공무원 2명 숨지고 이웃 1명 다쳐
대구고법, 22일 오전 항소심에서 무기징역 선고

대구고법 형사2부(이재희 부장판사)는 22일 살인과 살인미수, 살인예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모(78)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앞서 1심에서 반성하기는커녕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더 많은 공무원을 죽이지 못해 안타깝다’고 해 공분을 샀으나 항소심에서 뒤늦게나마 유족에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며“사형보다는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유족에게 속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봉화군 소천면에 사는 김씨는 지난해 8월 21일 오전 윗집에 사는 이웃을 찾아가 어깨를 향해 총을 쐈다. 그가 “아로니아 농사를 짓고 있는데 밭에 까마귀를 쫓는 데 쓰겠다”며 경찰서에서 반출한 엽총이었다. 이어 김씨는 자신의 차를 타고 3.8㎞ 떨어진 소천면 파출소로 향했다. 파출소에 경찰이 없자, 김씨는 인근 소천면사무소로 갔고 들어가자마자 총을 난사했다. 당시 민원 담당 손모(47) 계장과 이모(38) 주무관이 총을 맞고 숨졌다. 이웃 임모(48)씨는 골절상을 입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엽총을 난사한 김모(78)씨. [뉴스1]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엽총을 난사한 김모(78)씨. [뉴스1]

 
지난해 1월 17일 열린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김씨는 “이웃 간의 물 문제가 있었는데 경찰도, 공무원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 30명을 죽이려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산 중턱에 사는 김씨는 수압이 낮아 집에 물이 잘 나오지 않자 아랫마을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도 공사를 했다. 갈등은 2016년 임씨가 김씨의 윗집으로 이사 오면서 생겼다. 임씨는 “물이 부족하다”며 전기 펌프를 설치해 김씨 수도관에서 물을 끌어다 썼고 김씨 집의 수압이 낮아지자 두 사람 간에 다툼이 잦아졌다. 2017년 4월 말다툼을 하던 과정에서 임씨가 김씨의 머리를 수차례 때리면서 욕을 하기도 했다. 김씨는 국민참여재판에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도와주지 않아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범행을 계획했다”고 실토했다. 
 
지난해 1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검찰은 “이웃 간의 사소한 다툼으로 범행을 계획해 2명의 목숨을 빼앗았다”며 김씨에 사형을 구형했다. 11시간 동안의 재판 후 배심원단 7명 중 4명이 무기징역을, 3명이 사형 의견을 냈다. 대구지법은 “범행이 치밀하고 황당한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지만, 사형이라는 천벌을 받아야 마땅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며 배심원단의 과반수 의견을 따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1월 28일 봉화 엽총 난사 사건의 유족이 글을 올렸다. [사진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1월 28일 봉화 엽총 난사 사건의 유족이 글을 올렸다. [사진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1심 후 유가족은 지난 1월 28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 판에 글을 올려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날 항소심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가족은 글에서 “고인이 된 두 공무원은 김씨와 대면한 적도 없고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었던 사람인데 공무원의 신분으로 면사무소에 앉아있단 이유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며 “자식을 먼저보낸 부모님은 아직도 밤잠을 설치시고 남은 아내와 아들은 아빠가 그리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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