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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 “우리는 문화를 판다”…일본 빔즈의 44년 성공기

중앙일보 2019.05.22 05:00 강남통신 4면 지면보기
“라이프스타일을 판다.” 일본의 유명 서점 ‘츠타야’의 창립자 마스다 무네아키의 말이다. 츠타야는 1983년 책과 함께 리빙·가전·예술품 등을 파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이들보다 앞서 76년에 이미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한 일본 기업이 있었다. 패션을 기반으로 한 일본 1세대 라이프스타일 셀렉트숍 ‘빔즈’(Beams)다. 창업 후 44년 간 의류부터 전자제품·아트·서적·음악·라디오 방송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뭘까. 지난 18일 라이프스타일 컨퍼런스 ‘포비 위크’의 연사로 서기 위해 방한한 빔즈의 엔도 케이시 부사장을 만났다.  
 

라이프스타일 셀렉트숍 '빔즈' 엔도 부사장 인터뷰

지난 18일 방한한 일본의 패션 편집숍 빔즈(BEAMS)의 엔도 케이시 부사장이 빔즈가 발행한 책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컬처 숍'을 지향하는 빔즈는 의류, 잡화 외에도 책 출판, 라디오 방송 등 다양한 문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18일 방한한 일본의 패션 편집숍 빔즈(BEAMS)의 엔도 케이시 부사장이 빔즈가 발행한 책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컬처 숍'을 지향하는 빔즈는 의류, 잡화 외에도 책 출판, 라디오 방송 등 다양한 문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주말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카페 '포비 베이직'에 나타난 엔도 케이시 부사장은 가벼운 베이지색 점퍼 차림에 터키석이 박힌 인디언 스타일 팔찌·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2000여 명의 직원을 이끄는 68세 기업가의 모습은 자신만의 스타일리시한 멋을 풍겼다.
빔즈는 ‘아메리칸 라이프 숍’을 컨셉트로 시작한 라이프스타일 편집 매장이다. 당시 광고회사에 다니던 스물다섯 살의 젊은 시타라 요 대표에 의해 설립됐다. 도쿄 하라주쿠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지금은 일본 전역에 160여 개, 홍콩·대만 등 해외에 10개의 매장이 있다. 엔도 부사장은 빔즈를 설립한 시타라 요 대표와 여섯 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로, 일본항공(JAL)에 재직 중 요 대표의 제안으로 빔즈에 합류했다.  
 
‘아메리칸 라이프 숍’을 컨셉트로 한 이유가 있나.
“당시 일본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남은 미국의 흔적이 많았다. 점령 정책의 하나로 미국 드라마와 디즈니 만화 등을 방송에서 수없이 틀었고, 젊은층은 자연스럽게 ‘미국화’됐다. 당시 20대였던 우리 역시 미국 젊은이들의 삶을 동경했다. 그때만 해도 유럽은 너무 멀었다.”
 
도쿄에 있는 빔즈 재팬의 모습. [사진 빔즈 홈페이지]

도쿄에 있는 빔즈 재팬의 모습. [사진 빔즈 홈페이지]

그래픽 티셔츠 전문 브랜드인 '빔즈T' 매장에선 티셔츠들이 레일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래픽 티셔츠 전문 브랜드인 '빔즈T' 매장에선 티셔츠들이 레일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빔즈에서 처음 팔았던 물건을 기억하나.
“시타라와 나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의 방을 그대로 옮겨 오는 걸 목표로 잡았다. 옷은 이익률이 높고 취급이 편했지만 ‘다른 사람은 안 하는 걸 해보자’는 생각이 커서 가구와 잡화까지 다루기로 했다. 둘이 함께 미국 보스톤·뉴욕의 대학가로 날아가 학생들이 다니는 상점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가져다 팔았다.”
 
반응은 어땠나.
“성공적이었다. 소매가로 물건을 사다가 되파는 수준이라 가격이 굉장히 비쌌는데도 기다리는 고객이 많았다. 곧바로 우리와 비슷한 컨셉트의 ‘유나이티드 애로우즈’가 생겼고, 서로 경쟁하면서 일본 패션 리테일 업계를 이끌어 왔다.”
 
                 빔즈T의 그래픽 티셔츠.

빔즈T의 그래픽 티셔츠.

위기가 온 적은 없었나.  
“90년대 경제 위기 때도 이상하게 우린 잘 됐다. 굳이 위기를 꼽자면 유나이티드 애로우즈가 생겼을 때 정도랄까. 창업 초기였는데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의 의뢰를 받은 헤드헌팅 회사에서 우리 직원들을 대거 빼내가 한동안 힘들었다.”
 
빔즈는 3%대의 낮은 이직율로도 유명하다. 인사관리 비결이 궁금하다.  
“정확하게 우리의 이직률은 3.7%고, 업계 평균은 20%다. 핵심은 ‘그만두지 않을 직원을 뽑는 것’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진심이다. 우린 면접에서 외모나 학벌을 보지 않는다. 대신 패션을 또 빔즈를 얼마나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그런 사람만이 고객에게 물건을 제대로 설명하고 안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말을 잘하거나 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어떤 직원은 자기 가슴을 손으로 치며 마음을 표현하고, 어떤 직원은 벅차오르는 감정에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과정을 통해 뽑은 직원들은 실제로 장기 근속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의 집을 찍어 만든 책 '빔즈 앳 홈'(beams at home). 일본에서만 32만부가 팔렸다. [사진 빔즈 홈페이지]

직원들의 집을 찍어 만든 책 '빔즈 앳 홈'(beams at home). 일본에서만 32만부가 팔렸다. [사진 빔즈 홈페이지]

글로도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해보자"는 취지에서 2010년 시작한 빔즈의 문화잡지 '인 더 시티'(IN THE CITY).

글로도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해보자"는 취지에서 2010년 시작한 빔즈의 문화잡지 '인 더 시티'(IN THE CITY).

음반을 다루는 '빔즈 레코드'.

음반을 다루는 '빔즈 레코드'.

빔즈는 제품 판매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일을 시도한다. 음반 제작·판매 매장 ‘빔즈 레코드’, 젊은 작가들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전시·판매할 수 있는 ‘컬처 아트 바이빔즈’,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티셔츠로 만든 ‘빔즈T’ 등이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책을 만드는 일이다. 온·오프매장에서 책을 팔기도 하지만, 출판사와 협업해 직접 단행본을 발행한다. 직원들의 생활을 찍은 사진집 『빔즈 앳 홈(Beams at Home)』이 대표적이다. 5년 전 발행한 이책은 일본에서만 32만부가 팔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근엔 평일 저녁에 ‘도쿄 컬처 스토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패션·잡화 제품 판매 외에도 하는 일이 많은데, 모두 수익이 나나.  
“사실 패션 파트 외엔 돈이 하나도 안 남는다. 『빔즈 앳 홈』은 많이 팔리긴 했지만, 우리보다 출판사가 돈을 더 벌었다. 하하.”
 
그런데도 계속 다양한 문화사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빔즈는 제품을 통해 문화를 창출하는 컬처숍을 지향한다. 제품 하나를 팔더라도 물질적 가치 이상의 만족감을 제공하고 스토리를 전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컨대 『빔즈 앳 홈』은 빔즈 직원들이 근무 외 시간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준다. 이 자체만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는 우리의 철학이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책에 등장하는 걸 직원들이 기뻐하니 일석이조다. 여러 아티스트를 지원하며 교류하는 일은 지금 당장 경제적 이익은 없어도 브랜드 자산을 키우는 일이다. 이들과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입장에서 재미있는 시도를 한 발 앞서서 하는 것. 이게 우리의 성공 전략이다.”
 
회사를 지탱하는 캐쉬카우는 뭔가. 
“주로 온라인 스토어와 아울렛의 의류 판매가 크다.”
 
세계적으로 라이프스타일 분야가 조명받고 있지만, 성공하기 힘든 업태라는 평가도 있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감도가 좋은 사람들을 먼저 공략하라. 소비자층 구조상 피라미드의 맨 위에 있는 이들을 감동시키면 트렌드가 된다.”
 
최근 빔즈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과거 인기를 누렸던 브랜드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예컨대 인기를 잃은 스포츠 브랜드나 공중목욕탕 같은 곳이다. 도쿄 공중목욕탕 550곳에 우유비누, 현수막, 패브릭 등을 빔즈 버전으로 만들어 공급했다. 젊은이들에게 공중목욕탕의 이미지를 새롭게 입히는 작업이었다.”
 
한국 진출 계획은.
"사실 몇 년 전 한 한국기업에서 제안이 왔었는데 생각이 많이 다르더라. 한국 시장은 럭셔리 브랜드에 치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셀렉트 숍'을 이해하고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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