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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북한 식량 지원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일보 2019.05.22 00:1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북한 식량 지원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결정하긴 쉽지 않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원칙과 대북 제재라는 상황이 충돌하는 첨예한 지점에 이 문제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비핵화에 나서도록 하려면 제재가 경제위기를 심화시켜 심각한 정치적 압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 소득과 소비가 현저히 감소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만약 식량난이 취약계층, 특히 영유아, 태아와 임산부, 수유여성의 생명이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초래한다면 이는 생존권이라는 가장 중요한 인권의 보호에 반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식량 지원이란 운을 띄웠다. 일각에선 이를 통해 비핵화 동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희망 사항이다. 오히려 잘못된 지원으로 제재 효과가 반감되면 비핵화 가능성은 더 멀어질 수 있다. 북한은 식량과 석유가 있으면 자력갱생 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식량은 지원받고 석유는 밀수하면 올해를 넘어 내년과 그 이후에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특히 제재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에게 배급을 주고 무연탄을 더 생산하게 만든다면 화력 발전량은 증가하고 산업 가동률도 올라갈 것이라고 판단할 법하다.
 
북한은 식량 원조를 받음으로써 식량 위기와 외화난이라는 큰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 대북 제재는 무역 급감으로 시작되지만 소비, 특히 식량 및 외화 충격까지 가야 완성될 수 있다. 식량을 지원 받으면 식량난뿐 아니라 곡물 수입에 외화를 쓸 필요가 없어 외화 충격까지 줄일 수 있다. 제재의 세 가지 핵심 효과인 산업·소비·외화에 미치는 모든 충격이 동시에 감소하는 셈이다. 그러면 비핵화 협상은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리는 북한 아이와 임산부는 우리 가슴 속엔 우리 자녀고 내 가족이다. 북한 정권이 이들을 버린다고 우리마저 등을 돌릴 순 없다. 한반도의 가장 약자인 이들을 우리가 보듬지 않으면 제재 너머 남북 통합과 통일을 내다보는 비전과 떳떳함을 가질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인도적 지원은 하면서도 제재에 미치는 효과는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먼저 식량난이 어느 정도인지 가능한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WFP·FAO는 작년 북한 식량 생산이 전년도에 비해 12% 감소한 417만t(정곡 기준)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작년의 작황을 실사한 것이 아니라 올해 방북해 주로 북한의 공식 통계를 이용해 추정한 결과다. 북한 가구도 조사했지만 표본의 대표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보고서에서도 밝혔다. 한편 우리 농촌진흥청은 작년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전년 대비 3.4% 하락한 455만t으로 추정했다. 필자는 실제 생산량을 이 두 추정치 사이인 440만t 정도로 추측한다. WFP·FAO 추정치에는 경사지 생산량이 누락된 점, 반면 농진청 추정치에는 제재로 인한 연료 부족의 영향 등이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
 
440만t 가량의 식량 생산은 2000년대 중반 수준이며 고난의 행군 때보다 90만t 많은 양이다. 즉 지금 북한이 대규모 기근 상태에 있다는 진단은 이 수치와 부합하지 않는다. 유엔아동기금(UNICEF) 보고서도 1990년대 말에 비해 2000년대 이후 북한 아동의 영양 상태가 크게 개선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440만t은 식량 사정이 비교적 양호했던 2012~17년의 연평균 생산량보다 30만t 적다. 이는 북한 주민의 만성적 영양결핍이 악화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취약계층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외화난으로 식량 밀수가 줄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필자는 30만t의 식량 중 10만t 이내는 조건 없이 무상 지원하지만 나머지는 북한의 수입 증가분만큼 매칭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10만t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취약계층 80만 명의 1년 식량이 될 수 있다. 먼저 영유아·임산부·수유여성 중심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10만t 이내의 식량을 국제기구를 통해 무상 지원한다. 그러나 국제기구를 통한다 해도 분배의 투명성이 완전히 보장되기는 어려우므로 이 이상의 조건 없는 대규모 식량 지원은 제재 효과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나머지 20만t은 북한이 통상적인 식량 수입량(30만t) 이상으로 수입을 확정하면 그 증가분에 비례하여 지원한다. 이는 북한 당국이 자구노력을 기울이도록 책임성을 부과하는 조치다. 또 식량을 추가 수입하는 만큼 북한은 외화를 더 사용해야 하므로 전체적인 제재 실효성은 그리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제재로 인해 북한 동포가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나 남한뿐 아니라 북한 주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도 지금은 제재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정부는 냉철해져야 한다. 동시에 남한은 북한의 취약계층을 마음에 품어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정부의 현명한 방안을 기대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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