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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시설에까지 몰래 버린 쓰레기..."불법 브로커 수시로 찾아와"

중앙일보 2019.05.21 18:00
경기 파주시에 불법으로 투기된 쓰레기. 4년째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경기 파주시에 불법으로 투기된 쓰레기. 4년째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지난 14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의 한 야산. 국방시설본부의 경고문 푯말이 눈에 띄었다. 
 
“폐기물 투기·매립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철망으로 된 출입문을 통해 안쪽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쓰레기가 보였다.

 
경기도 연천군의 군사시설 안에 불법 투기 폐기물이 방치돼 있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연천군의 군사시설 안에 불법 투기 폐기물이 방치돼 있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특별사법경찰단(특사경)에 따르면 현재 이곳에는 100t가량의 폐기물이 쌓여 있다. 특사경은 지난 3월부터 전담팀을 꾸려 연천뿐 아니라 도 전역의 불법방치 폐기물을 수사 중이다. 
 
현장조사 결과, 상품 포장지와 비닐·노끈·가전제품 등 온갖 쓰레기가 한데 뒤섞여 있는 게 확인됐다. 국방부 소유의 토지에 누군가 몰래 쓰레기를 갖다 버린 것이다. 특사경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쓰레기가 투기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폐기물 배출업소를 수사 중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연천군 한 도로변에 불법 투기 폐기물이 방치돼 있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연천군 한 도로변에 불법 투기 폐기물이 방치돼 있다. 김민욱 기자

 
철제 펜스 가려놓고 4년째 쓰레기 방치  
인근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도 ‘쓰레기산’이 4년째 방치돼 있다. 폐플라스틱 등 2만t의 쓰레기를 몰래 버려놓고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3m가 넘는 철제 펜스로 외부를 감쌌다. 
 
쓰레기산 바로 옆에 사는 김영자(79) 씨는 “어느 날 새벽에 트럭들이 바쁘게 들락거리면서 며칠 동안 뭔가를 실어나르더니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며 “악취 때문에 공무원들한테 치워달라고 요구했는데도 몇 년째 그대로 쌓여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진행된 환경부 전수조사 결과, 이렇게 전국에 쌓인 불법 쓰레기가 120만t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방치폐기물이 84만t으로 가장 많고, 불법으로 투기한 폐기물이 33만t에 이른다. 필리핀 등 해외에 불법 수출한 쓰레기도 3만t이 넘는다.
  
쌓여만 가는 쓰레기…처리비 상승이 원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경기도 가평군 상면에서는 3000여㎥ 분량의 혼합폐기물이 추가로 확인됐다. 투기로 의심되는 쓰레기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에도 200t이 넘는 음식물 폐기물이 방치돼 있었다. 이렇게 아직 확인조차 되지 않은 폐기물이 전국 곳곳에 더 많이 쌓여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전국에 방치된 쓰레기가 200만t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불법 쓰레기가 계속 쌓이는 건 폐기물 처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활용되지 못한 생활쓰레기는 SRF(고형연료)로 만들어 에너지를 회수하거나 소각 처리된다. 하지만, SRF 시장이 문재인 정부 들어 얼어붙은 데다가 소각 비용까지 치솟으면서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
 
인천의 한 재활용 선별 업체의 경우 아파트에서 분리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매일 40t씩 들어온다. 이 중 70%가 선별 과정을 거쳐 재활용되고 30% 정도가 잔재물로 남는다. 잔재물은 재활용 업체에서 직접 돈을 내고 처리해야 한다.
 
지난해만 해도 t당 5만원 정도였던 잔재물 처리 비용이 현재는 10만원 안팎으로 2배로 올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활용업체 사이에서는 추가비용을 줄이기 위해 불법방치 또는 투기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재활용업체에 쌓여 있는 잔재폐기물. 천권필 기자.

경기도의 한 재활용업체에 쌓여 있는 잔재폐기물. 천권필 기자.

경기도의 또 다른 재활용 선별장에도 처리되지 못한 잔재폐기물이 1000t 넘게 쌓여 있었다. 업체 대표인 A씨는 “브로커들이 싼 가격에 쓰레기를 가져가 처리해주겠다며 수시로 찾아온다”며 “처리비용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오르다 보니 이런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수백억 들여 치우겠다지만…“밑 빠진 독에 물 붓기”
19일 경북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 한 비닐폐기물 처리업체 야적장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사진 영천소방서 제공]

19일 경북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 한 비닐폐기물 처리업체 야적장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사진 영천소방서 제공]

이런 ‘쓰레기산’은 악취와 침출수 문제뿐 아니라 상당수가 화재 위험 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지난 19일에도 경북 영천시 한 비닐폐기물 처리업체 적치장에 쌓여 있는 비닐폐기물에서 불이 나 1000t가량이 탄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는 추경 예산을 투입해 올해 안에 전국적으로 방치된 쓰레기를 모두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청한 수도권의 한 재활용처리업체 관계자는 “환경부에서 전국의 불법 방치 폐기물을 집중적으로 치우겠다고 하는데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폐기물 처리 과정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잔재물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잔재물은 곧 불법 방치 폐기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천·인천=김민욱·심석용 기자,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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