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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아파 걷기도 힘든 60대가 수술 안하겠다는 이유

중앙일보 2019.05.21 07:00
[더,오래] 유재욱의 심야병원(45)
다리가 몹시 불편해 보이는 60대 환자분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짧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통스러운듯했다. [사진 photoAC]

다리가 몹시 불편해 보이는 60대 환자분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짧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통스러운듯했다. [사진 photoAC]

 
60대 아주머니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불과 몇 미터 밖에 안되지만, 그 정도를 걷는 것도 몹시 힘겨워 보였다. 통증 환자를 20년 이상 진료하다 보니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어느 정도 상태인지 판단이 선다. 핸드백에서 주섬주섬 CD를 여러 개 꺼내는 것으로 봐서 데 얼핏 봐도 서너 군데 이상 병원을 들렀다 오신 것 같다.
 
“선생님 이 CD들을 잘 좀 봐주세요.”
“가지고 오신 MRI를 보니 척추관 협착증하고, 전방전위증이 심하시네요. 이 정도면 걷는 것이 몹시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괜찮으세요?”
“아니요, 조금만 걸어도 종아리가 터질 것 같고, 엉치가 내려앉는 것 같아서 걷는 데 애를 먹어요. 어느 정도 걸으면 한동안 앉았다가 가야 해요.”
 
“얼마나 걸으면 주저앉게 되나요?”
“심할 때는 10m도 못 걸을 때도 있어요.”
“증상도 심하고, MRI 상에도 상태가 안 좋으면 수술을 고려하셔야 하는 상황으로 생각되는데…. 혹시 다른 병원도 가보셨나요?”
 
“동네 병원에서 수술하라고 해서, 큰 병원 다섯 군데 정도 가봤어요.”
“큰 병원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다들 수술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한 군데서는 일단 약 먹으면서 지내보자고 해서…. 수술 안 하고 어떻게 해보려고요.“
 
“다섯 군데 중에 네 곳에서 수술하자고 했으면, 수술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래도 수술은 하기 싫어요. 제가 식당을 하는데 내가 없으면 식당은 어떻게 해요. 그리고 동네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허리는 수술하면 큰일 난다고 해서…….”
 
나는 재활의학과 의사다. 허리를 수술하지 않고 고치는 의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연히 수술에 대해서 반대 입장이다. 의사들을 10명 세워놓는다면 아마 수술하지 않는 쪽 성향의 8~9번째쯤 되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자연치유를 믿고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약 처방도 하지 않는 편이다. 나의 이런 편향된 기준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내가 봐도 수술이 불가피한 환자들을 보게 된다. 비수술적으로는 치료해도 효과를 기대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술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의사는 환자를 설득해서 수술을 받도록 권유할지, 아니면 환자가 원하는 대로 비수술적인 치료를 시도해볼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더 고민이다. 의사들은 저마다 말이 다르고, 주위에서는 수술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고, '어느 병원이 용하다, 어디가 좋다' 하는 말에 귀가 얇아질 수밖에 없다.
 
나는 수술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의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이 꼭 필요한 환자가 있고, 이들에게는 수술을 권한다. [사진 photoAC]

나는 수술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의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이 꼭 필요한 환자가 있고, 이들에게는 수술을 권한다. [사진 photoAC]

 
1. 수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남녀노소 똑같다. 수술하라고 하는 100명의 의사의 결정보다, 수술 안 하고 고칠 수 있다고 하는 1명의 의사의 말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위의 환자분도 다섯 군데 병원 중 네 군데에서 수술하라고 한 말보다도 한 군데 병원에서 두고 보자고 한 말에 흔들렸다. 이성적으로라면 4:1로, 생각해볼 일도 아닌데 말이다. 본인의 질병 앞에서 이성적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2. 누구나 사정은 있다
“수술해야 합니다.”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수술할 사정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없으면 식당이 안 돌아가는데요”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데요” “이번 가을에 딸 시집 보낼 때까지는 수술할 수 없는데요” “지금은 형편이 안 되니 형편이 좀 나아지면...” 누구나 사정은 있다.
 
어떤 것이 우선순위인가가 중요하다. 수술도 늦추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 있고, 어느 정도 두고 보다가 해도 되는 경우도 있다. 늦추지 말아야 하는 상황은 수술 시기를 놓치면 병이 악화하거나 장애가 남는 경우다.
 
3. 수술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허리디스크 환자 중에서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5% 미만이다. 하지만 수술을 꼭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비 증상이다. 아프거나 저리거나 당기는 증상은 불편하지만, 길게 보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육이 마비가 오면 병이 나은 후에도 후유증이 장기간 지속하고 심지어 평생 보행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근육이 약해지면 지체 없이 수술을 결정한다.
 
위의 경우처럼 뼈가 자라나서 신경을 누르는 경우에는 비수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척추가 불안정해서 걷기만 해도 흔들릴 정도가 되면 근력 강화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술적인 고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4. “만약 선생님 어머니라면 지금 이 문제를 어떻게 결정하시겠어요?”
아주 많이 듣는 질문이다. 이렇게 질문하면 현명한 판단이 나올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의학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환자에게 가장 유리한 판단을 할 것인지? 아니면 환자가 어머니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서 판단할 것인지? 어떤 판단이 옳은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의사들도 가족이기 때문에 올 수 있는 판단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진료는 다른 의사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외과 의사 두 명의 견해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진료하는 의사의 수가 셋을 넘어가면 오히려 의사결정이 어려워진다. [사진 pixabay]

외과 의사 두 명의 견해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진료하는 의사의 수가 셋을 넘어가면 오히려 의사결정이 어려워진다. [사진 pixabay]

 
5. 외과 의사의 의견은 두 명한테 들어보자. 하지만 네 명은 많다
수술을 결정하기 전에는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진 외과 의사 두 명의 견해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 이것을 세컨드 오피니언(second opinion)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견을 듣는 의사가 두 명이 아니고 세 명, 네 명이 되면 결정은 미궁으로 빠지고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진다. 경험상 여러 곳의 병원에 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서 결정하고자 하는 경우, 의사들에 대한 신뢰만 무너지고 좋은 치료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6. 항상 동네 사람이 수술하면 큰일 난다고 이야기한다.
‘좋은 것은 10명한테 소문내고 나쁜 것은 100명한테 소문낸다’는 말이 있다. 특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증상이 없어지면 불편하지 않으니까 치료받는 사실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만약 안 좋아지면 계속 불편하니까 안 좋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래서 수술에 대해서는 안 좋은 이야기가 좋아진 이야기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떠돌아다닌다.
 
그러면 왜 동네 사람들은 왜 허리 수술하면 더 안 좋다고 이야기할까? 수술 결과에 대한 의사와 환자의 공감대가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환자가 수술하면 가지고 있던 문제가 원상복귀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경우도 수술하면 못 걷는 것을 걷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뛰어다니면서 축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술하기 전에 수술 후 어느 정도까지 회복이 될지에 대해서 의사와 환자가 충분히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4. 희망고문도 좋지는 않다
위 환자의 경우 내 판단으로는 반드시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수술적인 치료는 이미 많이 해봤고 더 시도해도 효과는 미미할 것이고, 그대로 놔뒀다가는 나중에 수술할 때 더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환자 입장에서는 야속하게 들리더라도, 환자가 잡고 있는 한 가닥 희망을 냉정하게 잘라주는 것도 의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10명 의사 중 수술을 안 하는 쪽에서 9번째인데 제가 봐도 이 경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환자 중에는 “너무 냉정하세요”하고 눈물을 보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되지도 않는 상황을 질질 끌면서 희망고문하는 것도 환자의 질병에도 안 좋고, 시간이나 경제적으로도 손해일 수 있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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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욱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필진

[유재욱의 심야병원] 작은 간판이 달린 아담한 병원이 있다. 간판이 너무 작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정도다. 이 병원의 진료는 오후 7시가 되면 모두 끝나지만, 닥터 유의 진료는 이때부터 새롭게 시작된다. 모두가 퇴근한 텅 빈 병원에 홀로 남아 첼로를 켜면서, 오늘 만났던 환자들이 한 명 한 명 떠올린다. ‘내가 과연 그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한 것일까?’ ‘혹시 더 나은 치료법은 없었을까?’ 바둑을 복기하듯 환자에게 했던 진료를 하나하나 복기해 나간다. 셜록 홈스가 미제사건 해결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영감을 얻었던 것처럼, 닥터 유의 심야병원은 첼로 연주와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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