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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국회에 집권당이 없다

중앙일보 2019.05.21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노무현 전 대통령 식으로 말하면 재미 좀 봤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민생투쟁 대장정’ 말이다. 지난 7일 부산에서 시작해 보름만이다. 정치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보수세력의 구심점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항 장수로, 차기 대권 주자로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원외인 그로서는 장외투쟁 만한 수단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종시처럼 장외투쟁도 소득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연장선인 광주 방문은 계산이 더 복잡하다.
 
그가 광주를 가는 거야 당연하다. 시빗거리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진정성이다. 예상대로 항의 시위를 만났다. 덕분에 정치적으로는 보수와 영남지역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효과를 거뒀다. 반대 세력은 황 대표가 이 효과를 노렸다고 주장한다. 방문 직후 그는 페이스북에 “진정성을 갖고 광주를 찾고, 광주 시민들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진위는 앞으로의 행보에 달렸다.
 
반대 진영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따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는 광주 유세에서 돌멩이 세례를 받았다. 경호원들이 투명 방탄유리 방패를 사방에 둘러치고, 전투를 치르듯 빠져나갔다. 영남표가 결집했다. 김대중 후보의 대구 유세에서도, 김영삼 후보의 호남 유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양 김 씨 지지자들이라고 발표했다. 정보기관원들이 군중 속에서 부추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야당 후보를 영호남으로 쪼개면 필승이라고 계산했다. 실제로 대선은 그렇게 됐다. 그러나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이어지고, 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감옥에 갔다. 지역주의는 빠르게 지지세력을 결집할 수 있지만 확장할 때는 발목을 잡는다.
 
그 당시 대선은 전쟁터였다. 그래도 그때는 정치가 있었다. 정치지도자들은 대결 구도를 이용하면서도 국민보다 몇 수를 더 내다보고 움직였다. 전투 중에도 대화하고, 타협할 때를 알았다. 그런다고 구태(舊態)가 아니다.
 
장외투쟁은 통쾌하다. 지지자는 속이 후련하다. 그러나 거기 계속 머무를 순 없다. 황 대표는 “더 이상 국회에서의 투쟁만으로는 문재인 정권의 좌파독재를 막아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국회다. 민생 현장의 하소연을 풀어줄 수단도 국회에 있다.
 
국회가 구실을 못하는 건 집권당 책임이 더 크다. 지금 국회에는 야당만 있다. 집권당이 없다. 누구도 국정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야당은 정부 잘못만 지적한다. 여당은 과거 정부 탓을 한다. 어떻게든 법안을 처리하고, 예산을 통과시켜 일을 해보려는 노력이 없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도 여당은 책임감이 있었다. 예산을 통과시키려고 야당을 설득했다. 대통령이 내놓은 법안을 수정하고, 거둬들이기도 했다. 법적 권한과 관계없이 야당이 강력히 반대하는 장관 인사는 재고하고, 뒤집기도 했다. 안 되는 건 야당 책임이라고 떠넘기지 않았다. 국정이 굴러가든 말든 방관하지도 않았다.
 
국회에 정치인은 안 보이고, 법률가만 있다. 일일이 시시비비만 따진다. 정치는 재판이 아니다. 그런데도 내 눈에 맞지 않으면 용납을 안 한다. 여당은 ‘적폐 청산’, 야당은 ‘독재 타도’를 외친다. 사람의 눈이 다 같을 수 없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상상력도 빈곤하다. 정치를 산술처럼 하려 한다. 투입과 산출이 똑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것을 잘했다고 쌀을 보내는 건 아니지 않나. 작은 손해는 볼 수 있어야 큰 타협이 가능하다. 정치는 국민보다 반 발짝이라도 앞서가야 하는데 쫓아만 다닌다.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려 한다. 여론조사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으면 국회도, 대통령도 할 일이 없다.
 
정치는 이차방정식이 아니다. 과거 문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국정을 세워놓은 채 매달릴 수는 없다. 원로들의 당부에는 그런 충정이 담겨 있다. 나라 사이에도 과거사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모든 협력을 다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대통령이 이제라도 야당 대표들을 만나려는 것은 다행이다. 전쟁을 치른 북한 지도자와도 웃으며 만나는 게 정치다. 굳이 ‘독재자’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하물며 아무리 야당을 ‘적폐’, ‘독재자의 후예’라고 규정해도 만나는 형식으로 신경전을 벌일 일은 아니다. 수시로 만나야 풀린다. 당장 추경을 통과시키고, 민생법안을 처리할 책임은 집권당에 있다. 야당에 명분을 주고 달래야 한다. 야당이야 따지는 것 말고 무얼 할 수 있나. 야당은 생각이 달라도 국민 지지로 만들어진 동반자다. 궤멸할 적군이 아니다.
 
여야 지도자의 발언을 들으면 답답해진다. 총선이 내년 4월이라 갈 길이 험하다. 그렇다고 국정이 멈출 수는 없다. 불가능한 것을 푸는 게 정치다. 내 몫만 키우는 게 아니라 함께 만족할 길을 찾는 것이 정치다. 어젯밤 원내대표들의 호프 회동이 국회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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