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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도 사회 구성원, 병원 치료만이 능사 아니다

중앙일보 2019.05.20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20)
정신질환의 원인과 치료가 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신경학적 치료 약물이 개발되면서, 치료 효과도 좋아졌다. [사진 pixabay]

정신질환의 원인과 치료가 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신경학적 치료 약물이 개발되면서, 치료 효과도 좋아졌다. [사진 pixabay]

 
정신질환의 패러다임은 "마음"의 질병에서 "머리(뇌)"의 질병으로 바뀌어 왔다. 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 물질에 작용하는 약물이 개발되었다. 치료 성적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정신질환은 마치 폐에 염증이 생기듯 머리에 염증이 생긴 상태에 불과하다. 폐렴 환자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집에서 물수건만 해주며 낫기를 바랄 수 있다. 실제로 과거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병을 이겨내 왔다.
 
물론 그러다 사망하는 환자들도 많았지만.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통해 훨씬 쉽게 병을 고친다.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아픈 환자에게 약을 쓰지 않고 자연치유를 기대해볼 수 있다. 조금 많은 시간이 들지만, 상담을 통한 방법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적절한 약물치료가 동반되면, 정신질환 또한 치료 성적이 좋아진다.
 
현재 의학의 모든 분야는 단순히 병원 퇴원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빠른 재활 치료를 시작하여,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의학 어느 분야도 예외는 없다. 심지어 몸에 심폐 보조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상태에서도, 침대에서 일어나 걸어 다닐 것을 주문한다. 그래야 환자가 하루라도 빨리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의 목표는 단순히 질병만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생활을 고려하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환자가 질병을 잘 조절하며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약물치료를 받으며 조기에 빠르게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중요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정상 생활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사회적 지지 체계가 약하다. 기업에 직원을 위한 심리상담실이 마련되는 추세이지만, 주변인과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중앙포토]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사회적 지지 체계가 약하다. 기업에 직원을 위한 심리상담실이 마련되는 추세이지만, 주변인과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중앙포토]

 
특히 우리나라는 더욱더 그렇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심하며 사회적 지지가 열악하다. 가족들마저 쉬쉬하고 환자를 숨기기 바쁘다. 폐가 아닌 머리에 조그만 질병이 생겼을 뿐인데, 색안경을 끼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정신질환은 '신체'보다 '관계'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위의 도움이 꼭 필요하며, 제도적인 지원 또한 반드시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부분에 여전히 무관심하다.
 
우리나라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환자를 돌보는 ‘의료환경’은 가야 할 길이 멀다. 비단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에서도 현대 의료의 방향을 충실히 쫓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빠르게 사회에 복귀하기보다 병원에 입원하여 휴식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병원 방문일수나 입원 기간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 기왕이면 입원해서 치료받기를 원하고, 그럼으로써 가족과 사회의 책무를 병원으로 전가한다.
 
의사들 또한 그런 환경에 적응하여, 더 많은 환자를 입원시킴으로써 수익을 보존한다. 환자를 모아 싼값에 적당한 의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 문제를 한 방에 쉽게 처리하려는 게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처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퇴원 후에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는 환자가 많다. 회전문 효과라고 한다. 우리는 아직 정신질환자들의 생활을 적절히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환자들은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홀로서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그중 일부는 사고를 일으키고, 그것은 사회의 시선을 얼어붙게 한다. 악순환이다. 적절한 치료를 받고 사회적 지지를 받았다면,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이를 위해 병원 치료만이 능사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혹자는 사회적 지원만 늘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자신의 시선에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한 가지 방법으로 단숨에 이룰 수 없다. 속 시원한 해결책 따위는 없다. 그저 사회 전체가 여러 방면에서 함께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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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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