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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미·중 무역전쟁 위기에서 한국이 살아 남으려면

중앙일보 2019.05.20 00:36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미·중이 타협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는 무산됐다. 지난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한 관세 폭탄 카드를 꺼내 들었을 때 시장은 “트럼프 쇼”라고 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 폭탄은 더욱 커졌고 전선은 확대됐다. 무역에서 시작된 전선은 투자로 확산하고 인력 교류, 과학기술, 군사·안보로까지 퍼지고 있다.
 
무역전쟁이 여기까지 온 것에는 중국의 오판도 한몫했다. 중국은 거칠게 몰아세우면서 손쉬운 타협을 원하는 트럼프 뒤에 있는 미국의 거대한 반중국 정서를 읽지 못했다. 중국과의 불공정 무역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은 트럼프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중국은 과소평가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편파적 심판, 무용지물이 된 경기 규칙, 이 모두를 싹 바꾸려는 미국에 “숫자는 협상할 수 있지만 시스템은 타협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태도는 협상의 달인임을 자부하는 트럼프와 미국을 자극하고 강경하게 만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중국을 길들일 기회는 없다는 미국의 결기와, 미국의 요구를 중국 발전 모델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 위협으로 간주하는 중국의 팽팽한 갈등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미·중간 극적 합의가 도출돼도 그것은 ‘휴전’에 불과하다.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면서 협력을 모색했던 시대와 결별하고, 대립과 견제의 패권 경쟁 시대로 돌입한 전환기적 사건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중 무역전쟁을 세계 경제의 정상 운행을 저해하는 최고의 암초로 지목했다. 무역전쟁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심각하게 낮추고, 그 영향은 세계 무역 위축, 투자 감소, 경제 심리 위축, 경영 리스크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경제 부진에 시달리는 한국엔 직격탄이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 미국을 세계의 시장, 한국·일본·독일을 중간재 공급지로 하는 3개의 축이 긴밀히 연결된 글로벌 가치사슬은 쪼개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한국 무역의 성공 방정식을 써 내려온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겨울로 접어든 한국 경제에 그나마 온기의 불을 지피게 했던 한국 수출이 뿌리내리던 지각이 흔들리고 파괴되는 지각 변동이다.
 
지각 변동은 위기이지만, 위기는 위협과 기회의 두 얼굴로 다가온다.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만 여기던 한국 기업에 미·중 무역전쟁은 공산당이 전진하고 민간 분야는 후퇴하는 중국 경제체제의 실체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된다면, 현재의 고통은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쓴 약이 될 것이다.  
 
더는 세계 경제 질서를 지탱하는 부담을 혼자 떠안지 않겠다는 미국 신고립주의와 미국의 경제 이익과 충돌하면 동맹도 흔들 수 있다는 미국 일방주의의 민낯이 드러났음에도 경제와 외교·안보를 연결하는 국가 전략을 세우지 못하면 지각 변동의 난세를 통과하기 어렵다.
 
한국은 3차 산업혁명 시대 후발 주자로 시작해 선두 따라잡기 추격전으로 20세기 말 세계적 IT 강국으로 우뚝 섰으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길을 잃고 있다.  
 
IT 강국의 고속도로엔 차량이 뜸하다. 진입 차량 색깔 규제, 주행시간 규제, 운전자 옷 색깔 규제, 색안경 규제 등 과잉 규제 때문이다. 운전자들은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로 다니고, 새 차량을 실험하려는 운전자들은 규제 없는 중국의 IT 고속도로에 몰려든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일 줄 알았던 한국은 다시 추격전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으려면 비전과 전략·담대함이 요구된다. 한국은 세 가지를 갖고 있는가.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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