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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생사람 잡는 ‘최저임금 1만원’ 쓰레기통에 처박아라

중앙일보 2019.05.20 00:24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때문에 한국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단 2년 만에 30% 가까이 올려 8350원이 되자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줄줄이 나자빠졌고, 저임금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거꾸로 이들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경제 활력은 땅에 떨어졌다.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문재인 대통령도 ‘2020년 1만원’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일본 2020년 1000엔 과감히 포기
1엔 놓고 밤새 격론 … 힘들면 내려
한국 2년 실질 인상률 50% 육박
감당 못할 무리수 → 경제 아비규환

일본은 우리보다 경제 체질이 훨씬 튼튼하다. 하지만 올해 전국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3.1%다. 이게 사상 최고치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000엔으로 올리려고 했는데 경제성장률이 목표에 미달하자 포기했다. 호황인 미국도 연방정부 최저임금을 10년째 7.25달러로 동결했다. 최종적으로는 지역별로 결정하는데 올해치는 20개 주와 40개 시가 올렸다. 두 나라는 이렇게 최저임금을 극도로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은 정반대다.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2년 만에 거의 50%가 올라 올해 최저임금은 1만30원(한국경제연구원 발표)이다. 임금 지불능력이 취약한 자영업자의 비율이 25.4%로 일본 10.4%, 미국 6.3%보다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무데뽀로 일을 저질렀다. 1엔을 더 올릴지 말지를 놓고 밤을 새워가면서 격론을 벌이는 일본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미션단장은 “최저임금이 2년간 30%가량 인상되면 어떤 경제라도 감당하지 못한다”며 “인상률을 노동생산성 내에서 묶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도 “한국의 고용부진은 최저임금 인상 탓이 크다”고 했다.
 
경제학도는 ‘경제(經濟·Economy)’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비롯됐다는 사실부터 배운다. 수학과 통계학을 활용하는 세련된 ‘사회과학의 여왕’으로 알았는데 동학(東學)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의 구세제민(救世濟民) 정신과 통하는 절실함이 담긴 것이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 이라는 믿음으로 낡은 조선을 개혁하려던  비장한 실천의 도(道)이자 종교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경제 관료와 학자는 추상적 이념의 성채에 스스로를 가둔 세력에 맞서 구체적인 현실의 세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실용을 목숨걸고 설파해야 마땅하다.
 
경세제민의 경전을 공부한 사람들은 “아비규환의 상태”(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가 오기 전까지 할 일이 있었다. 전리품이 필요한 정치그룹이 난폭한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도록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노력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액수가 적용된다. 다른 나라들은 경제형편과 사용자의 지불 능력, 근로조건, 생산성을 감안해 다양한 방식으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 일본은 지역별· 업종별로 다르게 적용한다. 형편이 안 좋으면 내리기도 한다. 미국·중국은 지역별로 차등 적용한다. 영국·프랑스·독일·호주·네덜란드는 연령별로 달리 적용한다.
 
세상의 어떤 제도도 완전무결하지 않다. 지역별로 차등하면 도농 간 임금격차로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몰려간다. 업종별로 차등을 두면 저임금 업종 근로자들의 임금이 더 깎일 수 있다. 정답은 없다. 시행착오를 통해 부작용이 적은 제도를 만들어 가면 된다. 우리도 지금 시작해야 한다.
 
요즘 경제성장만큼 임금이 올랐는지를 놓고 극히 일부의 보수·진보 경제학자들이 실증분석 자료를 내놓으면서 논쟁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다루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왜 이제야 나섰을까. 한국의 주류 경제학 교수들은 미국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 밤낮없이 미국 경제를 연구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현실에 눈감는 이들의 조국은 어디인가. 영혼없는 관료들이 권력의 깃발이 펄럭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밀어붙일 때 일류 경제학자들의 엄정한 검증과 비판이 부재(不在)한 이유다.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빵을 하나 사서 나눠 먹자고 하자 “반씩 먹으면 둘 다 배고프니 네가 다 먹어라. 나는 배고픈 거 잘 참는다”고 했다. 따뜻한 인간미와 실질을 중시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그가 비난을 무릅쓰고 상호존중의 정치를 위해 보수야당에 권력을 넘겨주는 대연정을 제안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상 일은 내 생각대로, 쾌도난마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다행히 문 대통령도 “이제 보수·진보 같은 낡은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오히려 상식·실용 이런 선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최저임금의 저주는 대통령이 결단해야 풀린다. 말도 안 되는 ‘2020년 1만원’ 공약은 당장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한다. 최악의 현실을 만들어내고도 “한국경제는 성공으로 가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참모들은 입을 꾹 다물어야 한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살아 숨쉬는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아비규환에 빠진 국민을 구하겠다는 경세제민의 각오를 해야 한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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