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포항 ‘특별법 보상’에 최대 15조…여야는 서로 딴소리

중앙일보 2019.05.20 00:03 종합 24면 지면보기
‘지열발전소가 지진 촉발’ 판정 그 후 두 달
지난달 2일 포항 지진 특별법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강덕 포항시장(가운데)이 그곳에서 삭발했다. [뉴시스]

지난달 2일 포항 지진 특별법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강덕 포항시장(가운데)이 그곳에서 삭발했다. [뉴시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경북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규모 5.4. 서울을 포함한 전국이 흔들렸다. 2016년 경주 지진(규모 5.6)에 이어 국내 관측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강도의 지진이었지만 진원지가 얕아 피해는 경주보다 심했다. 약 5만6000개 시설물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부서졌고, 2000여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다음날로 잡혀 있던 수능 시험일이 연기되기도 했다. 동일본 대지진이나 경주 지진의 영향 또는 포항 지역의 지진 취약성이 원인으로 추정됐는데, 지난 3월 20일 정부 합동조사단은 이 지역에 있는 지열발전소가 땅속에 가한 수압이 ‘지진을 촉발했다’고 발표했다. 지열발전소 설립은 정부가 추진한 국책 사업이었다. 이에 따라 ‘국가 책임’ 문제가 제기됐다. 주민들은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흘렀다. 실질적 진전은 없다. 지역의 아우성과 정치적 분쟁만 있다.
 

이재민 문제는 거의 해결됐지만
곳곳에 ‘특별법’ 촉구 플래카드
이강덕 시장 “정책적 보상으로
금전적 배·보상 규모 줄일 수도”

KTX 포항역에서 포항 시내로 향하는 도로 옆에는 ‘포항 지진 특별법 제정하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연달아 있었다. 1㎞에 한 개 이상 보였다. 시내에선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아래에는 ○○연합회, △△번영회 등 플래카드를 내건 단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포항에 있는 모든 모임이 한 개 이상 내건 듯했다. 지난 16일 오후의 풍경이다.
 
외견상 지진 피해는 대부분 수습된 상태였다. 한때 1000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머문 흥해읍(포항시 북구) 체육관에는 30∼40명만 남아 있었다. 나머지 주민은 임대주택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인근에 있는 문제의 장소, 지열발전소는 가동을 멈췄다. 문이 닫혀 있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떠돌이 개들이 공연히 짖어댔다.
 
지진을 촉발한 지열발전소. [뉴스1]

지진을 촉발한 지열발전소. [뉴스1]

그렇지만 진정한 복구와 치유는 아직도 멀리 있었다. “여기가 강원도만 됐어도 이렇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 60대 택시 기사가 한탄했다. “세월호는 국가 배도 아닌데, 특별법 만들어 보상하지 않았습니까?” 죽도시장 횟집 주인의 질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여당과 정부가 이 지역을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원식 포항 지진 범시민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악쓰고 떼쓰지 않는다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다 같은 국민이다. 여당표 안 나오는 곳이라고 이렇게 무시하는 것을 국민이 다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 자유한국당은 소속 의원 전원이 서명한 포항 지진 특별법을 발의했다. 정부 피해 보상을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지난 10일에는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그 안에서 특별법 제정 여부도 논의하자고 한다. ‘패스트 트랙’ 사태 이후 국회는 사실상 휴업 상태다. 청와대는 지난 17일 “국회가 법을 만들면 시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회의 법 제정은 기약이 없다. 이강덕(57) 포항시장에게 이 상황에 관해 물었다.
 
포항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로 판정된 게 포항시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한편으로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진이 자연적인 것이었다면 언제든 다시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포항은 산업 도시 위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누가 여기에 공장을 지으려 하겠나. 있는 공장도 옮기려 하지 않겠나. 그런 걱정을 하던 차에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지진으로 판명이 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나.
“당연하다. 지열발전소 건립은 국책 사업이다. 정부가 돈을 댔고, 관리·감독 권한도 갖고 있었다. 2017년 11월 15일 이전에도 지열발전소 인근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많이 감지됐다. 그런데도 정부가 땅속에 압력을 가하는 일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무책임·무지·무모의 극치였다.”
 
정부 조사단 발표는 ‘촉발’이라고 했다. 학자 중에는 지열발전소가 ‘방아쇠’를 당긴 것뿐이고, 지진이 날 위험성은 늘 도사리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촉발이든, 유발이든 국가 책임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강도가 흉기로 사람을 찔렀을 때 몸이 약한 사람은 숨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몸이 약한 게 잘못이라고 할 건가. 법률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정부가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고 한다.”
 
이재민이 거주하는 흥해 체육관. [이상언 논설위원]

이재민이 거주하는 흥해 체육관. [이상언 논설위원]

포항시는 특별법을 통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배·보상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 것으로 보나.
“직접적인 물적인 피해, 공장과 상점 등의 영업 손실, 부동산 가격 하락, 정신적 피해 등을 다 합하면 배·보상 규모가 10조∼15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회에서 향후 특별법을 제정할 때 정밀하게 추산할 것으로 기대한다.”
 
15조원은 막대한 돈이고, 피해액 산정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전부 국가 예산으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부는 직접 배·보상을 하고, 일부는 집단적 정책 보상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산업단지 조성 지원이나 부동산 거래세 인하 등의 정책으로 직접 보상 규모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특별법 부분까지 포함한 논의를 하자고 주장하고, 이미 특별법안을 내놓은 자유한국당은 특위 구성에 반대하고 있는데.
“여야 대치 상황이 이어져 사실상 논의가 실종된 상태다. 이대로 가면 20대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가을 정기국회에서 꼭 특별법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선거에서 여당표가 많이 나오지 않는 지역 특성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사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주민이 많은데.
“시민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정치 공학’ 때문에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국가가 스스로 국가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가 만든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촉발했다는 것은 관련 학자 중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까지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이라서 정부와 여당의 대응이 세월호 참사나 강원도 산불과 비교하면 미온적이라는 포항 시민의 의심은 나날이 커간다. 저항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개별적으로 포항 시민들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에 걸맞는 일인가.
 
포항 이산화탄소 저장소도 논란
경북 포항시 영일대 해수욕장 앞 바다에 설치된 이산화탄소 저장 시설. [뉴시스]

경북 포항시 영일대 해수욕장 앞 바다에 설치된 이산화탄소 저장 시설. [뉴시스]

지열발전소가 땅속에 가한 압력 때문에 포항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자 주민들은 이 지역에 있는 이산화탄소(CO₂) 저장소도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다. 저장소는 영일만과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하나씩 있다.
 
이 저장소는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CO₂를 포집해 땅속에 넣는다는 참신한 아이디어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열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추진한 사업이다. CO₂를 지하에 넣어 가두면 그 양만큼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한 효과를 얻는다. 미국·노르웨이 등 다른 나라에도 저장소가 있다.
 
문제는 지하에 주입된 CO₂(이때는 기체와 액체 중간 상태)가 지하 구조를 변형시키거나 유출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2012년에 CO₂ 지중저장시설이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영일만과 장기면에 저장소를 설치하는 작업은 포항 지열발전소 건설 공사를 한 ㈜넥스지오가 맡았다. 그래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 크다. 이 회사는 지열발전소를 만들 때 땅속에 과도한 압력을 가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포항 지진 발생 뒤 정부는 저장소에 CO₂를 주입하는 작업을 중단했으나 아직 폐쇄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더는 지하를 인공적으로 변형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정부 기관 소속의 한 지질 전문가는 “저장된 CO₂가 지하수에 섞이거나 지하 물길을 변형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상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