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에서]경찰 ‘명운 걸고’ 버닝썬 수사 했다는데 왜 의문은 계속될까

중앙일보 2019.05.18 11:00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버닝썬 수사결과를 규탄하고 책임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버닝썬 수사결과를 규탄하고 책임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이 상황이 ‘명운’을 걸고 한 결과라면 경찰의 명운은 다한 것이다”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경찰은 ▶가수 승리(29)에게서 성매매 알선ㆍ횡령 등의 혐의를 찾아냈고 ▶‘경찰총장’으로 불린 윤모 총경에 대해서는 김영란법ㆍ뇌물수수의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우며 ▶버닝썬 안에서 마약 투약 행위는 있었으나 클럽 측의 조직적 유통은 없었다는 등의 결론을 냈다.  
 
경찰 152명이 투입돼 3달 넘게 매달린 결과다. 이 과정에서 승리는 18회에 걸쳐 경찰 조사를 받았고 윤 총경과 관련해 조사 대상에 오른 인물만 50여명에 이른다. 통신 기록부터 카드 사용 내역, 전자기기 포렌식까지 모든 걸 들여다보며 “한 점의 의혹도 없이 ‘탈탈’ 털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의 유착 비리가 연이어 터지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국회에 출석해 “명운을 걸겠다”고 공언했고 일선 수사관들은 수사에 매진했다. 밤샘 수사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는 건 예삿일이었고, 자신의 생일에 미역국 한 그릇조차 먹지 못한 수사관도 있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버닝썬 수사에 의문 제기하는 목소리 커져
그럼에도 여전히 경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버닝썬 불법 향응, 소비, 범죄 가담 VVIP 고객 수사 착수 및 유착 공권력 특검, 청문회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은 사흘 만에 7만5000명의 동의를 얻어냈고 참여 인원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 14일 법원에서 승리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는 ‘승리가 승리했다’,‘구속영장 기각’,‘버닝썬 수사’ 라는 검색어들이 며칠간 나란히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버닝썬 사건과 이에 대한 경찰 수사를 규탄하는 집회도 열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 18개 단체는 17일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포부가 무색하게 그 결과는 초라하다”고 비판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 전국연대 대표는 “많은 국민들이 수사 결과를 기대했지만 과연 발표 내용이 최선인가 싶다”며 “경찰의 정의로움, 수사 과정을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19일과 25일에는 각각 청와대 사랑채 앞과 강남 교보타워 앞에서 시위가 예정돼 있다.
 
“평상시 경찰에 대한 신뢰 수준 높지 않았다는 방증”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 관계자는 “정말 마른걸레를 쥐어짜듯 마지막까지 죽을 힘을 다했다. 우리야말로 누구보다 ‘경찰 유착’ 만큼은 제대로 밝히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지금 이 시기(수사권 조정)에 우리가 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자살골’을 넣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떤 결론이 나와도 경찰이 비난을 들었을 것”이라며 “유착이 있었다고 하면 ‘경찰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비난이 잇따랐을 것이고, 지금처럼 ‘조사 결과 정말 없었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번 수사를 가장 가까이서 취재한 기자로서 이들의 답답함이 일견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결과가 나왔어도 욕을 먹었을 것”이라는 자조적인 말은 경찰 조직적 차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수는 못 받을지언정, 잠과 끼니를 걸러가며 100일을 달려온 노고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말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평상시 경찰에 대한 신뢰 수준이 높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같은 조사 결과라도 경찰을 신뢰하는 사회에서는 ‘경찰이 저 정도로 수사를 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면 정말 없나보다’하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며 “소위 말하는 ‘법 보다는 빽(뒷배)’ 이라는 불신이 누적된 결과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1차 수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에 앞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경찰의 자성과 노력이 절실하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