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기세등등 장징궈, 장제스 의형제 두웨셩 아들도 체포

중앙선데이 2019.05.18 00:20 636호 28면 지면보기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577>
쑹메이링(가운데)은 조카 중 콩링칸(오른쪽 둘째)을 총애했다. 25살 연상 유부녀와 결혼할 때도 너만 좋으면 된다며 말리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말기 장제스 대신 미국을 국빈방문할 때도 데리고 갔다. 1943년 3월 로스앤젤레스.

쑹메이링(가운데)은 조카 중 콩링칸(오른쪽 둘째)을 총애했다. 25살 연상 유부녀와 결혼할 때도 너만 좋으면 된다며 말리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말기 장제스 대신 미국을 국빈방문할 때도 데리고 갔다. 1943년 3월 로스앤젤레스.

상하이 경제관제(經濟管制) 독도원(督導員) 장징궈(蔣經國·장경국)는 자신이 넘쳤다. 전진은 있어도 후퇴는 없었다. “대상인과 국가의 화근덩어리를 박멸하자”는 장징궈의 열정은 친위대나 다름없는 경제경찰과 복무총대(大上海靑年復務總隊)를 고무시켰다. 시장 휘젓고 창고를 이 잡듯 수색했다.
 
거리에 건의함도 설치했다. 시내 곳곳에 공고문이 나붙었다. “금괴와 외환을 은닉하고, 금원권(金圓券)과 태환하지 않는 경제관제 위반자를 신고해라. 몰수한 황금과 외환의 30%를 포상금으로 지급한다.” 건의함에 밀고가 쏟아졌다. 청년 남녀들이 경제경찰에 자원했다.
 
경제경찰이 난징 중앙정부 재정부 비서 한 명을 직권남용과 경제공작 기밀누설 혐의로 체포했다. 유흥가에서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상하이 경비 사령부 고급간부도 걸려들었다. 장징궈가 직접 심문했다. 잘못했다고 통곡하는 두 사람에게 “계속 통곡만 하면 된다”며 총살에 처했다. 소식이 퍼지자 시민들은 환호했다. 술 한잔 들어가면 “장징궈 만세”를 불렀다. 상인과 관리들은 공포에 떨었다.
 
시장 우궈쩐(吳國楨·오국정)이 원로 위유런(于右任·우우임)에게 편지를 보냈다. “상하이는 경제개혁이 한창입니다. 시장인 저는 허공에 뜬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역사는 실패한 개혁가의 비극으로 가득합니다. 개혁이 성급한 정치가나 혁명가의 무덤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평소 위유런은 우궈쩐과 장징궈를 “국가의 동량(棟梁)”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우궈쩐의 편지 불사르며 대성통곡했다. “두 기둥에 금이 갔다. 국상(國喪)이 멀지 않았다.” 식음 전폐하고 두문불출했다.
 
법폐 300만원이 금원권 1원이었다. 기업인과 돈 많은 상인들은 금원권을 믿지 않았다. 금괴와 외환을 금원권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석탄과 성냥으로 거부를 축적한 류홍셩(劉鴻生·유홍생)이 구술을 남겼다. 길지만 인용한다. “장태자(蔣太子)는 무서웠다. 만면에 살기가 가득했다. 무슨 일 저지를지 예측 불가였다. 피할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급한 대로 10량(兩)짜리 금괴 800개와 미화 230만불, 은 덩어리 수천 개 들고 독도원 사무실로 달려갔다. 문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전당포 집 주인과 충돌했다. 나는 직원 7명과 함께였지만 늙은 전당포 주인은 혼자였다. 부축해 줄 사람이 없었다. 뒤로 나가떨어지며 몸에서 분리된 보따리 쪽으로 기어갔다. 달려가 일으키며 보따리 틈새 힐끔 봤다. 미국 지폐가 가득했다. 114만불 들고 왔다며 헐떡이는 모습이 얼빠진 사람 같았다.”
 
장징궈가 상하이에서 금원권 개혁을 지휘할 때, 우궈쩐은 상하이 시장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1948년 10월 초 학질에 시달리던 무렵의 우궈쩐.

장징궈가 상하이에서 금원권 개혁을 지휘할 때, 우궈쩐은 상하이 시장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1948년 10월 초 학질에 시달리던 무렵의 우궈쩐.

문제는 자본가나 상인이 아니었다. 최고 지도자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처가 쪽이 사고를 쳤다. 퍼스트레이디 쑹메이링(宋美齡·송미령)은 큰언니와 콩샹시(孔祥熙·공상희) 사이에 태어난 조카들을 총애했다. 큰조카 콩링칸(孔令侃·공령간)은 상하이의 거상이었다. 비밀결사 칭방(靑幇)의 수령 두웨셩(杜月笙·두월생)과도 끈끈한 사이였다.
 
상하이의 은행과 증권시장을 쥐고 흔들던 두웨셩은 한때 장제스와 의형제 맺은 사이였다. 장징궈는 천하의 두웨셩도 안중에 없었다. 저녁 초대를 거절해 버렸다. 남에게 거절당해 본적 없는 두웨셩은 난감했지만 지혜로웠다. 납작 엎드렸다. 문밖에 얼씬도 안 했다.
 
장징궈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두웨셩의 아들을 체포해라. 콩링칸이 경영하는 양즈(揚子)공사를 수색해라. 모두 투기꾼들이다.” 좌파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희망이 보인다.”
 
비판도 그치지 않았다. “관의 통제가 도를 넘었다. 공장문 닫으라는 것과 같다.” 장징궈는 발끈했다. “돈 있는 사람은 향수도 맘대로 사고 돼지고기도 남보다 많이 먹을 수 있다. 소시민들은 배만 주리지 않으면 행복하다. 백화점이나 대형 음식점 없어도 나라는 돌아간다. 중국은 자원이 풍부하고 우수한 인력이 넘친다. 능력 있는 지도자가 통솔하면 강대국은 물론이고 세계를 이끌 수 있다.”
 
장징궈가 장제스에게 전문을 보냈다. “두웨셩의 아들을 체포했습니다. 처형할 생각입니다.” 장제스는 당황했다. 부관을 두웨셩에게 급파했다 “징궈의 경제관제에 협조해주면 방법이 있다.” 두웨셩은 부하들을 소집했다. “매점매석 일삼던 상인, 자본가, 투기꾼들의 자산과 황금, 외화 보유 상황을 샅샅이 조사해라.”
 
두웨셩이 장징궈를 찾아갔다.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불법물자 숨겨 놓은 기업 명단이 적혀 있었다. 콩링칸이 경영하는 양즈공사의 비행이 가장 상세했다. 두웨셩은 석방된 아들과 상하이를 떠났다. “국민당은 망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홍콩에 정착했다.
 
두웨셩의 아들 얘기가 잠잠해지자 콩링칸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렸다. 쑹메이링이 당황했다.  <계속>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